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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러 ‘스파이 맞교환’ 물밑 움직임 빨라져

중앙일보 2010.07.09 01:02 종합 16면 지면보기
‘본드걸’ 뺨치는 미모의 러시아 미녀 스파이 체포. 뒤이은 러시아의 서방 스파이 모스크바 이송. 그리고 미국과 러시아의 스파이 맞교환.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007 영화를 방불케 하는 첩보전이 벌어지고 있다고 로이터·AP통신을 비롯한 현지 언론이 7일(현지시간) 전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주미 러시아대사는 이날 비밀 회동을 통해 맞교환 대상을 각각 10명씩으로 최종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AP·로이터 “CIA-주미 러 대사 비밀회동 … 안나 채프먼 등 양국 10명씩 최종 조율”

러시아가 요구한 인물에는 지난달 검거된 여자 스파이 안나 채프먼이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그를 포함한 10명의 러시아 스파이 용의자는 지난달 미국 정보 당국에 의해 체포됐다. 미국이 구금하고 있는 10명의 러시아 스파이는 8일 뉴욕 맨해튼의 연방법원에서 재판을 받도록 긴급 이감됐다. 이들은 유죄를 시인하는 대신 형량을 감형 받는 형식으로 풀려나 제3국행 비행기를 탈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교환을 원하는 인물로는 러시아 내 대표적 군축 및 핵 전문가인 이고르 수티아긴 박사가 포함됐다. 그는 러시아의 핵잠수함 보유 현황과 같은 군사기밀을 영국 기업에 건넸다가 체포돼 2004년 15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러시아 당국은 그가 거래한 영국 기업이 미 CIA의 전위조직이라고 주장했다. 2006년 영국 스파이로 활동한 혐의로 체포된 세르게이 스크리팔도 교환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번 스파이 맞교환설은 시베리아 감옥에 수감 중이던 수티아긴 박사가 갑작스럽게 모스크바로 이송되면서 불거졌다. 러시아 당국은 이례적으로 수티아긴 박사에게 변호사 및 가족 접견을 허용했다. 수티아긴을 만난 러시아 변호사는 미·러의 스파이 맞교환 가능성을 언론에 흘렸고 러시아 당국은 이를 묵인했다. 그를 포함한 10명의 서방 스파이 혐의자도 금명간 석방돼 제3국으로 추방될 전망이다.



미·러의 이번 스파이 맞교환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 계획돼 온 것으로 보인다. 미 정보 당국은 안나 채프먼을 포함한 러시아 스파이 일당을 10년 가까이 추적해 왔다. 최근 이를 눈치챈 스파이 일당이 미국을 탈출하려 해 급하게 체포했다는 게 미 당국의 설명이다. 그러나 러시아가 곧바로 수티아긴 박사를 모스크바로 이감하며 맞교환 준비에 나서 사전에 미·러 당국의 물밑 접촉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미·러 당국자도 맞교환설에 대해선 함구하면서도 “최근 불거진 스파이 사건으로 양국 관계가 소원해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가 스파이를 처음 맞교환한 것은 1962년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U-2 고공정찰기가 소련 영공에서 추락해 조종사 프랜시스 게리 파워스가 간첩 혐의로 체포되자 미국 측은 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인 루돌프 아벨 대령과 맞교환을 제의해 성사됐다. 85년에도 폴란드와 동독에 수용돼 있던 서방 측 스파이 25명이 미국에서 체포된 소련 간첩 4명과 맞교환으로 풀려난 바 있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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