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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영루 만두가 이명박 정권에 주는 교훈

중앙선데이 2010.07.11 01:29 174호 34면 지면보기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쓰레기 만두소 사건이 일어난 건 2004년이다. 한 납품업자가 쓰레기로 버려지는 중국산 단무지 자투리를 유명 식품회사의 만두 소 재료로 납품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여론은 들끓었고 소비자들은 분노했다. 불똥은 쓰레기 만두소를 쓰지 않은 멀쩡한 만두회사로까지 옮겨 붙었다. 불매운동이 시작됐다. 만두 시장은 꽁꽁 얼어붙었다. 매출 급감을 견디지 못한 회사들은 하나둘 문을 닫았다. 만두업계 최대의 시련이자 위기였다.

이정민 칼럼

이때 한 회사가 치고 나왔다. 취영루라는 회사다. 서울 소공동에서 화교가 운영하던 물만두집(취영루)을 2000년에 인수해 만든 후발업체였다. 취영루의 박성수 사장은 파격적인 조치를 취했다. 우선 ‘취영루 만두에서 단무지나 무 성분이 나오면 즉시 회사 문을 닫겠습니다’는 광고를 냈다. 그리고 스스로 생산공정의 전 과정을 공개했다. 직원들은 “관람객을 들여보내면 생산성이 떨어지고 오히려 위생상태가 나빠질 수 있다”며 반대했지만 박 대표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스스로 치부를 다 드러내는 승부수를 던짐으로써 의혹을 씻어내려 한 것이다. 파주공장엔 주부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만두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눈으로 확인한 주부들은 안심하고 취영루 만두를 골라 들었다. 매출은 껑충 뛰었다. 취영루는 국내 식품·외식업계로선 처음으로 코스닥에 상장했다. 위기(危機)도 잘 극복하면 얼마든지 기회(機會)로 바꿀 수 있다는 교훈을 일깨워준 일대 ‘사건’이었다.

살다 보면 누구나 몇 차례씩 위기를 겪게 된다. 회사도 국가도, 그리고 개인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대통령도 지금 위기를 맞고 있다. 지방선거 참패에 이어 민간인 사찰 문제가 도화선이 됐다. 영포목우회·선진국민연대 등 비선(秘線) 라인과 사조직의 국정 개입 의혹으로 증폭되고, 급기야 권력 내부의 다툼으로 비화하고 있다. 야당은 연일 새로운 의혹을 쏟아내며 벌어진 틈새를 파고들고 있다. 대통령은 취임 첫해 미국산 수입쇠고기 촛불 시위로 시련을 겪었지만 어떤 면에선 그때보다 오히려 지금이 더 큰 위기일 수 있다. 그땐 최소한 ‘여권은 하나’였다. 친이도 친박도 TK도 소장파도 한목소리를 냈다. 오는 8월 25일이면 임기 후반기로 접어드는 터닝포인트를 지나게 된다. 지금의 위기를 잘못 관리하면 까딱하다간 레임덕(권력누수)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 대통령은 검찰에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 국정 쇄신과 주요 포스트의 세대교체도 예고했다. 하지만 속도는 더디고 가슴 후련한 획기적 조치는 보이지 않는다. 기업 CEO 출신인 이 대통령은 아마 검찰 수사→문책과 인사조치→쇄신책 마련이란 수순을 그리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곧 밀려올 쓰나미를 목격한 국민에겐 ‘이제부터 둑을 쌓겠다’고 나서는 것처럼 안이하게 느껴질 뿐이다.

위기의 단초가 된 민간인 사찰 문제는 이 대통령의 가장 가까이서 벌어졌다. 대선 때 이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던 ‘동지’들과 권력 핵심이 주요 등장 인물들이다. 이는 역대 정권에서의 비선 논란을 연상시킨다.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던 영포회나 선진국민연대의 면면은 상도동계(김영삼 정부), 동교동계(김대중 정부), 386(노무현 정부)의 국정농단 논란과 오버랩된다. 대통령이나 당사자들은 억울해할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랄 수밖에 없는’ 국민을 탓할 수는 없다. 쓰레기 만두소를 쓰지 않은 회사 제품까지 도매금으로 불매 대상이 된 것처럼 말이다. “우리 회사는 쓰레기 만두소를 쓰지 않았다”고 외쳐봐야 이미 등돌린 소비자의 마음을 되돌릴 순 없다. 나중에 당국의 정밀한 수사 결과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한들 이미 회복 불능 상태에 빠진 회사를 회생시키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선제적이고 과감한 조치를 내려야 한다. 상식적이고 통상적인 방법은 통하지 않는다. 국민의 신뢰로부터 멀어진 검찰에만 이 사건을 맡겨둬서도 안 될 일이다. 권력의 핵심에서 벌어진 일인 만큼 대통령 스스로 ‘나도 수사선상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각오로 나서야 한다. 그래야만 검찰 수사도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 취영루의 박 사장이 했던 것처럼 치부까지 다 드러낼 수 있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위기를 뜻하는 영어 ‘Crisis’는 원래 회복과 죽음의 분기점이 되는 갑작스러운 병세의 변화를 가리키는 그리스의 의학용어(Krinein)에서 나왔다고 한다. 위기는 곧 기회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다만 그걸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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