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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한·일의 월드컵 심리전

중앙일보 2010.07.09 00:27 종합 33면 지면보기
남아공 월드컵이 4강전까지 끝나 이제 3위 결정전과 결승전만 남았다. 이번 대회는 유난히 이변이 많은 대회였다.



가장 먼저 놀란 것은 평가전에서 힘없이 연패를 당한 일본팀이 조별 리그가 시작되자 그때까지의 부진을 씻어내고 잘 싸웠다는 점이다. 평가전 때까지 일본팀은 공격과 수비의 밸런스가 맞지 않았고 오카다 감독의 무책임한 사임 발언 등으로 최악의 상태였다. 그래서 세계는 일본이 일찌감치 탈락하리라고 짐작했다. 일본 국민도 일본팀에 별반 기대를 걸지 않았다. 참패하고 돌아올 것이라고 대부분 마음을 비우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일본팀은 이겨야 한다는 부담을 털어내고 마음껏 축구장을 누비며 개개인의 기량을 충분히 발휘했다. 그들은 긴장을 벗어난 모습이었다. 결과적으로 일본팀의 조별 리그 성적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2승1패에 승점 6으로 내용 면에서도 훌륭했다. 평가전 때와 달리 수비력이 견실해졌고 공격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한국은 일본의 호조세에 처음에는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일본이 좋은 성적으로 16강에 오르자 한국 내에서는 아시아의 힘을 보여준 위업을 칭찬하는 의견과 함께 더 이상 일본의 선전을 원치 않는 의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공격력은 있어도 수비에 취약한 한국팀에 대한 불안감이 그런 분위기를 고조시켰고 한국팀이 16강전에서 탈락한 후에는 더욱 커졌다. 아시아의 상승세를 세계에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일본팀이 8강에 오르는 것이 이성적으로는 바람직하지만 그것을 원치 않는 감정이 감춰져 있음을 한국인들 스스로도 느꼈을 것이다. 나 또한 일본이 혹시 8강에 오르면 원정 월드컵에서 아시아 최초로 8강 진출이라고 외치면서 일본은 한국을 추월했다고 주장할까 봐 내심 걱정이 되었다.



일본의 오카다 감독은 평가전의 참패에도 불구하고 “목표는 4강”이라고 우겨댔다. 그것은 ‘한국도 4강까지 갔으니 일본도 못할 게 없다’는 생각에서 나온 발언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이런 일본 측 발언을 박지성 선수가 비웃은 사실이 일본에서도 보도되었다.



그런데 16강에 오른 후 일본에서는 한국보다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니 한국에 한마디 하자는 분위기가 생겼다. 일본의 어느 유명 스포츠지에서는 ‘2002년 한국의 4강 진출은 오심 문제도 있는 등 운이 좋았던 결과지만 일본이 원정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그것을 운이라고 하지 못할 것’이라면서 한국의 4강을 평가절하하고 일본이 사실상 아시아 정상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일본이 8강전에서 패한 후 같은 스포츠지는 ‘한국인들이 대부분 파라과이를 응원했다’ ‘독도 문제 등을 이유로 일본을 응원할 이유가 없다고 그들은 입을 모았다’는 식으로 한국이 일본에 우호적이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만약 일본이 8강에 올랐다면 정말로 한국을 추월했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기사를 썼을 것이라는 내 판단은 옳았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상대의 약진을 서로 원치 않는 한·일 간의 심리적 문제는 밴쿠버 때도 그랬다. 반드시 극복되어야 하지만 어쩌면 마지막까지 풀지 못할 난제일지도 모른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일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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