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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한 조각 뜬 구름’ 깨닫고 대학 때 방황 그쳐

중앙선데이 2010.07.11 02:25 174호 7면 지면보기
임태희 대통령 실장 내정자가 8일 고용노동부 기자실에서 간담회를 했다. 그는 “국민에 대한 무한책임을 느끼고 협력과 통합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지난 7일 오후 10시40분 여의도 KBS앞. 당시 고용노동부 장관이던 임태희(54) 대통령 실장 내정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이날 오전 이명박 대통령과 독대해 비서실장 내정을 통보받았다. 그는 ‘사회적 기업’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나오다 기자를 만났다.

최병렬→박근혜→이명박 내리 중용된 임태희 대통령실장 내정자

-축하드립니다.
“뭐를….”

-실장 맡아달라는 얘기를 언제 들으셨나요.
“뭐라고 드릴 말씀이…. 인사는 최종적으로 결정될 때까지는 항상 변수가 있어요.그래서 저도 지금 뭐… 구체적으로 들은 바 없습니다.”

-청와대에서 내일쯤 발표할 거라고 하는데요.
“진짜 저는… 대통령께서 고심 중이실 거예요. 그런데 인사라는 건 항상 유동적인 거예요. 누구도 거기에 대해서는 확정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대통령이 임 장관을 아주 신뢰한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저를요?”
공식발표 하루 앞인데도 임 내정자는 끝까지 연막을 폈다.
수행비서가 “다음 일정이 있다”며 가로막는 바람에 대화는 여기서 끊겼다. 그는 거듭 “죄송합니다”라며 차에 올라탔다.

10분여의 짤막한 만남이었지만 임 실장 내정자의 스타일과 성격이 드러났다. 옅은 미소에 편안한 인상과 원만한 대인 관계, 그리고 무엇보다 ‘무거운 입’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임 내정자가 최병렬-박근혜-이명박으로 이어지는 현 여권의 최고 실력자들로부터 내리 총애를 받을 수 있게 된 비결이기도 하다. 편안한 인상에다 어조가 늘 차분하기 때문에 심한 논쟁이 벌어져도 상대편이 그에게 독한 소리를 퍼붓기란 쉽지 않은 편이다. 이념적으로 중도 실용파로 분류되고 정치 스타일도 무색·무취에 가깝다. 그래서 친박계뿐 아니라 야당과도 관계가 괜찮은 편이다. 임 내정자는 2007년 대선을 전후해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이 대통령의 메시지를 박 전 대표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3선을 하면서 정책위의장·대변인·원내수석부대표·정책조정위원장 등 어지간한 당직은 다 거쳤지만 물리적 충돌과 같은 극단적 상황을 주도한 적은 없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임 내정자는 정부에서 오랫동안 공무원으로 일했고, 국회에서도 좋으신 분이기 때문에 (실장에)무난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 내정자의 이력엔 유독 비서실장 타이틀이 여럿 있다. 첫 비서실장 직함은 초선 때인 2003년 7월 당시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가 달아줬다. 그는 이듬해 3월 탄핵 역풍을 맞고 최 대표가 물러날 때 함께 옷을 벗었다. 하지만 그는 당의 구원투수로 등장한 박근혜 전 대표의 비서실장감으로도 꾸준히 거론됐다. 2004년 4월 총선이 끝난 뒤 기자들이 그에게 “또다시 대표 비서실장 하마평에 올랐다”고 하자 그는 “아휴 그러면 내 직업이 비서실장이 된다”며 손사래를 쳤다. 결국 박 전 대표는 그를 당 공동 대변인에 발탁했다.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후엔 이명박 후보의 비서실장과 대통령 당선자 비서실장을 연거푸 역임했다. 이번에도 정식 직함은 대통령 실장이지만 사실상 과거 대통령 비서실장의 역할이 주 임무다.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그에게 비서실장 자리를 줬거나 주려고 했던 사람들이 그와 별 연고가 없다는 점이다. 지연이나 학연·계파에 의해 자리가 주어지는 게 정치권의 오랜 관행인 점에 비춰보면 특이하다. 특히 그는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당시 친이나 친박 캠프에 가담하지 않고 중립을 지켰다. 그런데도 경선이 끝난 뒤 쟁쟁한 친이계 의원들을 젖히고 이명박 후보의 비서실장에 기용된 것은 상당한 파격이었다.

그가 정통 경제관료 출신이란 점도 참모로서 큰 강점이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와 행정고시(24회)에 합격한 임 내정자는 옛 재무부 이재국, 재경원 예산실, 청와대 금융담당 행정관 등을 거쳐 김대중 정부 때 재경부 산업경제과 과장 자리까지 올라갔다. 임종룡 기획재정부 차관이 그와 고시 동기다. 최중경 청와대 경제수석은 서울대 경영학과 1년 선배로 과거 재무부 관세국에서 함께 사무관 시절을 보내면서 30여 년간 친분을 유지해왔다.

물론 임 내정자가 자신만의 힘으로 현 위치까지 올라섰다고 보긴 힘들다. 그와 이 대통령을 연결시켜준 사람은 이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으로 알려져 있다. 이 의원은 당내 중도·소장파 의원들 사이에서 ‘허브’ 역할을 하는 임 내정자를 눈여겨보고 있다가 이 대통령에게 임 내정자를 적극 천거했다고 한다. 이 의원의 최측근인 장다사로 민정1비서관은 임 내정자와 같은 서울 경동고 동문이다. 임 내정자는 당 경선이 끝난 후에야 이명박 캠프에 합류했지만 곧장 권력의 이너 서클로 진입했다.

그가 대선 때 이명박 후보의 신임을 받게 된 계기는 ‘타운 미팅’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그는 신용불량자, 무주택 신혼 부부 등을 후보가 직접 만나 서민들의 고충을 들어보라고 제안했고 이는 현장을 중시하는 이명박 후보의 마음에 쏙 들었다는 것이다. 이후 그는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 청와대 인선, 정부 조직개편, 조각(組閣) 등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이명박 정부의 새로운 실세로 부상했다.

임 내정자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가 전형적인 ‘외유내강(外柔內剛)’형 인물이라고 입을 모은다. 판교의 농촌 마을에서 태어나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그가 어린 시절 청계산에 나무를 하러 다녔다거나, 그가 고교와 대학입시에 실패한 전력이 있다는 사실을 지금 그의 이미지에서 연상하기란 쉽지 않다. 그는 재경부 관료시절 고시 동기 중 가장 먼저 본부 과장으로 승진했으나 과감히 옷을 벗고 총선에 출마한 이유에 대해 “나라가 IMF 외환 위기로 고생하는데 공무원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극히 제한적이라 무엇인가를 바꾸기 위해선 정치를 해야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대통령 실장 임태희’의 앞길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아 보인다. 우선 의원직을 사퇴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역구 의원이 금배지를 던진다는 것은 도박에 가깝다. 실장 임기는 아무리 길어야 2년7개월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그는 8일 기자 간담회에서 ‘생야일편부운기(生也一片浮雲起·생이란 한 조각 뜬구름이 일어나는 것)’란 선시(禪詩)를 인용했다. “의원직이든 지역구든 원래 내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고 했다. 원래 이 시는 서산대사가 입적할 때 읊은 시다. 임 내정자는 대학 1학년 때 방황하다가 이 시를 통해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됐다고 한다. 임 내정자 주변에서 “큰 꿈을 이루기 위해 3선 의원직을 버렸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가 풀어나가야 할 과제는 만만찮다. 지방선거 참패 후 흔들리는 이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을 다시 높이면서도 국민과 권력의 소통을 강화하는 데 성공하려면 고도의 정치력이 필요하다. 고질적인 친이-친박 계파갈등도 해결해야 한다. 4대 강 사업이나 세종시 뒷수습도 만만찮다. 자기 목소리가 약한 임 내정자가 과연 이 대통령에게 ‘직언’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을 표시하는 한나라당 의원들도 많다. 한 중진 의원은 “능력에 비해 언론이 너무 과대포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임 내정자는 “노동부 장관이 됐을 때 ‘임태희는 끝났다’는 말까지 나왔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지금 그는 한나라당의 차세대 간판으로 성장할지, 아니면 잠깐 반짝했던 숱한 실세 중 한 명에 머물지 중대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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