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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분단 현장을 가다] 155마일 신비의 생태 기행 ① 야생동물의 보고 동부전선

중앙일보 2010.07.06 01:47 종합 4면 지면보기
“이쪽입니다. 수달 발자국을 찾았습니다.” 지난달 9일 오전 11시 강원도 화천군의 ‘평화의 댐’. 한국수달연구센터 남택우(34) 연구원이 소리쳤다. 고무보트에서 내려 물가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동물 발자국을 살펴보던 수달연구센터 한성용(45·동물생태학 박사) 소장과 취재팀은 고무보트 근처에 있던 남 연구원 쪽으로 다가갔다. 남 연구원이 가리키는 물가 진흙밭에는 고라니·너구리와는 다른 모양의 발자국이 있었다.


산양은 철책에 가로막혀 ‘이산 60년’
그러나 수달은 오늘도 남북을 오간다

동부전선 DMZ 철책선에 가로막힌 채 서로를 쳐다보고만 있는 산양(원 안). DMZ와 민통선의 산양은 60년 가까이 교류가 끊겼다. 한 민간 DMZ 생태연구팀으로부터 입수한 사진.
한 소장은 “수달 발자국은 개나 고양이 등과 달리 뾰족한 발톱을 가진 다섯 개의 발가락이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그는 “강원도 철원·화천의 북한강 상류에 서식하는 수달은 오늘도 남북을 오가는 ‘평화의 대사’ 역할을 한다”고 덧붙였다. 수달은 생긴 것도 귀엽고 앙증스러워 ‘평화의 대사’ 상징으로 불리기에 충분했다. 다른 동물은 철책을 지날 수 없지만 물속을 헤엄치는 수달은 북한강을 통해 DMZ 내로 충분히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흐르는 강물 위의 철책은 육상의 철책보다는 덜 촘촘하기 때문이다.



평화의 댐 위쪽 DMZ에 인접한 북한강 상류에서 한국수달연구센터 한성용 소장과 남택우 연구원, 본지 강찬수 기자(왼쪽부터)가 고무보트로 이동하면서 호수 주변에 남아 있는 수달 흔적을 찾고 있다.
실제로 한 소장은 2007년 여름 북한강 남방한계선 철책 바로 앞 바위 위에서 수달 배설물을 찾아냈다. 지난해 12월 환경부 DMZ 생태계조사단도 철책 너머 DMZ 내 북한강 상류에서 수달 흔적을 발견했다.



이보다 한 시간 전 취재팀과 수달연구센터 연구팀은 평화의 댐 아래 군 초소를 지나 모터가 달린 고무보트를 내렸다. 평화의 댐 위쪽 북한강 상류는 민간인 출입이 제한된 민통선 지역이다. 군 경계가 엄중한 이곳에는 함부로 배를 띄우거나 낚시를 할 수가 없는 것은 물론이다. 연구팀과 취재팀이 탄 모터보트 소리 외에는 아무런 인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사방은 새 소리만 간간이 들릴 뿐이었다.



취재팀이 발견한 수달 발자국
저수 기능이 없는 평화의 댐은 하류 쪽 화천댐(파로호)에서 취수탑 수리를 위해 물을 뺀 탓에 수위가 크게 낮아져 있었다. 초여름 햇볕 아래 드러난 호숫가 땅은 분홍색 메꽃과 갈대가 덮고 있었다. 군데군데 멧돼지가 땅을 파헤친 흔적이 있었다. 물가에는 물을 마시러 내려온 고라니·너구리·삵 같은 야생동물의 발자국이 가득했다.



연구진과 취재팀은 호수 양쪽에 드러난 바위와 땅을 살피느라 보트를 지그재그 모양으로 몰았다. 취재팀이 수달 발자국을 찾은 것은 한 시간가량 호수 양쪽을 살핀 다음이었다.



취재팀이 발견한 수달의 배설물.
발자국을 찾은 뒤 보트는 다시 상류로 이동했다. 잠시 후 보트의 맨 앞에 앉아 있던 한 소장이 갑자기 “후진~”이라고 외쳤다. 보트를 되돌리라고 손짓을 했다. 보트에 타고 있는 취재팀의 눈은 한 소장이 가리키는 곳으로 몰렸다. 바로 검은색 수달 배설물이었다. 한 소장은 귀한 보물을 본 것처럼 조심스럽게 배설물을 집어들어 코에 댔다. 그는 “아직 냄새가 남아 있는 것으로 봐서 어젯밤이나 오늘 아침에 배설한 것 같다”며 “양이 많지 않은 것으로 봐서 영역 표시를 하려 한 것”이라고 말했다. 수달 배설물에는 물고기 비늘과 곤충 사체 조각이 남아 있었다. 한 소장은 수달 배설물을 채집 봉투에 담았다.



보트는 계속해서 북한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하지만 어느 순간 보트 뒤편에서 흙탕물이 심하게 일었다. 모터보트의 스크루가 호수 바닥에 닿은 것이다. 낮아져 더 이상 상류로 올라가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보트에서 내려 물가를 걸으며 조사를 하는 것도 위험했다. 과거 폭우에 떠내려 온 지뢰가 어디에 숨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쉽지만 배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한 소장은 “야간 취재가 제한되는 DMZ와 민통선 지역에서 야행성인 수달을 촬영하기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수달의 흔적을 발견한 것도 나름대로는 큰 수확이라는 것이었다.



취재팀은 전날 밤 화천읍 화천교 다리 아래의 북한강에서 쉼터를 찾는 수달의 모습을 촬영하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국립생물자원관 한상훈 척추동물연구과장은 “수달연구센터에서 몇 해 전 수달에 전파발신기를 달아 평화의 댐에서 방사를 했는데, DMZ 내부에서 보내오는 신호가 잡힌 만큼 수달이 남북을 오고 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 과장은 “동해안 바닷가를 통해 수달이 남북으로 오고 갈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북한에서는 병사나 주민들이 북한강에 통발·그물을 치고 고기를 잡는다는 게 최전방을 지키는 우리 병사들의 말이다. 북으로 간 수달이 통발에 잘못 들어가 희생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한 소장은 “남북한이 북한강 상류 수달 서식지를 공동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관리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취재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사진 조용철 기자, 동영상 이병구 기자

취재 협조 국방부·육군본부·육군 제21사단







◆수달=천연기념물 330호이자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 1급으로 지정된 족제빗과 야생동물. 다섯 개 발가락 사이에 물갈퀴가 있어 헤엄을 잘 친다. 꼬리를 포함해 전체 몸길이는 100~130㎝다. 물고기를 주로 먹으며 호수나 강 생태계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어 생태계의 건강성을 나타내는 지표종이기도 하다. 한국에는 800~1000마리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 다.



◆산양=솟과에 속하는 야생동물로 천연기념물 제217호,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 1급으로 지정돼 있다. 국내에서는 설악산·월악산과 삼척·울진 등지에 서식한다. 몸길이 115~130㎝에 꼬리 길이 11~15㎝. 뿔 길이는 약 13㎝에 목은 짧은 편이다. 다리는 굵고 발은 작고 끝이 뾰족하다. 한반도 산양은 얼굴에 선이 없는 게 특징이다. 가파른 바위 등 다른 동물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서 2~5마리가 떼를 지어 생활한다.



◆사향노루=사슴과에 속하는 천연기념물 제216호이자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 1급 동물. 한국·중국·시베리아·몽골 등지에 분포한다. 암수 모두 뿔은 없고, 위턱의 송곳니가 자라 입 밖으로 나와 있다. 꼬리를 제외한 몸길이는 65~85㎝이고 , 몸무게는 7∼17㎏이다. 임신 기간은 160일 정도, 1~2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생후 3년이 넘어 성적으로 성숙한 수컷의 경우 배쪽에 짙은 향을 내는 사향샘이 있다. 향료나 약재로 사용되는 사향은 수컷 한 마리에서 28∼30g을 채취할 수 있다.






멸종 위기 사향노루도 뛰놀아



국내 700마리뿐인 산양은 DMZ에 300마리 서식 추정




취재팀이 강원도 화천읍에서 평화의 댐을 향해 가던 지난달 9일, 460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해발 1190m의 ‘해산’은 터널 양쪽으로 꼬불꼬불한 길이 끝없이 이어졌다. 취재팀을 안내하던 한국수달연구센터 한성용 소장은 “2007년 여름 이곳 해산 정상 부근에서 사향노루가 무인카메라에 찍혔다”며 그때 촬영된 사진을 처음 공개했다(사진). 그는 “앞모습이 아닌 뒷모습이어서 아쉽지만 사향노루 특유의 검은색 엉덩이가 뚜렷하다”고 강조했다.



이곳에서 사향노루가 발견된 것은 의미가 크다. 평화의 댐 바로 옆에는 한국전쟁 때 희생된 병사의 넋을 기리는 ‘비목(碑木)공원’이 있고, 가곡 ‘비목’에 나오는 궁노루가 바로 사향노루이기 때문이다. 육군 21사단 공보장교인 위진 중위도 “DMZ 남방한계선을 지키는 부대 중대장에게서 올 1월 사향노루를 직접 봤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국립환경과학원이 2008년 실시한 제3차 전국자연환경조사에서도 이곳 평화의 댐 부근에서 사향노루가 서식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몇 해 전 양구지역에서는 사향노루를 증식 복원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무산됐다. 한국 산양·사향노루종보존회 정창수 대표가 2005년 9월 수컷 한 마리를 포획했으나, 증식에 필요한 암컷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화천·양구 지역에는 국내 700여 마리뿐인 산양 중 100여 마리가 서식하고 있다. 춘천에 있는 강원대 야생동물구조센터의 김종택(수의학부대학) 교수는 “매년 겨울철이면 양구 지역에서 죽거나 다친 산양이 평균 다섯 마리 정도 실려온다”며 “그만큼 양구 지역에 산양이 많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양구군 동면 팔랑리에 있는 산양증식복원센터에는 모두 13마리의 산양이 보호를 받고 있다. 산양증식복원센터의 이애순(32)씨는 “산양 숫자가 어느 정도 불어나면 문화재청과 협의해 방사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산림과학부 이우신 교수는 “DMZ 철책선에서 경계를 서는 장병들의 도움을 받아 분석한 결과 강원도 지역 DMZ 내에는 300마리 가까운 산양이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철책선 때문에 DMZ 내 산양과 민통선 지역 두 산양 그룹은 60년 가까이 교류가 단절된 상태다.



양구군 동면 덕곡리 뒷산에서는 2004년 3월 수컷 여우 사체가 발견되기도 했다. DMZ 내부에 반달가슴곰이나 호랑이가 서식한다는 일부 주장도 있으나 구체적인 증거는 나오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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