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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칠백년 잠 깬 홍련, 고려의 향기를 전하다

중앙선데이 2010.07.11 01:51 174호 18면 지면보기
‘쥬라기 공원’은 과학적 상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져 히트한 영화다. 6500만 년 전에 산 채로 화석이 된 모기의 피에서 공룡 DNA를 추출해 여러 종의 공룡을 증식시켜 무인도에 공룡테마공원을 만든다는 것. 영화에서 계획은 멋지게 성공을 거두는 듯했다. 하지만 부활한 공룡은 생각보다 위험해 인간들은 섬을 탈출해야 했다. 그러나 오래 묵은 씨앗을 싹틔워 꽃을 피우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다. 연꽃 씨앗의 생명은 1만 년을 간다고 한다.

함안 고대 산성서 수습한 씨앗 1년2개월 만에 꽃 피우기 성공

경남 함안박물관 성재기 계장은 지난해 국립가야문화연구소가 진행 중인 성산산성 발굴작업에 합류했다. 연못 터에서 연꽃 씨앗을 찾기 위해서였다. 산성은 6세기 중반 이후 아라가야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알려졌다. 5월 8일 오후 성씨는 도토리를 닮은 연씨 열 알을 수습했다(작은 사진). “땅을 4~5m쯤 파내려가자 진흙층이 나왔습니다. 호미도 잘 안 들어갈 정도로 단단하고 공기는 전혀 없었죠. 그곳에서 씨를 발견했습니다. 요즘 것보다 약간 작아 고대 씨앗이라는 걸 직감했습니다.”

씨앗 둘을 즉시 한국지질자원연구소로 보내 연대를 측정했다.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법으로 확인한 결과 한 알은 서기 1160~1300년일 확률 93.8%, 다른 것은 서기 1270~1410년일 확률 95.4%로 나타났다. 700년 전 고려시대의 것임이 밝혀진 것이다. 그때부터 고려 연꽃을 피우기 위한 정성어린 나날이 시작됐다. 다섯 알을 받은 함안농업기술센터는 두 알을 성공적으로 발아시켰고, 함안박물관에서도 세 알 중 하나가 두꺼운 껍질을 뚫고 여린 싹을 내밀었다. 발아한 연씨에서 연잎이 무성하게 자랐으나 꽃을 피우지는 못했다. 연씨는 발아시킬 경우 이듬해부터 꽃을 피운다.

지난 7일 새벽, 어둠이 걷힌 함안박물관 뜰엔 팽팽한 긴장감과 셀렘이 가득했다. 6월 20일 꽃대가 출현한 고려 연이 이날 꽃망울을 터뜨릴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아침 햇살이 살갗에 와닿자 분홍색의 뾰족한 꽃봉오리는 생명력을 분출하기 시작했다. 단단하게 붙어 있던 꽃잎 중의 하나가 살짝 몸을 젖혔다. 그게 시작이었다. 꽃잎들이 하나하나 떨어져 나갈 때마다 봉오리는 미세하게 부풀었다. 예민한 눈으로 보지 않으면 알아채기 힘든 신비한 개화! 숨죽이며 지켜보는 눈길들이 부끄러운 듯 봉오리는 쉽사리 몸을 열지 않았다. 그러기를 네 시간여, 연꽃은 700년 세월을 뛰어넘어 꽃잎을 모두 벌리고 만개했다.

다른 색이 섞이지 않아 선명한 붉은색과 단정한 형태. 요즘 홍련과 달리 색이 연하고 꽃잎 수도 적었다. 고려불화가 전해주는 모습 그대로였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분화되기 이전의 순수함이 살아 있는 것이다.

고려시대의 연꽃은 ‘아라홍련’이라는 애칭을 얻었다. 이 지역이 고대 아라가야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몇 송이에 불과한 이 꽃을 많은 사람이 볼 수는 없을까. 성 계장은 이미 계획을 세워놓았다고 한다. “함안 공설운동장 옆의 천연 습지를 연꽃테마공원으로 조성할 겁니다. 몇 년 뒤면 아라홍련이 호수를 가득 덮은 장관을 누구나 볼 수 있겠죠. 일본은 1951년에 수습한 2000년 전의 연씨 세 알로 지바에 연꽃공원을 만들어 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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