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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가설 세우고 근거 댈 수 있어야 국제 무대 주역”

중앙선데이 2010.07.11 02:05 174호 14면 지면보기
영어 말하기·쓰기 시험은 ‘rater’‘tester’라고 불리는 채점관이 채점한다. 비커스 박사가 ACTFL에서 맡은 일은 채점관들을 교육해 평가의 신뢰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신동연 기자
첨단 기술의 국내 표준이 국제 표준으로 채택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최근 영어 평가·시험 분야에서도 한국이 국제 표준을 제시하고 ‘영어 시험 수입국’에서 ‘영어 시험 수출국’으로 도약하는 길이 열렸다. 이러닝 전문기업인 삼성크레듀가 지난해 랭귀지테스팅인터내셔널(LTI)을 인수합병한 것이다.

ACTFL 수석 채점위원 비커스 박사가 말하는 고급 영어

LTI는 교육평가원(ETS)과 더불어 미국의 양대 언어 평가 전문 기관인 미국외국어교육협의회(ACTFL)의 모든 평가 시험을 독점 시행·운영한다. LTI가 시행하는 시험들은 미국의 정부기관·기업·대학에서 입사 인터뷰, 승진 심사, 학점 인정, 교사 자격 부여에 활용되고 있다.

크레듀는 ACTFL(www.actfl.org)과 손잡고 ‘ACTFL 말하기 능숙도 인터뷰(OPI)’를 컴퓨터화한 오픽(OPIc)을 개발해 2007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국내외 500여 기업·공공기관이 오픽을 신규 채용과 인사고과에 활용하고 있다. 이번 달에는 중국어·스페인어·러시아어 평가용 오픽이 추가된다. 올 하반기에는 영어 쓰기 능력 평가 시험인 ‘ACTFL WPT’와 초·중등학생을 위한 외국어 말하기 평가인 시험인 ‘오픽 주니어’가 선보인다. 크레듀는 LTI의 시험 상품으로 유럽·인도·러시아·중국·브라질 시장에 진출할 계획도 수립했다.

편식이 나쁜 것처럼 영어 학습도 읽기·듣기·말하기·쓰기 능력을 골고루 개발해야 한다. 그러나 현장의 목소리에 따르면 사원들의 영어 말하기 능력 제고가 가장 시급하다. 이러한 시장의 수요에 따라 국내 영어 말하기 시장은 급성장하고 있다. 오픽, TOEIC Speaking, G-TELP Speaking Test, ESPT 등 영어 말하기 시험은 35만~45만 명의 수험자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올해 오픽 수험자 수는 16만 명에 달할 것으로 크레듀 측은 예상하고 있다.

ACTFL한국위원회(위원장 이완기 서울교대 교수)가 7일 연례 포럼을 ‘글로벌 리더십을 위한 영어 능숙도’라는 제목으로 개최했다. ACTFL의 수석 채점 위원인 로버트 비커스 박사가 기조강연을 했다. 미들베리 칼리지를 졸업(학사·석사·박사)한 비커스 박사는 대학 교수 및 미 정부 기관 컨설턴트로 교수법·평가 분야에서 활약해 왔다. 비커스 박사를 8일 서울 순화동에 있는 ACTFL한국위원회에서 만났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세계적인 어떤 석학을 영어로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영어는 그의 모국어가 아니었다. 그는 ‘teach(가르치다)’의 과거분사로 ‘taught’가 아니라 ‘teached’를 사용했다. 그가 오픽 시험을 봤다면 낮은 등급을 받을 것인가.
“오픽은 ‘총체적(holistic)’ 평가 방식을 채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가 ‘taught’가 아니라 ‘teached’라고 했다는 사실만으로는 등급을 판정할 수 없다. 등급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발화량을 확보해야 한다.”

-기조강연에서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회사들의 92%가 요구하는 것은 ‘대화 영어(conversational English)’라고 했는데 이는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가.
“영어로 글쓰기, 읽기, 듣기보다는 상호작용이 이뤄지는 말하기 영어 능력을 요구한다는 뜻이다. 설문조사를 한 회사는 JobStreet.com이라는 말레이시아 회사다. 흥미로운 점은 설문에 응한 1001개 회사 중 95%가 사원들의 영어 실력이 늘면 생산성도 향상된다고 대답한 것이다.”

-영어 말하기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려면 어떻게 공부해야 하나.
“오픽은 시험 공부를 한다고 해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시험은 아니다. 오픽은 특정 교수법이나 학습법과 무관하다. 다만 오픽에서 높은 등급을 판정받는 사람들은 영어 학습과정에서 오픽이 요구하는 ‘과업(task)’을 실제로 경험해 본 사람들이라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오픽은 수험자들이 무엇을 영어로 할 수 있고 또 할 수 없는지를 따진다. 영어를 10년 동안 공부했다고 하더라도 문법이나 단어 공부만 했다면 오픽에서 좋을 결과가 나올 수 없다. 문법이나 단어 공부도 중요하지만 문법·단어는 목표가 아니라 실제 언어 생활에서 써먹을 수 있는 수단으로 간주해야 한다.”

-‘ACTFL 언어 능숙도 지침’은 1986년에 발표돼 미국의 어학 교육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99년에 수정됐는데 개정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수정본이 올해 11월에 나온다.”

-능숙도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학자나 기관에 따라 다르지만 미국 언어 교육계에서 ‘능숙도 운동(proficiency movement)’을 전개해온 ACTFL이 이해하는 능숙도는 ‘어떤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받아들일 만한 적절한 방식으로 즉각적인 상호작용에서 의미 있는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언어 사용 능력’이다. 업무에 사용되는 영어는 어떤 과업을 수행할 수 있는가로 정의된다. 한마디로 말하면 능숙도다.”

-오픽 채점의 기준이 되는 ‘ACTFL 언어 능숙도 지침’을 숙지하고 이에 맞춰 영어를 공부하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ACTFL 언어 능숙도 지침’은 학습 도구가 아니라 평가의 도구로 개발된 것이다. 가장 효과적인 언어 학습 방법은 모국어를 공부할 때와 같이 자연스럽게 공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영어 교육이 바람직한가.
“영어 교육에는 양방향 대화(interactive conversation)가 포함돼야 한다. 언어를 배우는 목적은 현실에서 사용하기 위해서다. 교실 영어가 현실 세계를 고려하지 않으면 학생들이 읽기와 쓰기만 가능하고 상호작용에 필요한 말하기는 못하게 된다.”

-오픽 시험은 ‘인간적(humanistic)’이라는 표현을 기조강연에서 썼는데 무슨 뜻인가.
“인간에 바탕을 뒀다는 뜻이다. 오픽 시험에서는 말을 하는 수험자가 관심의 중심이다. 교실에서는 흔히 선생님이 관심의 중심이다. 오픽 시험에서는 개인에게 관심을 돌린다. 편안한 마음으로 시험을 볼 수 있지만 평가 자체는 고도로 구조화된 디자인으로 설계됐다.”

-오픽 등급은 무엇을 의미하나.
“오픽 등급에는 최상급(superior)·고급(advanced)·중급(intermediate)·초급(novice)이 있다. 중급 판정을 받은 사람은 초급과 달리 말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친숙한 토픽에 대해 질문하고 답변을 할 수 있으며 간단한 상황이나 거래를 다룰 수 있다. 그래서 중급은 관광 가이드가 될 수 있다. 고급은 모든 주요 시제를 사용해 이야기하고 설명할 수 있으며 시사 문제에 대해 말하고 복잡한 상황을 다룰 수 있다. TV 기자나 고객 서비스 직원이 되려면 고급 등급이 돼야 한다. 최상급이 되면 주장에 근거를 대고 가설을 세우고 어떤 토픽에 대해 구체적·추상적으로 토론할 수 있다. 국제 무대에서 활동하는 주역이 되려면 최상급이어야 한다.”

-사용자의 입장에서 영어 말하기 시험은 왜 필요한가.
“대다수 회사가 입사 지원자들의 영어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면접을 선호한다. 지원 서류에 나와 있는 영어 시험 성적, 영어 학습 기간, 해외 체류 기간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단어·문법·발음이 중시되는 시험 성적으로는 업무 환경에서 발휘될 언어 능력을 예측하기 힘들다. 오픽은 대면 인터뷰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이다. ACTFL은 오픽이 ‘ACTFL 언어 능숙도 지침’을 충실하게 반영한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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