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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교환

중앙선데이 2010.07.11 01:11 174호 33면 지면보기
미국에서 활동하던 러시아 첩보원들이 최근 잡혔다. 러시아가 잡고 있는 미국 정보원들과 곧 맞교환될 것이라고 한다. 이미 끝난 냉전의 기억을 새삼 떠올리게 하는 사건이다.

채인택의 미시 세계사

첩보원에는 합법과 비합법 요원이 있다. 합법 요원은 주로 외교관 신분으로 파견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냉전 시절 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으로 동독 공관에서 활동했다. 합법 요원은 걸려도 본국으로 추방당하면 그뿐이다. 하지만 비합법 요원은 보호막이 없다. 걸리면 목숨을 잃거나 잘해야 감옥행이다. 물론 빠져나갈 길은 있다. 적의 스파이와 교환돼 금의환향하는 방법이다. 스파이 교환은 나라를 위해 일한 사람을 보호해 국가의 자존심을 지키고 요원들의 충성심에 보답하는 좋은 방법이다.

냉전 시절, 교환장소로 유명했던 곳이 서베를린과 동독의 브란덴부르크 사이에 있는 글리니케 다리다. ‘스파이 다리’로 불렸던 이곳은 숲에 둘러싸여 조용했다. 미국과 소련은 이곳을 세 차례에 걸쳐 교환 장소로 이용했다. 첫 교환은 1962년 2월 10일 이뤄졌다. 뉴욕에서 암약하던 KGB 스파이 루돌프 이바노비치 아벨과 미 중앙정보국(CIA) 소속의 고공첩보기 U-2 조종사였던 프랜시스 개리 파워스가 맞교환됐다. 85년 6월 12일에는 동유럽에서 체포된 23명의 미 정보원과 서방에서 잡힌 폴란드 첩보원 마리안 자카르스키 및 3명의 소련 요원이 대상이었다. 86년 2월11일 소련은 자국 인권운동가인 아나톨리 샤란스키와 3명의 서방 요원을 내놨고, 미국은 체코슬로바키아 정보원으로 CIA에 직접 침투해 암약하다 붙잡힌 카를 쾨허와 4명의 다른 동유럽 요원을 보냈다.

맞교환 소련 스파이 1호인 아벨은 부모가 독일계 러시아인이다. 사회주의 혁명가였던 부모가 망명 중이던 영국에서 태어났다. 17세 때 소련에 가서 통역사와 무전기사로 일했다. 영어 실력을 무기로 종전 뒤 캐나다를 거쳐 47년 미국 뉴욕에 침투했다. 핵무기 제조기술을 비롯한 군사정보를 수집했다. 얼마나 활약이 대단했으면 소련이 U-2기 조종사와 맞교환했을까. 하지만 그는 자신의 활약상에 대해 끝까지 입을 다물었다.

그의 이름은 셋이다. 스파이로 일할 때는 에밀 로버트 골드퍼스라는 가명을 썼다. 잡히기 직전 아벨이라는 이름으로 무전을 보냈다. 체포를 알리는 암호였다. 그래서 법정에선 아벨로 불렸다. 본명은 빌리암 겐리코비치 피셔다. 90년 소련이 발행한 기념우표에는 ‘소비에트 정보원 R.I 아벨 1903-1971’이라고 적혀 있다. 스파이답게 끝까지 가명이다.

레닌훈장을 받은 그는 귀국 뒤 첩보원 교육을 하다 71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크렘린 남쪽 돈스코이 사원에 소련 영웅으로 묻혔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딸에게 유언을 남길 때는 영어로 말했다. 내용도 “독일계임을 잊지 말라”는 것이었다.

스파이 교환이라는 말을 들으니 아직도 북녘에 살아있을 국군포로와 북파공작원들이 떠오른다. 나라를 위해 싸웠던 이들을 모셔올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일까. 돌아가셨으면 유골이라도 찾아 국립묘지에 안장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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