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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안 놓치는 스페인 vs 골 안 놓치는 네덜란드

중앙선데이 2010.07.11 02:30 174호 4면 지면보기
이제 마지막 의식이 남았다. 12일 오전 3시30분(한국시간) 요하네스버그 사커시티 스타디움에서 벌어지는 남아공 월드컵 결승전. 언제나 강했지만 언제나 운이 없던 유럽의 두 강호 스페인과 네덜란드의 대결이다. 어느 팀이 이기든 첫 우승이다. 월드컵 도전 80년 만에 처음으로 결승에 오른 스페인은 좀처럼 실수가 없는 완벽한 패스워크로 볼을 점유하는 자신들의 강점을 앞세웠다. 그들은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고, 가장 화려한 축구를 선보였다. 네덜란드는 1974년 독일, 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결승에서 잇따라 고배를 마셨다. 32년 만의 재도전 무대에서 네덜란드는 화려한 공격축구의 전통을 과감히 버리고 효율과 역습을 택했다. 두 번의 결승에서 매번 개최국을 상대했지만 이번엔 아니다.

미리 보는 12일 새벽 3시30분 결승전

‘아름다운 지배자’ 스페인
스페인의 플레이는 투우를 닮았다. 세련된 기술과 정확한 패스로 경기를 지배하며 상대의 강점을 소멸시킨 후 마지막 한 방으로 승부를 결정짓는다. 사비 에르난데스와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이상 바르셀로나)의 패스워크는 결점이 없어 보인다.

투우사가 소의 뿔에 받히지 않고 소의 심장에 장검을 꽂을 수 있는 비결은 ‘스피드’다. 소보다 빨라야 목숨을 잃지 않고 소를 쓰러뜨릴 수 있다. 스페인의 플레이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 스피드다. 현란한 패스워크는 스피드로 인해 위력이 배가된다. 스페인의 준결승 상대 독일은 사나운 소와 같은 팀이었다. 언제든 강한 뿔로 투우사를 쓰러뜨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독일은 스페인의 스피드를 따라잡지 못했다.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에 네 골을 퍼부은 독일의 공격은 하나같이 탄탄한 수비에 이은 역습에서 나왔다. 엄청난 기동력으로 상대를 압박해 패스길을 끊은 다음 가장 빠른 길을 택해 상대 골문으로 치달았다. 스페인은 눈부신 스피드로 볼을 이동시켜 독일의 압박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높은 볼 점유율을 보장하는 이 전술은 네덜란드를 상대할 때도 유효할 것이다.

준결승까지 6경기에서 스페인의 볼 점유율은 평균 58.3%(240분)였다. 네덜란드는 평균 54%(209분)였다. 스페인이 매 경기 네덜란드보다 5분 이상 더 볼을 소유했다는 뜻이다. 스페인 선수는 경기당 2분51초, 네덜란드 선수는 2분29초 동안 볼을 잡았다. 비센테 델 보스케 스페인 감독은 “볼을 소유하고 있어야 안정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준결승전에서 스페인에 패한 독일의 요아힘 뢰프 감독은 “스페인의 패스워크 때문에 우리가 바라는 플레이를 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올리버 비어호프 독일 코치는 “어느 나라도 스페인 같은 경기를 할 수는 없다”며 완패를 인정했다. AP통신의 카를 리터 기자는 “스페인의 성공은 소유 게임(possession game)의 승리”라고 분석했다.

스페인이 완벽하게 경기를 지배할 수 있는 비결은 실수가 없는 패스워크. 스페인은 6경기에서 총 4206번의 패스를 주고 받아 81%(3387번)의 성공률을 기록했다. 3366번의 패스 중 72%(2434번)의 성공률을 기록한 네덜란드를 앞선다. 스페인은 매 경기 네덜란드보다 140번의 패스를 더 시도했고 성공률도 10% 정도 앞섰다. 이 수치대로라면 결승전에서도 스페인의 볼 점유율이 높을 것이다.

스페인 공격의 원천은 사비다. 남아공 월드컵에 출전한 선수 가운데 가장 많은 패스(570회)를 시도했고 성공률도 81%에 이른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집계해 발표한 ‘패스 톱10’에는 사비를 포함해 알론소·부스케츠·피케·캅데빌라·라모스 등 6명의 스페인 선수들이 올라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주장인 판브론크호르스트가 10위에 올라 있다. 6명의 스페인 선수가 모두 80% 이상 패스 성공률을 기록한 데 비해 판브론크호르스트는 72%에 그쳤다.

스페인은 4년 전 독일 월드컵에서 이탈리아가 우승하면서 대두된 수비축구의 흐름을 공격축구로 돌려 놓았다. 독일 월드컵 7경기에서 이탈리의 평균 볼점유율은 48.9%였다. 경기를 지배하지 않지만 상대 허점을 파고드는 역습으로 상대를 제압했다. 독일 월드컵 64경기 중 점유율이 높은 팀이 승리한 경우는 절반에 못 미치는 27경기(42.2%)뿐이었다.

‘습관과의 작별’ 네덜란드
베르트 판마르베이크 네덜란드 감독은 “스페인을 이기기는 쉽지 않겠지만 두렵지는 않다”고 말했다. 네덜란드는 어느 때보다 건실한 경기를 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스페인보다 효율적인 방식으로 승리를 얻고자 한다. 효율(즉 승리)을 위해 멋진 축구를 해야 한다는 자존심을 버렸다.

사실 네덜란드는 스페인 못지않게 경기 지배를 강조해 왔다. ‘경기를 점유하라(own the game)’는 스페인에 비해 더 강렬한 ‘경기를 지배하라(kill the game)’는 용어를 즐겨 사용한다. ‘토털사커’의 전통 속에 이 정신은 면면히 흐른다. 74년 서독 월드컵에서 네덜란드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리누스 미셸(1928∼2005)은 혁명가였다. 공격수는 공격만, 수비수는 수비만 하던 고정관념을 깼고 패스하고 움직이는 ‘패스 앤드 무브’ 전술로 빠르고 화려한 축구를 완성했다. 축구 고유의 포지션을 해체하며 모든 공간에서 끊임없이 격투를 벌이는 ‘토털사커’는 축구 전술사의 획기적인 발명품이었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네덜란드가 보여준 축구는 화려하지 않았다. 판마르베이크 감독은 볼을 점유하는 데만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는다. 양적인 볼점유보다는 질적인 경기 지배를 더 강조한다. 4년 전 독일 월드컵 당시 이탈리아의 마르셀로 리피 감독이 구사한 전술과 유사하다. 많은 축구팬이 훨씬 화려하고 화끈했던 예전의 네덜란드 축구를 그리워한다. 하지만 판마르베이크 감독은 “승리보다 화려한 것은 없다”며 흔들리지 않는다.

네덜란드는 남아공 월드컵에서 6경기를 해 모두 승리했다. 덴마크와의 조별예선(2-0승)을 빼고는 모두 한 골 차로 이겼다. 심지어 일본에도 1-0으로 이기는 데 그쳤다. 카메룬과의 조별예선 3차전 이후 준결승전까지 4경기 연속 실점했지만 놀라운 집중력과 결정력으로 승리를 얻었다. 네덜란드를 만만히 볼 수 없는 이유는 이처럼 진흙탕 싸움에 능하기 때문이다. 네덜란드를 상대하면서 고유의 팀컬러를 제대로 유지한 팀은 많지 않다.

더구나 네덜란드의 공격은 집중력이 대단하다. 80개의 슛을 날려 12골을 얻었다. 15%의 놀라운 결정력이다. 이 대목이 중요하다. 스페인은 103개의 슛을 난사했지만 겨우 7골(6.8%)을 넣는 데 그쳤다. 게다가 네덜란드는 80개의 슛 가운데 41개를 상대 골문 안으로 날려 보냈다. 유효슛(SOG;Shot on Goal)이 51.3%나 된다. 스페인의 유효슛 비율은 38.8%, 103개 중 40개만 골대 안으로 날아갔다. 기회를 골로 연결하는 솜씨는 네덜란드가 월등하다는 뜻이다.

슛의 결정력과 정확성이야말로 판마르베이크 감독이 우승을 자신하는 이유다. 5골을 뽑은 베슬러이 스네이더르(인터 밀란)에다 부상으로 시름하던 아르연 로번(바이에른 뮌헨)은 2골을 기록하며 되살아나고 있다. 휜텔라르(AC밀란)·카위트(리버풀)·판브론크호르스트(페예노르트)·판페르시(아스널) 등 다양한 선수들이 골맛을 봤다는 점도 네덜란드의 강점이다. 원톱 킬러 로빈 판페르시(아스널)만 살아나면 금상첨화다.
네덜란드가 승리를 자신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양국의 역대 A매치 전적은 4승1무4패로 호각지세다. 하지만 네덜란드는 83년 11월 스페인에 2-1로 승리한 후 4경기 무패(3승1무)를 달리고 있다. 27년간 한 번도 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네덜란드 선수들이 자신감을 가지기에 충분한 이유다.

왼발의 스페셜리스트 비야와 로번
스페인의 다비드 비야와 네덜란드의 아르연 로번은 왼발을 잘 쓰는 스페셜리스트다. 외신에서는 이들의 왼발이 승부를 가를 것이라는 예상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이들이 왼발을 잘 쓰게 된 이유는 다르다.

로번은 오른발을 잘 쓰지 못하는 전형적인 왼발잡이다. 박지성·이영표와 함께 PSV 에인트호번에서 함께 뛴 그는 왼발 하나로 첼시·레알 마드리드·바이에른 뮌헨 등 최고의 클럽의 관심을 모은 천재형 선수다. 왼발 드리블만은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에 버금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모든 패스와 볼터치를 왼발로 하지만 눈부신 스피드와 짧은 스텝으로 볼을 몰고 가다 왼발로 결정짓는다.

비야는 원래 오른발잡이였다. 어릴 때 축구를 하다 오른발 대퇴골이 부러져 축구는 물론 평생 오른발을 쓸 수 없을지도 모르는 처지가 됐다. 그러나 광부였던 비야의 아버지는 “상심하지 마라. 네게는 아직 건강한 왼발이 있다”고 위로했다. 비야는 그때부터 익숙하지 않던 왼발을 길들였다. 왼발이라는 새로운 무기와 정상을 회복한 오른발은 비야를 스페인 최고의 킬러로 만들었다. 이번 대회에서도 5골을 넣어 득점왕을 노리고 있다. 비야의 슛은 비틀거리는 소를 향해 꽂는 마지막 칼날과도 같다.

펠레의 저주와 문어의 선택
네덜란드가 메이저 대회에서 차지한 타이틀은 88년 유럽축구선수권 우승이 유일하다. 뤼트 훌리트·프랑크 레이카르트·마르코 판바스턴 등 ‘튤립 삼총사’를 앞세운 네덜란드는 준결승전에서 독일, 결승에서 소련을 눌렀다. 하지만 그뿐, 최고의 선수들을 보유했지만 지나친 개인주의 성향 때문에 번번이 고비에서 무너졌다. 2006년 독일 월드컵 16강전에서 포르투갈에 패한 뒤 네덜란드 선수들은 서로를 향해 책임을 돌렸다.

스페인은 64년과 2008년 유럽 챔피언이다. 네덜란드와 마찬가지로 월드컵에서는 우승이 없다. 50년 브라질 월드컵 4강이 최고 성적이다. 스페인은 카스티야(마드리드)·카탈루냐(바르셀로나)·바스크(빌바오)로 나뉜 지역감정 때문에 대표팀에서는 힘을 모으지 못했다. 네덜란드와 스페인 모두 ‘팀정신’이 결여됐다는 평을 받아 왔다. 그러나 남아공 월드컵에 출전한 스페인과 네덜란드에는 예전에 없던 팀정신의 문화가 녹아 들어 있다.

결전을 앞두면 징크스에 예민해진다. 네덜란드는 “스페인이 우승한다”는 축구황제 펠레의 예언을 반기고 있다. 펠레가 ‘우승한다’거나 ‘승리한다’고 예언한 국가는 하나같이 탈락과 패배를 맛봤다. 이른바 ‘펠레의 저주’다. 스페인 쪽에선 기분이 안 좋겠지만 ‘윔블던 법칙’을 믿어볼 만하다. 2008년 스페인의 테니스 스타 나달이 윔블던에서 우승한 뒤 축구팀은 유럽선수권을 제패했다. 나달은 5일 윔블던 남자단식에서 우승했다. 또 하나, 신통하다는 독일의 점쟁이 문어도 스페인 우승을 예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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