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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룡 대표 “1981년 개점 땐 저 넓은 공간 어떻게 채우나 한숨”

중앙선데이 2010.07.11 01:17 174호 31면 지면보기
“책과 함께해온 부정할 수 없는 ‘교보문고인’이 저랍니다. 지난 30년 세월은 어디다 내놔도 전혀 부끄럽지 않은 인생, 보람찬 나날이었다고 자부하지요.”

㈜교보문고 김성룡(57·사진) 대표이사는 모든 사람이 역량을 키워 더 나은 세상을 만들도록 도와주는 것이 공기업 개념을 중시하는 교보문고인의 미션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모기업인 교보생명에서 자산관리 업무를 하다가 교보문고 설립 직후 외국서적 담당자로 차출되었다. 영어교육과 출신에다 무역회사 근무 경력이 고려되었던 것이다.

“3개월쯤 일했는데 이도선 사장이 아예 교보문고로 적을 옮기라고 강권했습니다. 그렇게 외국서적 수입 과장서리가 되었지요. 개점 일에 맞춰 200평 외서코너 서가를 채우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진땀이 납니다.”

사장, 외서 담당부장이 미국·유럽 10여 개국을 돌면서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한편 닥치는 대로 책을 사들였다. 그렇게 어렵사리 준비를 마치고 조심스럽게 개점했다. 외서 수요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전국에서 원전을 찾아 몰려든 교수들과 연구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앞다퉈 책을 뽑아가자 서가는 폭탄을 맞은 것처럼 넘어진 책들로 어지럽게 되었다. 선진지식을 국민에게 원활히 공급하겠다는 취지가 대성공을 거두는 순간이었다.

“기쁨보다는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저 빈 공간을 무슨 수로 다시 채우지, 하는 생각부터 들더군요. 재주문한 도서는 선박화물을 통해 오기 때문에 3개월이나 걸렸거든요. 신용호 회장님의 유일한 채근은 왜 책이 없느냐, 당장 들여와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일본 도매시장 창고로 날아가 현물 보고 뽑아오는 일이 대안이었지요. 20일 정도면 도착했으니까요.”

하지만 현상유지였지 이익을 내지는 못했다고 한다. 현지 가격에 30% 정도를 얹은 싼 가격으로 공급했고 반품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잘나가는 책은 며칠 후면 어김없이 해적판이 나돌았다. 지금과 달리 외서는 저작권법에서 자유로웠다.

“출판사 사장이 교수를 동반하고 와서 잽싸게 신간을 뽑아갑니다. 얼마 있다 새 책을 만들어서 그걸 싸들고 와 팔아달라며 납품하던 시절이 있었답니다.”

한국 산업 브랜드 파워 서적판매부문과 고객만족도 1위를 자랑하는 교보문고지만 인터넷서점부문에서는 국내 3위에 그친다. 한국 인터넷서점의 선두주자는 교보문고다. 1997년 9월에 개설하고 3년 뒤에 후발주자들이 가격 할인 정책을 들고 나왔다. 김 대표는 가뜩이나 어려운 국내 출판계에 끼칠 부정적인 영향을 우려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서점 CEO인 김 대표는 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라도 부러워할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그에게 있어 책은 무엇이며 인생을 바꾼 책이 있느냐고 물었다. “책은 길이며 무수한 책의 영향을 고루 받는 게 우리 인생”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다. 우리는 대개 책을 통해 먼저 현실감을 느끼고 나중에 실제 대상을 체험하곤 한다. 이 신비하고 광대한 우주로 열린 길, 혹은 내면세계로 향하는 길이 책 속에 있다. 때로는 나침반, 때로는 안경, 때로는 거울이 되기도 하는 책은 지식의 곳간이자 상상력의 날개다. 그전에 읽었던 책들과 비교하고 자유로이 연상 작용을 하는 독서행위는 보르헤스의 표현대로 ‘가장 세련된 형태의 간통’이기도 하다. 이 오래된 간통은 전적으로 무죄며 권장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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