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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문 여니 조선의 향기

중앙일보 2010.07.06 00:27 종합 29면 지면보기
정갈하다. 딱 떨어진다.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멋스러우나 사치스럽지 않다. 가구를 고른 안목을 보니 이 방 주인 성품이 한 눈에 보인다. 조선시대 선비가 머물던 사랑방을 되살린 전시장은 보는 이의 마음을 시원하게 씻어준다.


충무로 신세계갤러리 25일까지 ‘선비문화와 목가구’전

서울 충무로 신세계갤러리에서 25일까지 열리는 ‘선비문화와 목가구’전에서 만난 방 한 칸이 조선조 500년을 지탱해준 선비정신을 엿보게 한다.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선비의 사랑방 미학을 이렇게 풀었다. “모두가 제자리에 있고 서로가 흔연하게 균형이 잡히고 조화되어 하나가 된다면 그 방 안에 있어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울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 선비의 사랑방을 목가구 몇 점으로 재구성한 전시장 풍경.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사층사 방탁자, 붓걸이, 고비(考備·서찰꽂이), 책궤, 등가, 서안, 연상, 문갑. [신세계갤러리 제공]
주된 재료가 나무이다 보니 눈이 편하다. 느티나무로 제작된 서안(책상)은 무늬가 강하여 정신을 흐리게 하므로 오동나무나 소나무로 만들라 했다. 목공 재료로는 가볍고 부드러우면서도 소박한 멋을 풍기는 오동나무가 주로 쓰였다. 오동나무 표면을 인두로 지진 다음 짚으로 긁어내 나뭇결이 살아나도록 하는 낙동(烙桐)기법이 애용됐다. 추상적인 검은 먹 무늬가 매력적인 먹감나무는 필통·문갑·연초갑·망건통 제작에 주로 활용됐다. 눈매가 고와 정교한 조각이 가능했던 은행나무는 팔걸이·목침·바둑판·함 등에 사용되었다.



사철 기후변화가 뚜렷했던 조선시대는 목재의 수축과 팽창이 심하므로 짜임과 이음에 대한 구조적인 복안이 있어야 했다. 판재를 분할해 좁은 면들로 재구성했고 홈에 끼우는 기법을 썼다. 칠은 나뭇결을 살리면서 중후한 느낌을 주도록 했고, 장석(裝錫)은 검소한 무쇠와 주석 등을 주로 사용했다.



전시품을 둘러보면서 새삼 놀라게 되는 건 빼어난 비례 감각이다. 옆으로 긴 장방향의 붓걸이는 19세기에 제작되었다는데 요즘 만들었다고 해도 믿을 만큼 현대적 비례미를 자랑한다. 역시 19세기 물건인 문갑은 시각적으로 치밀한 분할이 현대 회화작품을 뺨친다. 책을 보관하던 책갑·책궤·책장 또한 기능과 미감이 적절히 만나 한 폭의 그림을 이루고 있다. 이런 좋은 목가구 전통이 왜 오늘날까지 이어져오지 못했을까 새삼 아쉽다.



간결 단순한 선비의 제대로 된 방치레를 보여주기 위해 이 분야에서 질 좋은 소장품을 자랑하는 여러 개인 소장자들과 박물관이 협조했다. 한국화가 서세옥·정민자씨 부부, 서양화가 김종학씨, 호림박물관·쇳대박물관·불박물관 등이 애장품을 선뜻 내놨다. 전시를 기획한 박영규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용인대 교수)은 “사랑방 가구나 생활기물, 서화 등을 고르고 배치하는 방법을 일러주는 글이 많은 걸 보면 당시 선비들이 취해야 했던 일상 규범들이 엄격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갈고 닦은 학문사상은 물론, 덕목과 안목을 집약해 사랑방 가구에 녹여 보여주어야 했으니 선비 노릇 하기도 꽤 힘들었겠구나 싶다. 02-310-1921.



정재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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