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맨발의 꿈’에 이름 올린 외교관들

중앙선데이 2010.07.11 01:28 174호 35면 지면보기
영화가 끝났다.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주변에 앉은 관객 몇몇도 그랬다. 가슴에 닿은 울림이 컸다. 빠르게 올라가는 ‘엔딩 크레디트’에 눈을 고정시켰다. 출연자들의 이름, 스태프들의 이름이 궁금했다.

On Sunday

영화는 ‘맨발의 꿈’. 탈북 이야기를 다룬 ‘크로싱’의 김태균 감독이 만든 영화다. 축구 감독 김신환씨가 동티모르에서 사업에 실패하고,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쳐 2004년 국제 유소년 축구대회에서 우승한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400년 동안 포르투갈의 식민지배를 받다가 다시 인도네시아에 점령됐고 마침내 2002년 독립한 동티모르인들의 신산한 삶이 그려졌다. 축구감독 김원광(박희순 연기)은 내전에 지친 동티모르인과 아이들에겐 꿈과 희망의 전도사다.

‘엔딩 크레디트’를 지켜본 보람이 있었다. 영화에서 ‘열혈 응원’ 신을 보여준 동티모르 총리가 실제 사나나 구스마오 총리였고, 유엔 헌병 차량도 배우들이 아닌 실제 현장의 유엔 평화유지군이었다. 기자의 눈을 사로잡은 이름들이 또 있었다. 도움주신 분들-외교통상부 문화외교국장 조대식, 문화협력과장 이은철, 문화협력과 서기관 조민정. ‘버버리코트 입고 폼 잡는’ 외교관들이 영화에 이름을 올리다니…. 관료사회에선 이례적인 일이다.

지난해 5월 김태균 감독이 외교부로 전화했다. “동티모르에서 영화를 찍고 싶은데 막막하다. 좀 도와달라.” 동티모르는 독립 후에도 내전으로 유엔군의 엄호가 없으면 한발짝도 다니기 어려운 지역이다. ‘개도국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컨셉트의 시나리오가 좋았다. 평소, 국민 외교의 시대 소프트파워로 자국민과 상대국민을 이해시킨다는 ‘공공외교(Public diplomacy)’ 패러다임에 목소리를 높여온 조대식 국장이 나섰다. 주동티모르 서경석 대사와 함께 경호에서부터 구스마오 총리 섭외까지 했다.

영화에서도 외교관이 주연급으로 나온다. 동네 이장 같은 캐릭터로 김원광의 뒷일을 챙겨주는 박인기 영사(고창석 연기)다. 6년 전 동티모르 대사관의 박진기(현재 주 선양 총영사관 근무) 영사를 모델로 했다. 서경석 대사는 지난해 9월 부임하기 전 김태균 감독을 만나고선 자신의 이삿짐 컨테이너 박스를 비우고 현지 아이들에게 필요한 영양제를 꽉 채워 갔다. 60년 전 한국의 상황과 비슷한 동티모르, 영화관 하나 없는 이곳에서 연기한 실제 축구선수 아이들은 동티모르 역사상 최초의 배우가 됐다. ‘맨발의 꿈’은 상업영화로는 처음 유엔에서 시사회를 열었다. 38세의 여성 외교관 소피아 보르지스 주유엔 동티모르 대사의 감동에 찬 모습은 외교가의 화제다. 제작진은 “찍어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다.

이 영화로 외교부가 의도한 것은 외교부 직원에 대한 일반의 인식 제고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지구촌 시민으로서 한국 젊은이들의 역할이다. 조대식 국장은 “한국은 개도국에 학교를 지어주고, 경제 발전 노하우를 전수하는 것 이상으로 꿈과 희망을 줄 수 있음을 우리 젊은이들이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관료의 경직성을 깨고 공공외교를 실천하는 조 국장의 시도에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호평에도 불구하고 대형 영화관들이 벌써 이 영화의 간판을 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