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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 속 그 이야기 <4> 제주 올레 신드롬

중앙일보 2010.07.09 00:00 Week& 4면 지면보기
이번 달은 걷기 열풍의 진원지 제주 올레를 걷는다. 제주 올레는 week&에서 가장 자주 소개했던 여행지(?) 가운데 하나다. 그래도 또 걷는다. 제주 올레를 빼놓고선 전국의 걷기 명소를 연재하는 연중 기획을 완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엔 코스 하나를 집어서 설명하지 않는다. 제주 올레가 너무 길어서다. 지난달 추자도를 한 바퀴 도는 18-1 코스가 개장하면서 제주 올레는 모두 21개 코스(정규 코스 16개와 비정규 코스 5개)가 됐다. 그 길이만 해도 347㎞에 달한다. 대신 제주 올레에 관한 최신 정보를 설명한다. 서명숙 제주 올레 이사장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만큼 제주 올레가 바람을 일으키다 보니 오해마저 빚어지는 상황이어서다. 이쯤에서 제주 올레 현상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구멍가게, 길가 작은 식당, 민박, 마사지 업소 … 올레 뜨며 같이 뜬 집들

글·사진=손민호 기자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현상



굳이 제주 올레라고 적는 까닭이 있다. 전국에 올레가 넘쳐나서다. 제주 올레를 본 딴 도보 여행지가 곳곳에 생겨나면서 제주 올레 측도 제주 올레라 불리길 바라는 형편이다. 올레는 본래 골목길을 뜻하는 제주 방언이다. 정확히 표현하면, 집 마당에서 마을의 큰 길까지 이어진 작은 골목을 가리킨다. 하나 이제는 더 이상 아니다. 올레는, 자동차로부터 되찾은 사람의 길 모두를 의미한다.



제주 올레에 관한 오해 중 이런 게 있다. 제주 올레 때문에 되레 제주도 경기가 안 좋아졌다는 뜻밖의 주장이다. 제주도에 사람이 많이 내려와도 돈을 안 쓰고 간다는 게 그들의 논리다. 제주 올레가 제주도의 관광 판도를 바꾼 건 맞다. 제주 올레에 사람이 몰리면서 기존의 관광지가 상대적으로 타격을 입은 것도 맞다. 하나 대신 돈을 버는 사람도 많다. 제주 올레가 지나가는 길목에 들어서 있는 조그만 구멍가게와 동네 식당들이다. 제주 올레 때문에 손해를 보는 건,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는 제주도의 관광업자다.



제주도에선 요즘 대형 펜션이나 모텔 대신 게스트하우스 건설이 유행이다. 이 또한 제주 올레의 영향이다. 한 방을 서너 명씩 나눠 쓰는 게스트하우스는 제주 올레가 생산한 새로운 양식의 숙박 형태다. 온종일 제주 올레를 걸은 생면부지의 올레꾼들이 밤마다 숙소에 모여 정보도 공유하고 조촐한 파티도 연다. 서귀포 시내만 해도 기존의 모텔을 게스트하우스로 개조한 곳이 수두룩하다. 최근엔 마사지 업소 간판이 자주 눈에 띈다. 마사지 업소가 들어선 마을은 영락없이 제주 올레 코스가 끝나는 지점이다. 하루에 20㎞ 가까이 걸은 올레꾼들이 마사지 업소에서 발 마사지를 받으며 피로를 푼다. 제주 올레가 낳은 신종 업소인 셈이다.



렌터카 관광 이후 크게 줄었던 제주 택시도 요즘 때 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깊은 중산간 지역이나 해안 마을에서 연락이 오면 십중팔구 올레꾼이란다. 코스 중간에서 지쳤거나 길을 잃었을 때 많은 올레꾼이 택시를 부른다. 숙소를 한 곳에 정한 올레꾼도 택시를 자주 이용한다. 길은 한 번 떠나면 되돌아오기 힘들기 때문이다.



제주 올레가 인기를 끌면서 명소로 확 뜬 곳이 있다. 2500원짜리 냄비국수만 파는 표선의 춘자국수집, 이젠 지점을 거느리게 된 서귀포의 할망민박, 차라리 줄을 서서 들어가는 6코스 출발점 외돌개, 1평 남짓한 문칸방이 눈에 밟히는 이중섭 거주지, 의자 마을로 유명한 낙천리 아홉굿마을, 큰 비가 내려야 폭포수가 떨어지는 엉또폭포, 그리고 한적한 항구였다가 지금은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대평포구 등등 제주 올레가 낳은 올레 명소는 날마다 늘고 있다. 제주 올레의 가장 큰 매력이 예 있다. 제주의 속 모습을 경험하는 일 말이다.



# 관광



맨 앞에서 올레를 여행지라고 적으면서 괄호 안에 물음표를 넣었다. 올레가 워낙 유명해지다 보니 여러 정의가 난무하고 있어서다. 올레는 여행지일 수 있지만, 여행 코스일 수도 있다.



올레를 걷는 행위만이 목표라면 올레는 여행지다. 하나 제주도 여행 중 하나의 코스로 올레 체험을 생각하고 있다면 여행 코스라 불러도 무방하다. 올레 체험은 한 곳을 방문하는 차원의 여행이 아니어서다. 요즘엔 관광 차원으로 변색되고 있는 참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올레 타령이다 보니, 올레 코스를 잠깐 구경하고 나오는 관광 상품이 잘 팔리고 있다.



제주 올레 상품을 판매하는 여행사에도 종류가 있다. 걷기 전문 여행사는 오로지 걷기 위해 제주까지 날아가 올레를 걷는다. 믿을 만하지만 다른 여행사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 반면 일반 패키지 상품에 올레 체험이 끼어 있는 경우가 있다. 이건, 제주 올레를 두어 시간짜리 관광지 방문 차원으로 집어넣은 것이다. 이런 상품은 권하고 싶지 않다. 제주 올레 정신에도 맞지 않는다.



중문의 신라호텔과 롯데호텔이 투숙객에게 올레 체험을 안내하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물론 제주 올레 사무국의 허락을 받아 진행하는 것이다.



# 정신



제주 올레 코스를 알리는 화살표
제주 올레 정신에 가장 부합하는 건, 지도 한 장 달랑 들고 길에 그려진 화살표 표시 따라 혼자 걷는 것이다. 하나 이때도 명심할 게 있다. 서명숙 이사장이 길을 내면서 맨 처음 한 얘기 ‘놀멍 쉬멍 걸으멍’(놀며 쉬며 걸으며)이다. 절대로 극기훈련 모양 코스 완주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제주 올레 사무국에서 올레 여권을 만들어 코스 시작점과 종점에서 완주 올레꾼에게 확인 도장을 찍어주고 있지만, 이건 일종의 기념품이지 자격증이 아니다. 아니 자격증이 되어선 안 된다. 요즘 올레 곳곳에서 무리해서 걷는 올레꾼을 너무 자주 만나서 하는 얘기다. 요즘엔 특히 가족 올레꾼이 흔히 보이는데, 초등학생이 완주하기에 올레는 아무래도 버거워 보인다.



제주 올레는 전국의 어느 걷기 명소보다도 이정표가 잘 돼 있다. 그래도 철저한 예습이 필요하다. 우선 제주 올레 홈페이지(www.jejuolle.org)에서 충분한 정보를 얻자. 제주 올레를 소재로 삼은 여행 서적도 여러 권 나와 있다. 대부분 시시콜콜한 감상을 나열한 올레 종주기 정도이지만, 생생한 시행착오가 담겨 있어 되레 유용할 수 있다. 지난 5월 제주공항에 올레 안내소가 설치됐다. 제주도민이 자원봉사로 나서 올레 안내를 한다. 코스 선정부터 숙소·식당·배편 정보, 마을 이장님 휴대전화 번호까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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