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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홍의 소프트파워] 코끼리는 상아 때문에 죽는다

중앙일보 2010.07.09 19:10 종합 30면 지면보기
# 2세기께 중국 후한(後漢) 시대의 삼대 저작이 있다. 왕충(王充)의 『논형(論衡)』, 중장통(仲長統)의 『창언(昌言)』, 왕부(王符)의 『잠부론(潛夫論)』이 그것이다. 여기서 ‘잠부(潛夫)’란 일체의 공직에 발을 들여놓지 않고 오로지 독서와 저술로 일관한 이를 말한다. 한마디로 은둔거사를 뜻한다. 그 은둔거사가 쓴 『잠부론』에 이런 말이 있다. “코끼리는 상아 때문에 죽는다.”


이명박 정부는 상아 싸움에 골병 든 코끼리!
권력의 노른자위에 앉아 상아만 탐하는 자들은
차라리 코끼리 사육소로 보내야 옳지 않을까?

# 예로부터 상아(象牙)는 값지고 귀했다. 하지만 그것은 코끼리의 위턱 송곳니가 길게 자란 것이기에 코끼리를 잡아야만 얻을 수 있다. 만약 상아가 별 볼 일 없는 것이었다면 코끼리는 사냥의 대상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상아가 값지고 귀하기에 코끼리는 그 상아 때문에 죽음을 당하는 운명이 됐다. 결국 상아를 얻으려고 인간은 코끼리를 죽였고 또 죽인다. 인간이 상아를 얻기 위해 코끼리 사냥을 마구잡이로 하는 바람에 특히 상아질이 좋기로 소문난 아프리카 코끼리는 멸종위기에 처했다.



# 요즘 이래저래 골머리 아픈 이명박 정부는 스스로 그 정권을 창출했다고 착각하는 이들이 서로 상아를 갖겠다고 싸우는 바람에 골병 든 코끼리와 다름없어 보인다. ‘영포회’니 ‘선진국민연대’니 하는 이름이 인구에 회자되는 까닭도 이명박 정부의 권력 핵심부가 거의 자해적 수준에 가까운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자고로 권력에는 항시 암투가 있기 마련이겠지만 이명박 정부처럼 노골적으로, 그리고 유치하리만큼 권력 내부에서 싸움박질이 있는 경우를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아직껏 보지 못했다. 그들은 권력의 엑기스가 담긴 상아를 독차지하려고 그 상아가 붙어 있는 코끼리 자체를 스스로 죽이길 주저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서로 상아를 독차지하겠다고 자해행위를 무릅쓰며 아예 코끼리 자체를 죽여도 좋다는 심산이다.



# 몇 해 전 출간된 ‘미국의 진보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라는 부제가 달린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라는 책에서 저자인 조지 레이코프는 “상대방의 (생각의) 프레임을 공격하지 말고 대신 그 프레임을 재구성하라”고 조언한 바 있다. 조지 레이코프는 미국 공화당을 코끼리에 비유해 이 책을 썼다. 민주당이 공화당 페이스에 말려들지 말고 독자적인 새로운 이슈 제기와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해야 다음 선거에서 이긴다는 정치적 조언이 담긴 것이다.



# 그런데 우리나라의 정부·여당과 보수세력을 코끼리라고 가정한다면 정작 우리는 아무도 코끼리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코끼리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래서 정부·여당과 보수세력이 뭐를 내놓아도 이슈 선점은커녕 망신스럽게 흐지부지되기 일쑤다. 세종시 문제가 대표적인 경우다. 그러니 ‘책임 있는 정부·여당’이란 말은 아예 사라진 어휘가 되었고 지금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정부·여당’이 새로운 슬로건이 됐다.



# 지난 8일 우리 공군의 C-130기가 코끼리 두 마리를 싣고 서울로 향했다. 훈센 캄보디아 총리가 지난달 말 자국산 수컷(20살)과 암컷(27살) 코끼리 한 쌍을 서울시에 기증하도록 최종 재가함에 따라 이들 코끼리를 국내로 수송하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나라엔 코끼리가 전국 6개 동물원에 11마리뿐이다. 그런데다 이 중 5마리인 암컷이 가임 연령(15~30살)을 지났거나 경계선에 있고 특히 서울어린이대공원에는 수컷 코끼리만 있어 자칫 한국에서 살고 있는 코끼리의 대(代)가 끊길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하지만 이번에 캄보디아에서 코끼리 암수 한 쌍이 무상기증 형식으로 들어와 우리나라 코끼리 번식 작업에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 정부·여당 내에서 권력의 노른자위에 앉아 상아만 탐하는 자들은 코끼리 사육소로 보내 코끼리 증식에 이바지하도록 하는 것이 그 개인이나 정부·여당, 그리고 무엇보다 국가를 위해 좋을 듯싶다.



정진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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