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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봉 기자의 도심 트레킹 ⑦ 반포 밤길

중앙일보 2010.07.09 00:07 Week& 7면 지면보기
일본·유럽의 대도시에 가 보면 놀라게 되는 점 중 하나가 그들의 밤거리는 굉장히 조용하고 어둡다는 것이다. 조명도 은은하고 잔잔한 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통행도 많지 않다. 반면 서울의 밤은 시끌벅적하다. 조명이 휘황하고 밤거리가 찬란하다. 지난해 12월 연세대 천문대의 조사에 따르면 서울 도심의 조도는 파주 등 경기북부 지방보다 20배가량 밝다고 한다. 그래서 ‘빛 공해’라는 얘기도 나온다.


누에다리에 올라 내려다 보다, 알록달록한 서울의 밤

그렇다고 밤답지 못한 밤거리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밝은 만큼 맘놓고 걸을 수 있는 밤길도 많다. 특히 열대야가 찾아오는 여름밤에는 눅눅한 기운에 휩싸이는 집 안보다 밤바람이 스치는 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땀이 조금 흐르더라도 안전한 길을 따라, 아름다운 야경을 찾아 여름밤 산책을 떠나보자.



신반포역서 출발, 은은한 아파트 가로등 지나



이번에 걸을 길은 지하철 9호선 신반포역에서 시작한다. 3번 출구에서 150m쯤 걸으면 래미안 퍼스티지 아파트 정문이 나온다. 이곳으로 들어간다. 이 아파트 단지는 올해 세계조경가대회의 조경계획 부문에서 메리트 어워드를 수상할 정도로 경관이 뛰어나다.



이곳은 밤에 걸어도 아름답다. 가로등 불빛이 강하지 않고 은은한 데다 뒤틀린 모양으로 높이 솟은 소나무들이 불빛에 비춰 기이한 자태를 드러낸다. 구름다리를 건너는 길 양 옆으로는 분수 줄기에 색색의 빛이 부딪혀 부서진다. 여름밤이라 분수를 구경하기도 하고 벤치에 앉아 쉬기도 하는 가족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연못 바위 위에 쉬고 있는 오리떼와 삼삼오오 모여 있는 가족들의 여유로운 풍경이 밤길을 편안하게 했다.



정문에서 300m쯤 직진으로 걷다 보면 그 끄트머리에 작은 쪽문이 나온다. 반포천 옆 산책로로 통하는 길이다. 왼쪽으로 나선다. 나무들이 빽빽해 조금 어둡기는 하지만 사람의 통행이 잦은 곳이라 으슥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특히 아저씨·아주머니들이 여름밤인데도 운동에 열심이시다. 길 폭도 4m 정도이고 보도 정비도 잘 돼 있어 어둡다고 발 헛디딜 일 없다. 이 길을 따라 300m쯤 걷는다.



숲길이 끝나고 서울성모병원 사거리가 나온다. 거기에 2단 케이크 모양의 분수대가 있다. 2단에서 분수가 올라오고 찰랑찰랑 넘치는 물이 1단으로 내려오는 구조다. 조명을 비춰 분수대가 쏘아 올리는 물줄기와 일렁이는 물결이 독특하게 반사된다. 몇몇 사람들이 분수 주변 벤치에 앉아 여름밤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이제 사거리를 건너자. 고속터미널 쪽 말고 조달청·국립중앙도서관 쪽으로 건넌다. 길을 건너자마자 ‘서래공원’이 보인다. 울타리 없이 길섶에 있는 개방형 공원이다. 아주 작다. 공원에는 뛰노는 말을 형상화한 동상이 있는데 힘찬 근육이 생생하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장미 덩굴이 퍼걸러(pergola)를 덮고 있어 프랑스의 정원을 연상케 한다.



서래공원을 나와 서초경찰서 쪽으로 오르막길을 걷는다. 몸에 열이 많다면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를 만하지만 그리 가파르지는 않다. 길에 나서자 2300여 개의 전구로 몸을 감싼 누에다리가 눈에 비쳤다. 누에다리는 이 오르막길의 끄트머리에 있다. 500m쯤 되는 거리다. 누에가 기어가듯 리듬감 있는 형태에 반짝이는 전구가 아름다웠다. ‘저기에 올라가 보자’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조달청과 국립중앙도서관을 지나 후다닥 누에다리 앞에 다다랐다. 누에다리는 동쪽으로는 서리골공원, 서쪽으로는 몽마르뜨공원을 잇는다. 육교가 아닌 다리이기 때문에 아래에서 오르는 계단은 다리와 바로 만나지 않고 공원 쪽을 향한다. 처음에는 돌계단, 나무계단을 지나 흙길을 밟아 구불구불 올라가면 된다.







언덕 위 몽마르뜨공원서 보는 시원한 야경



막상 오른 누에다리는 생각보다 꽤 높았다. 24m 정도 되는 높이라고 하니 아파트 8~9층쯤 된다. 10차선도로 위 허공에 떠 있다고 생각하니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다리 중간중간 지름 40㎝쯤의 통유리로 아래를 보이게 해 놓았는데, 오래돼서인지 유리가 뿌옇게 돼서 잘 보이지 않았다. 누에다리에서 보이는 서울의 야경이 꽤 멋지다. 특히 요즘 새로 지은 아파트들이 옥상을 조명으로 꾸며놓은 경우가 많아 알록달록한 빛깔이 예뻤다.



누에다리에 오른 뒤에는 둘 중 하나 선택을 해야 한다. 다시 내려와서 서초경찰서 앞 대로변을 걸어 지하철 2호선 서초역까지 가거나, 누에다리에서 몽마르뜨공원을 들렀다 오거나 하는 것. 만약 혼자 이 길을 걷는다면 대로를 걷는 게 좋다. 공원은 사실 밤에는 으슥하고 어두침침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둘이서 혹은 가족끼리 간다면 밤 공원도 나쁠 게 없다. 서리골공원보다는 몽마르뜨공원이 볼거리도 있고, 걷기도 좋다.



공원은 평지에 있는 게 아니라 언덕 위에 있어 내려다보이는 야경에 속이 시원해진다. 몽마르뜨공원 가운데에는 잔디가 넓게 펼쳐져 있고 주변에 분홍색 솜뭉치 모양의 꽃이 핀 나무가 한 그루 있다. 자귀나무라고 하는데 그 꽃에서 기막히게 달콤한 향이 은은하게 번진다. 너무나 매혹적이니 꼭 한번 맡아보기를 권한다. 몽마르뜨공원에서 서래마을 뒤편 서리풀공원으로 가는 다리도 있지만, 밤길로 추천하기는 적절치 않다. 서리풀공원길은 거의 등산로에 가깝고 가로등도 없는 곳이 많아서다. 몽마르뜨공원을 한 바퀴 돈 뒤 서초역까지 내려오면 된다.



글=이정봉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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