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의미만 존재하는 글자에 수 많은 감정 불어 넣지요”

중앙선데이 2010.07.11 02:07 174호 12면 지면보기
한 팔로 책상을 짚고 서서 글을 쓰는 게 가장 편하다는 김종건 대표. 신동연 기자
최초의 캘리그라피 전문회사 ‘필묵’의 김종건(39) 대표는 “이제는 ‘문방사우’가 아니라 붓·먹·종이·벼루에 ‘컴퓨터’를 더한 ‘문방오우’의 시대”라고 말했다. 그는 붓으로 글씨를 쓰고 스캐너로 글씨를 복사해 컴퓨터로 마무리하는 식으로 작업을 한다. 1일 오전 10시 서울 합정동 필묵 아트센터에서 만난 김 대표의 작업실에도 전통 서예도구들과 함께 컴퓨터가 여러 대 놓여 있었다.

국내 첫 캘리그라피 회사 ‘필묵’ 김종건 대표

김 대표는 “한글이 그 자체로 얼마나 아름다운 문자인지 아세요”라고 물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학교’라는 단어를 보면 ‘ㅎㅏㄱㄱㅛ’가 한 글자씩 건축적으로 결합해 글자가 만들어지는데 구조적으로 얼마나 멋있는지 몰라요. 알파벳의 나열(school)에 그치는 영어랑은 비교가 안 되죠”라며 “한글의 특징은 초성·중성·종성을 모아 쓰는 건데 그것을 먹과 붓을 통해 다양한 질감으로 표현하는 것이 캘리그라피예요. 디지털시대에 아날로그적 감성이 환영받고 있는 것이죠”라고 말했다.

지난해 겨울 필묵 작가 8명이 참여해 제작한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라는 광화문 교보빌딩 대형 글씨는 완성하는 데 일주일 정도 걸렸다. 팀원들은 의뢰받은 글의 느낌을 잘 살릴 수 있는 서체를 연구했다. 김 대표는 “작업을 시작하면 밥 먹을 때나 차를 탈 때나 온통 의뢰받은 글에 대한 생각 뿐이에요”라고 말했다. 일주일간의 작업 후 8명의 팀원이 각자 1~2점씩 작품을 내 광고주가 그중 하나를 고르는 방식으로 최종안이 결정됐다. 그는 “지난해엔 겨울을 표현하기 위해 글씨를 눈송이처럼 썼는데 그게 굉장히 좋은 반응을 얻었죠”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초등 4학년 때 서예를 시작했다. 친구 따라 간 서예학원에서 글씨에 빠져 대학도 서예학과로 갔다. “글씨를 쓴다는 것 자체가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그러던 중 1989년 원광대에 서예학과가 생겼어요. 그걸 보고 이건 나를 위한 학과라며 다음 해 곧장 지원했죠.” 대학 졸업 후 서예잡지사 기자, 폰트회사 디자이너로 일했다. 그러던 중 ‘스미’라는 일본 서예잡지에서 서예를 디자인화해 표현한 작품을 봤다. 전통서예만 해 오던 그에겐 충격이었다. 곧바로 캘리그라피 공부를 시작해 99년 회사를 차렸다.

처음에는 선배 사무실 한쪽에 책상 하나 놓고 일을 시작했다. 4~5년간은 돈을 전혀 벌지 못했다. 당시 시장의 분위기는 ‘뭐 하러 글씨에 돈을 들이느냐’며 냉담했다.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여기저기 다니며 캘리그라피를 알렸다. “우리는 흔히 문자가 의미 전달 기능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캘리그라피는 그 생각을 뒤집어요. 글자 자체가 하나의 이미지로 감정을 표현할 수 있죠. 얼마나 매력적인가요.”

필묵은 2000년대 초반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담배 ‘순’, 소주 ‘스타일’, 영화 ‘복수는 나의 것’ ‘챔피언’ 포스터, 광화문 교보빌딩 대형 글씨 등 많은 프로젝트를 맡았다. 교육원도 만들어 2001년부터 지금까지 5000여 명의 수강생을 배출했다.

김 대표는 “ 이제는 질적인 고민을 해야 할 때예요. 요즘 걸핏하면 붓으로 하자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붓글씨가 어울리는 곳이 있고 아닌 곳이 있거든요. 남발하면 금방 질리거나 유치해질 수도 있어요”라며 최근 과열된 분위기가 걱정된다고 했다.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