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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issue &] 40만원이면 빚 독촉을 해결해 준다고?

중앙일보 2010.07.09 00:24 경제 4면 지면보기
요즘 법무부에서는 도산법제 선진화를 위한 통합도산법(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개정 논의가 한창이다. 통합도산법은 2005년 제정돼 이듬해 4월 시행됐다. 이 법의 취지는 빚을 갚는 데 실패한 사람들에게 ‘패자 부활’의 기회를 제공하고, 인적 자본이 사장되는 것을 방지하는 데 있다. 많은 사람이 채권추심의 고통에서 벗어나 경제적으로 다시 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된 점은 이 법의 시행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막상 시행 후 이 법의 운용 과정에서 제정 취지와는 달리 심각한 문제점도 대두됐다. 개인파산과 개인회생 신청자가 급격히 늘었다는 게 대표적이다. 이 법의 시행 후 스스로 빚을 갚으려는 개인 워크아웃 이용자는 2005년 19만 명에서 2007년 6만 명으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반면 손쉬운 채무감면을 목적으로 개인파산-개인회생을 신청한 사람은 같은 기간 9만 명에서 21만 명으로 현저히 증가했다.



개인파산-개인회생의 급증을 초래한 주된 원인으로는 우선 이 제도를 돈벌이에 이용하려는 일부 관련 산업 종사자의 부추김과 무리한 권유를 들 수 있다. 전문 브로커까지 가세한 결과 요즘은 버스·지하철·생활정보지 등 생활 주변 곳곳에서 개인회생-파산 권유 광고가 범람하고 있다. 신용회복위원회 자체 조사로는 서울시 주요 150개 버스 노선의 77.3%인 116개 노선에서 개인회생-파산 관련 홍보물이 설치된 것으로 나타났다. 수수료 또한 4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부담스러운 수준인데도 채무면책을 앞세워 무분별한 신청을 유도하고 있다.



다음으로 사실관계 확인과 관련한 시스템 미비를 들 수 있다. 채무자가 기재한 소득·재산 등에 대해 충분한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면책이 허가(평균 면책율 95% 이상)되다 보니 빚을 갚을 수 있는 사람조차 너도나도 개인파산-개인회생을 신청하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결국 일부의 무분별한 영업 행위와 관련 시스템 미비가 채무상환 포기, 계획적인 개인파산-개인회생 등을 부추겨 현재의 쏠림현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우리나라는 개인도산법제도의 도입이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인구 1000명당 연간 개인파산-개인회생 비율은 3.3명으로, 채무자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5.0명) 다음으로 높다. 독일·네덜란드·스웨덴·스위스·프랑스 등 자기 책임이 강조되는 유럽 수준(0.8~2.1명)을 크게 웃돈다는 점에서 심히 우려되는 부분이다.



이처럼 빚 안 갚는 분위기가 만연하면 사회적으로 신용의식이 저해되고 결국 국가 경쟁력이 약화된다. 그런 점에서 신용질서와 조화될 수 있는 균형 있는 제도 확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향후 다음과 같은 부분을 중점 보완해야 한다.



우선 당면한 도덕적 해이에 따른 쏠림현상을 방지할 수 있는 장치로 신청자의 소득·재산을 세밀히 조사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 개인회생 시 채권자 의결 절차, 최저변제액 상향 조정 등을 시급히 도입해야 한다.



다음으로 단순히 채무면책에 그치는 제도 운용보다는 경제적으로 재활할 수 있도록 파산 이후의 취업 지원, 재발 방지를 위한 신용교육 등 실질적인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



또 맞춤형 구제제도 확립과 채무자·채권자의 균형 보호를 위해 구미 선진국에서 시행 중인 사전상담제도, 성실상환노력 확인 절차 등의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도산법은 경제적 파급효과가 막대하므로 국가의 미래를 위해 정책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개정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여기에는 지난 4년간의 시행 경과에 대한 실증 분석과 반성이 선행돼야 함은 물론이다. 모쪼록 이번 개정작업을 통해 균형 있고 선진적인 도산법 탄생을 기대해 본다.



홍성표 신용회복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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