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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 기자의 레저 터치] 알래스카에 에스키모가 없더라

중앙일보 2010.07.09 00:05 Week& 4면 지면보기
지난달 알래스카를 갔다 왔다. week& 팀장은 알래스카에 가면 김상덕씨를 만나고 오라고 했지만, 솔직히 내 속내는 달랐다. 알래스카에 가면 보고 싶은 게 따로 있었다. 서너 해 전 어느 소설에서 읽은, 눈을 감고 읽는 지도다.



‘에스키모들은 해변의 지도를 그리기 위해 눈을 감습니다. 그리고 해변에 부딪치는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지도를 그리기 위해 자신의 기억을 모두 동원합니다. … 이것은 눈으로 보는 지도가 아닙니다. 이것은 상상하는 지도입니다. 손가락을 나무 지도의 틈새에 넣은 다음 그 굴곡을 느껴야 합니다.’(김중혁, ‘에스키모, 여기가 끝이야’에서)



여태 눈앞에 놓인 길만 따라서 걸은 나에게, 눈을 감아야 만들 수 있고 눈을 감아야 읽을 수 있다는 에스키모 지도는 선승의 일갈마냥 울림이 컸다. 하여 에스키모를 만나면 꼭 지도를 보고 싶었다. 아니, 만지고 싶었다. 먼 옛날 에스키모 용사는 그 지도를 들고 혼자서 카누를 타고 고래를 잡으러 베링해로 나갔다.



하나 지도는 찾을 수 없었다. 아니 에스키모도 만나지 못했다. 사실대로 말하면 알래스카에는 에스키모가 없었다. 앵커리지에 있는 알래스카 원주민 센터를 가서야 무엇이 어떻게 잘못됐는지 알 수 있었다.



알래스카엔 약 3000년 전부터 알룻(Allute)이라는 종족이 살았다. 그들은 자신의 영토를 본토(mainland)라는 의미로 알레이스카(Alyeska)라 부르고 있었다. 백인이 이 땅에 들어선 건 18세기 일이다. 그 백인들 중에 프랑스인이 날고기 먹는 원주민을 보고 ‘에스키모(eskimo)’라 불렀고, 그게 그들의 이름이 되었다. 최근에 들어서야 미국 정부는 ‘에스키모’를 인종차별적인 호칭으로 인정하고 ‘알래스카 원주민(Alaska Natives)’이라 부르고 있다.



현재 알래스카 인구는 약 60만 명이다. 그중에서 알래스카 원주민은 약 10만 명으로 추정된다. 베링해 연안의 알룻과 유픽(Yupik)을 비롯해 북극권에 사는 이누피앗(Inupiat), 가장 큰 영토를 거느렸던 애터바스칸(Athabascan) 등 예닐곱 종족으로 나뉜다. 이글루(Igloo) 짓고 살았던 종족은 캐나다 북극해 연안의 이누잇(Inuit)이다.



이들 중에서 고래사냥을 나섰던 종족은 알룻과 유픽 정도다. 하나 그 후손도 지도는 알지 못했다. 고래를 잡을 때 썼다는 나무 낚시바늘만 볼 수 있었다. 미국은 지금 알래스카를 최후의 개척지(Last Frontier)라 부른다. 알래스카가 더 이상 본토가 아닌 이상, 상상하는 지도는 이제 상상 속에서만 겨우 남아있나 보다.



알래스카에서 만난 원주민 소녀가 자꾸 어른거린다. 서울 한복판에서 마주쳤어도 전혀 낯설지 않을 얼굴이었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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