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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 알아야 좋은 글씨 나와 참이슬 땐 소주 엄청 마셨죠” ”

중앙선데이 2010.07.11 02:08 174호 12면 지면보기
강병인 작가가 지금까지 작업한 술병들을 배경으로 앉아 있다. 신동연 기자
강병인(48) 작가의 작업실 이름은 ‘술통’이다. 2일 오전 11시 홍익대 근처 작업실에 만난 그는 “술을 워낙 좋아해서 처음에 이름을 그렇게 지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술 이름을 많이 썼네요”라고 말했다. 강 작가는 ‘참이슬·산사춘·대포·화요’ 등 다수의 술 이름을 캘리그라피로 작업했다.

‘참이슬’ 글씨 쓴 캘리그라피 작가 강병인

그는 그중 2006년 작업한 ‘참이슬’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처음에 의뢰가 들어왔는데 국민소주라고 하는 술 이름을 내가 쓴다는 게 많이 부담됐죠. 이름도 바꾸고 도수를 내려서 젊은 여성을 공략하자는 전략이라 이미지를 잘 만드는 것이 중요했어요.” 의뢰를 받은 후 강 작가는 일단은 소주를 많이 마셨다. 표현할 대상을 잘 알아야 진짜 글씨가 나오기 때문이라고 했다. 두달가량의 준비과정 끝에 깨끗하고 순수한 느낌의 글씨를 쓰기로 결정했다. 그때부터 수천 장의 화선지에 글씨를 썼다. ‘슬’자의 경우 ‘ㅅ’은 여성의 머리 모양을, ‘ㄹ’은 젊음의 행복을 표현했다. 글씨를 완성하는 데 2~3주가 걸렸다. 그렇게 만들어진 ‘참이슬’ 글씨체는 몇 번의 리뉴얼을 거치면서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자신이 쓴 글씨가 프린트된 술을 마시는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 그는 “처음엔 기분 좋은데 술이 취하면 내가 왜 이것밖에 못 썼나 하면서 자책을 많이 하죠(웃음)”라고 답했다.

강 작가는 2002년부터 작업실을 운영하고 있다. 술 이름 , 숭례문 가림막 글씨,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 ‘엄마가 뿔났다’ 등의 글씨를 캘리그라피로 썼다. 초등학교 시절 서예반에서 처음 붓글씨를 시작한 그는 “어렸을 때 우리 동네에서 양봉을 했었는데 서예반에 들어가면 꿀을 주겠다고 해서 들어갔다”고 말했다. 막상 들어가보니 먹을 갈고 화선지 위에 붓으로 글씨를 쓰는 것이 굉장히 재미있었다고 했다. 이후 서예 대회에 나가 상도 받고 중·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 중학교 때는 스스로 ‘영원히 먹과 함께 산다’는 뜻의 ‘영묵’이란 호도 만들었다.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디자인, 광고 회사에서 근무했다. 그러던 중 2000년 초반 일본에 여행을 갔다. “일본 시내를 돌아다니는데 간판이 전부 손글씨로 돼 있더라고요. 우리 간판은 컴퓨터 폰트로 획일적인데 손맛을 살린 글씨를 보니 너무 멋져서 충격이었죠.” 한국에 돌아온 강 작가는 그때부터 디자인과 서예를 어떻게 접목할 수 있을까를 연구했다. 그리고 2002년 ‘술통’이란 작업실을 열었다. 처음엔 일이 많지 않았지만 2004, 2005년 캘리그라피가 유행하면서 그를 찾는 곳이 많아졌다.

그는 얼마 전 작업한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의 글씨를 보여주며 소의 뿔 형태가 연상되는 ‘뿔’자를 쓰면서 고민을 많이 했다고 했다. 작업하기 전에 드라마 대본을 봤는데 평생을 가족을 위해 희생만 하던 엄마가 어느 날 자기 목소리를 낸다는 내용을 보고 소가 생각났다고 했다. 어릴 적 시골에서 옆집 소를 돌봐주고 그 대가로 밥을 얻어먹었는데 소가 꼭 그렇다는 것이었다. 평소엔 조용히 있다가도 한번 화를 내면 말리기 힘든 것이 소였다. 그 기억을 떠올리며 ‘뿔’을 썼는데 주변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고 했다. 강 작가는 “글씨는 손으로 쓰는 것이 아니에요. 그 사람의 인생이 글자 하나하나에 그대로 표현돼 나오는 것이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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