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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서점 ‘회동서관’ 맥 잇는 도심 속 지식의 오아시스

중앙선데이 2010.07.11 01:20 174호 31면 지면보기
<1> 시민들이 서고의 책을 편안히 읽을 수 있게 꾸민 교보문고 강남점 ‘티움’ 공간. <2>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서점 회동서관의 1913년 이전 모습. 한용운의 ‘님의 침묵’, 이광수의 ‘무정’ 등을 출간하는 출판사도 겸했다. <3> 경성 남부 대광교(大廣橋·전 조흥은행 본점 자리)에 있던 회동서관 표석. <4> 1981년 6월 교보생명 빌딩 지하 1층에 문을 연 교보문고 광화문점은 현재 공사 중. 전면 개·보수를 마치고 8월 중 다시 열 예정이다. 신동연 기자, 출판문화협회 제공
다수의 독자가 신간도서를 전국에서 거의 동시에 소리 내지 않고 읽는 것, 그것이 바로 근대의 풍경이다. 철도가 놓이고 활판 인쇄소가 들어서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소리 내지 않고 책을 읽는 묵독(默讀) 습관 또한 근대의 산물이다. 근대 이전에는 개인이건 단체건 주로 낭독(朗讀)하는 것이 관례였다. 깊이 침잠된 상태에서 눈으로만 책을 읽는 행위는 일종의 주술로 여겨져 금기시되었다. 전체주의 정권은 그런 책 읽기를 두려워했는데 그것은 묵독하는 사람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무엇을 도모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묵독 습관은 근대성의 지표인 개인의 발견과 사적 영역의 탄생을 불러왔다.

사색이 머무는 공간<40> 교보문고 광화문점

근대적 출판활동은 공간을 좁힌 철도와 함께 개화의 견인차다. 1883년 10월 조선 정부가 출판기관 박문국(博文局)을 설치한 이후 신식 활판소들이 생겨났고 서울 종각과 남대문 일대에 서포(書鋪)·서사(書肆)·책사(冊肆) 등으로 불린 서점들이 들어섰다. 개화기 서점들은 출판을 겸하는 경우가 많았다.

서울의 중심 종로 1번지 교보문고 광화문점은 100여 년 전 근대화 시기의 서점가 계보를 잇고 있다. 대한민국 대형 서점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교보문고는 국민 정신문화를 이끌어온 도심 속 문화공간이다. 현재는 리모델링 공사를 하고 있어서 지하철 역사 공간 3곳에 모두 90평 규모의 ‘팝업 스토아’를 운영, 1만7000여 권을 전시·판매한다.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주문한 책을 1시간 안에 찾아갈 수 있는 ‘바로드림 서비스’도 제공한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교보문고는 1980년 12월 교보생명 자회사로 등록하고 이듬해 6월 오픈했다. 창업자 신용호(2003년 작고) 회장은 해방 직후 ‘민주문화사’라는 출판사를 만들어 『여운형 선생 투쟁기』를 출간한 바 있었다. 악조건 속에서 곧 문을 닫고 말았지만 훗날 출판사까지 갖춘 국내 최대의 서점 기업으로 거듭난다. 일본의 기노쿠니야(紀伊國屋)나 산세이도(三省堂) 같은 서점을 꿈꾼 신용호 회장의 책 사랑은 유별나다.

세종로 네거리 교보생명 빌딩은 입지적인 여건이 좋아 준공되기 전부터 지하 1층을 임대하겠다는 기업체가 많았다. 하지만 신 회장의 소신은 분명했다. 처음부터 이 나라 젊은이들과 지성들에게 양서를 공급하는 번듯한 직영서점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글귀를 서점 입구 벽면에 새기도록 한 이도 신 회장이다.

81년 6월 1일 교보문고 광화문점이 문을 열었다. 678평의 공간에 60만 권의 도서가 비치되었다. 교보문고는 독자들이 직접 책을 뽑아 볼 수 있도록 개가식 진열 방식을 채택했다.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 구매하는 불편을 줄이기 위해서다. 독자가 마음대로 책을 뽑아볼 수 있는 개가식 시스템은 믿음과 배려를 전제로 한다. 도난과 훼손의 여지를 감수하면서 개가식을 택한 건 책 살 돈이 없는 독자에게도 지식을 공급하자는 취지였다.

678평 가운데 200평은 외국서적 코너였다. 학술서적과 과학기술 서적을 수입해와 대학과 연구소·기업체의 연구 활동에 도움을 주기 위함이었다. 이도선 초대 사장은 담당 직원을 데리고 직접 미국과 유럽의 저명한 출판사를 찾아다니며 책을 구입했다. 외국서적 코너는 선진국의 고급 정보에 목마른 지식인들이 즐겨 찾는 옹달샘이 되었다.

신간이 늘어나고 방문 고객수가 증가하면서 광화문점은 확장을 거듭해 왔다. 개업 8년째인 88년 매장면적을 두 배로 늘렸고 91년에는 1년 동안 문을 닫고 전면 개보수 공사를 했다. 그리하여 국제규격 축구장보다 넓은 2708평, 서가 길이 25㎞의 단일층 매장은 도심 속의 열린 도서관이 되었다. 이후 대전·성남·대구·부산·부천·인천 등 전국 16개 오프라인 매장과 인터넷 교보문고로 발전했다. 2003년에 오픈한 강남점은 국내 최대 규모(3600평)다.

오프라인 매장은 북 카페와 음반·문구점을 갖춰 ‘복합지식 문화공간’을 지향한다. 인터넷 교보문고는 ‘없는 책이 없는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절판된 책은 도서관 장서목록으로 연결해 준다.

회동서관서 ‘님의 침묵’ 발행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서점과 출판사는 회동서관(東東書館)이다. 1897년에 서울 중구 남대문로 1가 전 조흥은행 본점 자리에 고제홍(高濟弘·1860~1933)이 창업했고 그의 아들 고유상(高裕相·1884~1971)이 대를 이었다. 1909년 고유상이 출판한 『자전석요(字典釋要)』는 종두법을 도입한 개화기 지식인 지석영(池錫永)의 저술로 우리나라 최초의 베스트셀러다. 초판을 무려 5000부나 찍었고 20여 쇄를 거듭하여 10만 부를 돌파했다. 오늘날에도 인문학서적 초판본 5000부 인쇄는 감히 시도할 수 없는 어마지두 한 일임을 감안할 때 당시 사람들의 지적 욕구를 짐작하게 한다.

만해 한용운의 시집 『님의 침묵』과 춘원 이광수의 『재생』도 1926년 회동서관이 발행했다. 당시 일제의 출판 탄압은 극심했다. 초대 총독 데라우치는 문화 악법 ‘출판법’을 내세워 위인전과 역사서들을 불사르고 판금 조치했다. 무장한 헌병이 서점 앞을 지키고 서 있는 상황에서도 왕성한 출판활동과 서적 판매를 해오던 회동서관은 1932년께 은행에 넘어가고 만다. 고유상이 광산에 투자했다가 결정적인 손실을 보고 만 탓이다. 지금도 출판인들이 출판계에서 번 돈을 다른 데 투자했다가 망하는 예가 종종 있다.

대한민국에는 100년 된 서점이나 출판사 하나가 없다. 서점이나 출판업이 오랫동안 국민의 사랑을 받는 기업이 되는 것처럼 바람직한 일도 없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은 9월 초에 ‘드림스퀘어’로 새롭게 단장하여 독자를 맞는다. 어머니의 젖을 떼면서 옹알옹알 배운 모국어와 글로 낙원을 찾아 떠나는 지식 여행자들에게 ‘복합지식 문화공간’인 서점은 도심 속의 천국이다. 일찍이 “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고 말한 이는 책 읽기가 곧 지복(至福)임을 알아채고 즐긴 몽상가다. 번다한 세상사를 잊고 책 속에 파묻혀 진리의 샘물을 퍼 올리는 행위는 지식인들의 영원한 로망이다. 11세기 초 페르시아 총리 암둘 카셈 이스마엘은 책들과 헤어지기 싫어서 여행을 할 때면 11만7000권에 달하는 책들을 400마리의 낙타에 싣고 다녔다고 한다. 참으로 지독한 독서광이다.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을 정도로 사치스러운 삶을 살았던 그를 비난하고픈 마음이 없다. 괴짜인 그의 탐독이 마냥 부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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