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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눈속임 마케팅’ 몰아낼 오픈 프라이스

중앙일보 2010.07.09 00:24 경제 4면 지면보기
지난 5월 미국 최대 할인점 월마트가 대대적으로 식료품 가격을 내리자 ‘푸드라이언’ 같은 식료품 전문점은 물론 ‘타깃’ 같은 패션·의류 중심의 할인점까지 가격 인하에 동참했다. 이런 가격 경쟁은 어려운 미국 소비자들의 주머니 사정에 큰 도움이 됐다. 미국 소매업체들의 가격 인하는 ‘오픈프라이스’ 제도 덕분에 가능했다. 오픈프라이스란 제품에 제조업체가 ‘권장 소비자가격’ 같은 기준 가격을 표시하지 않고, 대신 최종 판매업자가 가격을 결정하는 방식을 말한다.



국내에서도 7월 1일부터 아이스크림·라면·빙과·의류에 오픈프라이스 제도가 확대됐다. 이 제도가 도입되기 전에는 소비자들에게 합리적인 상품 가치 판단 근거를 제시한다는 명분으로 제조업체가 가격을 표시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이는 애초 취지와는 다른 부작용을 낳았다. 가격을 터무니없이 높게 표시한 뒤 소비자에게는 선심 쓰듯 할인해 주는 ‘눈속임 마케팅’이 횡행한 것이다.



오픈프라이스는 이런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화장품과 일부 가전제품 등을 대상으로 1999년 도입됐다. 제도 도입 후 대체로 부작용보다는 효과가 큰 것으로 판명됐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소매업체 간의 가격 경쟁으로 가격이 싸진다. 가격에 초점을 두는 업체와 가격 외 서비스에 집중하는 업체 간의 차별화도 분명해져 소비자에게 다양한 선택의 기회가 제공되는 것이다. 실제 화장품에 이 제도가 도입된 뒤 가격 경쟁으로 몇몇 업체가 정리되면서 ‘중저가 브랜드’가 급성장했다.



소비자뿐 아니라 제조업체에도 긍정적 효과가 있다. 제조업체는 가격을 편법으로 인상한 뒤 ‘상시 할인판매’를 하는 비정상적 가격 정책에 매달리지 않아도 된다. 또 제품 가격이 바뀔 때마나 포장을 새로 하거나 포장 단위를 바꿀 필요가 없어져 상품 및 브랜드의 라이프사이클이 길어지는 효과를 얻는다.



오픈프라이스 시행 직전에 몇몇 아이스크림 업체가 제품 가격을 올려 버려 소비자들의 불만을 사는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권장 소비자가격 제도에서 나온 문제이지 오픈프라이스 제도의 문제는 아니다. 오픈프라이스 제도를 빨리 도입했다면 이런 문제는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가격 결정권을 쥐게 된 유통업체가 담합할 경우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현재 유통업 환경상 소비자의 점포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런 우려는 기우에 가깝다. 소비자들은 특정 대형 마트나 수퍼마켓에서 사지 못하면 주변의 다른 마트나 가게에서 얼마든지 같은 제품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내 온라인 거래가 늘면서 상품 가격의 투명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만약 오프라인 업체가 담합을 한다면 소비자들이 온라인에서 구매하는 비중이 늘어나는 등 시장에서 견제 기능이 발휘될 것이다.



물론 소비자 입장에선 제품의 ‘가격 가이드라인’이 없어져 시행 초기엔 어느 정도의 불편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통 선진국의 예에서 보듯 오픈프라이스 제도가 소비자에게는 현명한 소비를 위한 계기가, 제조업체에는 더욱 경쟁력을 강화하는 자극제가, 유통업체들에는 저렴한 상품과 새로운 서비스로 소비자에게 다가가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믿는다.



한정일 신세계 유통산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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