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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권력투쟁 ‘4차 친이의 난’

중앙일보 2010.07.09 02:07 종합 2면 지면보기
민간인 불법 사찰에서 시작된 의혹 시리즈가 ‘영포목우회’를 거쳐 2007년 대선 당시 전국 조직인 ‘선진국민연대’로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민주당 등 야권은 여권 내 비선라인들이 국정을 농단했다는 의혹을 연일 제기하고 있다. 선진국민연대 인사들이 금융계 인사에 관여했다는 폭로가 신호탄이다. 문제는 이런 의혹의 진원지로 여권 내부의 권력투쟁이 지목받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 주장의 사실 여부를 떠나 이명박 정부 출범 2년 반 동안 여권 내부에 극심한 분열이 존재해온 건 부인하기 어렵다. 특히 박영준 총리실 국무차장을 위시한 ‘친이상득 의원, 선진국민연대파’, 정두언 의원을 비롯한 한나라당 내 소장파가 갈등의 두 축이었다. 가끔은 이재오 전 의원계까지 가세하는 3각 분열 양상도 연출됐다. 여권 내 진흙탕 싸움은 2010년 7월에도 현재진행형이다.


박영준 측 “누군가 민주당 통해 박영준 죽이기 나서”
정두언 측 “김대식 내보내 정두언 전대 떨어뜨리기”

#4



박영준 측 “정두언 측, 당·정 개편서 요직 노려”

정두언 측 “선진국민연대 측이 민주당에 놀아나”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4라운드(2010년 7월)
=한나라당은 8일 발칵 뒤집혔다. 민주당이 제기한 권력투쟁설 때문이다. 선진국민연대 출신인 권성동·장제원·조진래 의원은 일제히 “도대체 배후가 누구냐”며 격하게 반응했다. 선진국민연대 교육문화위원장 출신 장 의원은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누군가 민주당을 통해 권력투쟁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 박영준 국무차장 한 사람 죽이기로 한나라당 전당대회와 정부·청와대 개편 과정에서 요직을 차지하려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선진국민연대 강원 대표 출신으로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지낸 권성동 의원은 “박형준 정무수석을 동원해 선진연대 출신 김대식 후보를 주저앉히려다 실패하자 타깃을 선진연대로 돌린 것으로 의심된다”며 정두언 의원을 지목했다.



권 의원의 말은 반은 맞다. 김대식 전 민주평통 사무처장의 전대 출마는 갈등의 도화선이 됐다. 정 의원 측은 “김 전 처장의 출마는 정 의원을 전대에서 떨어뜨리려는 ‘범박영준파’의 음모”라고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다. 당사자인 정 의원은 그러나 “말만 하면 권력투쟁이라고 하는데 아무 얘기도 않겠다”며 말을 아꼈다. 정 의원 측은 “이번 파문이 여권 내 권력투쟁으로 비화할 경우 전당대회에서 큰 피해를 보는 게 누구겠느냐”며 “선진연대 측이 민주당에 놀아나고 있다”고 반박했다.



김무성 원내대표는 “여권을 분열시키려는 야당의 정치공세는 청산할 구태”라며 표적을 민주당으로 돌리려 애썼다. 하지만 이런 당 지도부의 노력이 역부족으로 느껴지는 건 양측의 갈등이 뿌리가 그만큼 깊어서다. 분열의 씨앗은 대선 승리 직후 인수위 시절에 이미 잉태됐다.



#1



인수위 출범 직후 청와대·내각 인선 작업

정두언 배제하고 ‘박영준 라인’이 도맡아



◆1라운드(2008년 1월)
=“어느 날부터인가 정 의원이 인사 관련 서류를 볼 수 없게 됐다”(정두언 의원의 측근). 대통령직 인수위가 막 출범한 2008년 1월 중순 이 당선인의 핵심 측근인 ‘당선인 보좌역’ 정두언 의원이 청와대와 내각 인선작업에서 배제됐다.



정 의원의 측근은 “당시 박영준 당선인 비서실 총괄팀장(현 총리실 국무차장)이 인수위 직원들을 상대로 ‘청와대 근무 지원서’를 받고 있어 정 의원이 크게 놀랐다. 게다가 하루 전까지 접근이 가능했던 인사 관련 자료에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차단했다”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경선캠프에서부터 ‘제1호 측근’이라고 불렸던 인물이었다. 캠프의 각종 기획업무를 도맡았고, 대선 승리 뒤엔 인수위 인사까지 책임졌었다. 이런 ‘정두언 라인’ 대신 ‘박영준 라인’이 인선작업을 도맡게 된 것이다. 이 당선인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지만 양 측의 설명은 판이했다. 박 차장 측은 “정 의원이 경기고 동창 인맥을 인수위에 대거 진출시킨 것을 본 이 대통령이 무척 못마땅해했다”고 했고, 정 의원 측은 “박 차장이 정 의원의 활동을 왜곡하는 바람에 이 대통령이 오해를 하게 됐다”고 의심했다. 어쨌든 인사 주도권은 박 차장에게 넘어갔고, 그 뒤 정 의원은 힘이 빠졌다. 갈등의 골도 그만큼 깊어졌다.



#2



정두언, 박영준과 친한 이상득 의원 공격

박영준도 눈물 흘리며 청와대에서 짐 싸



◆2라운드(2008년 3~6월)
=박 차장은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 보좌관을 10년6개월 동안 지냈다. 그래서‘정두언-박영준’의 갈등은 ‘정두언-이상득’의 갈등이기도 했다. 18대 총선을 앞둔 2008년 3월 정두언 의원 등 55명의 출마자는 이상득 의원의 불출마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여권 내부는 들끓었다. 우여곡절 끝에 이 의원은 출마했지만, 안으로 곪은 갈등은 3개월 뒤 ‘권력 사유화 발언 파문’이란 전면전으로 폭발했다. 당시 박 차장은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이었다. 사실 경선 때만 해도 캠프 내부에서의 위상은 현역 의원인 정 의원이 훨씬 높았다. 조직업무에만 집중했던 박 차장은 김대식 전 민주평통 사무차장과 함께 전국을 누볐다. 그때 만들었던 조직이 지금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선진국민연대’다.



박 차장을 신임하게 된 이 대통령은 ▶부처 정책 조율 ▶청와대 운영 ▶각종 정보 취합에다 내부 감찰권까지 그에게 맡겼다. 그래서 그는 ‘왕비서관’으로 불렸다. 광우병 쇠고기 파문으로 정권에 첫 위기가 찾아오자 정 의원은 “인사(人事)라는 전리품을 독식하고, 강부자 내각을 만들었다” “권력을 사유화하고 있다”고 박 차장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박 차장은 결국 비서관직을 사퇴했고, 눈물을 흘리며 짐을 쌌다. 당시 박 차장과 가까운 청와대 직원 몇몇이 대통령 집무실을 찾아가 “박 비서관을 떠나게 해선 안 된다”고 진언한 것은 숨겨진 비화다. 내전은 끝났지만, 청와대를 떠난 박 차장이나 박 차장의 옷을 벗긴 정 의원 모두 상처만 남았다.



#3



‘정두언 추천설’ 김유환 총리실 정무실장

박영준과 선진국민연대라인이 반대 소문



◆3라운드(2009년 6월~2010년 2월)
=청와대를 떠난 박 차장은 지방을 떠돌며 권력과 거리를 뒀다. 그러다 2009년 1월 차관급인 총리실 국무차장으로 복귀했다. 두 사람의 갈등도 잠복했다. 이따금씩 안국포럼 등의 모임에 함께 참여하며 ‘화해설’까지 보도됐다.



하지만 휴전은 오래가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인 2009년 6월 초 ‘7인의 사무라이’라 불린 7명의 소장파 의원이 “민심 이반은 현 정부의 독선과 오만에 대한 심판”이란 내용의 기자회견을 했다. 정권 출범 이후 계속됐던 ‘만사형통’(萬事兄通·모든 일은 형을 통해야 한다)’ 논란을 문제 삼은 거였다. 정 의원이 참여한 이 회견 뒤 이상득 의원은 정치 2선 후퇴를 선언했다.



갈등은 지난 2월 김유환 총리실 정무실장의 임명과정에서 다시 부각됐다. 정운찬 총리가 국정원 경기도지부장 출신의 김 실장을 기용하려는 과정에서 양측이 또다시 충돌했다. ‘정 의원이 정 총리에게 추천한 김 실장을, 박 차장과 청와대 선진국민연대라인이 반대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김 실장은 우여곡절 끝에 임명됐고, 그 무렵 정 의원도 이 대통령에게 가까이 갈 기회를 잡았다. 권력 사유화 발언 등으로 눈 밖에 났던 정 의원은 이즈음 청와대 면담에서 이 대통령의 재신임을 받았다. 정 의원은 지방선거기획위원장으로 복귀했고, 전당대회 대표 경선에 출마했다. 그러나 갈등은 여전히 잠복한 거였다.



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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