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food&] 맛깔나는 가문의 비법 … 흔한 재료, 남다른 정성

중앙일보 2010.07.06 00:27 경제 22면 지면보기
종갓집엔 뭔가 특별한 음식이 있다. 일반 가정집에서 좀체 보기 힘든, 아니 처음 듣는 메뉴가 대부분이었다. 그렇지만 재료가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주위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누구나 먹는 재료들이다. 만드는 방법만 다를 뿐이다. 한 집안의 삶과 문화, 역사가 오롯이 담겨 있는 종갓집들의 숨겨놓은 비밀 레시피를 소개한다.



글=이석희 기자

사진=김상선·권혁재 기자 sskim@joongang.co.kr>



보성 선씨 영흥공파 된장 장아찌

말린 무에 된장 발라 1년 넘게 숙성, 깊은 맛




“시할머니(유평선)께서 서울분이셨어요. 서울과 전라도 음식이 합쳐진 것이 우리 집안 음식의 특색인데 담백한 맛을 자랑하죠.” 영흥공파 21대 종부 김정옥(58)씨의 설명이다. 김씨가 공개한 레시피는 된장 장아찌. “요새 사람들은 장아찌를 만들라고 하면 모두 간장으로 만들어요. 그래서인지 된장으로 만든다고 하면 모두 신기해하죠.” 된장 장아찌의 장점은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장아찌는 담가서 곧장 먹는 음식이 아니다. 시간이 흘러야 제맛이 난다. “한 1년 정도 숙성시키면 적당한데 더 오래도록 놓아두어도 괜찮아요. 숙성시킬 때는 돌로 눌러 주는 것이 중요해요.” 또 김씨는 “장아찌는 원래 좀 짭조름해야 하는데 가끔 소금을 너무 많이 넣어 짠 경우가 있다. 이럴 때 젊은 아줌마들은 그것을 그냥 물로 씻는데 겉의 짠기만 빠질 뿐이다”며 “물과 설탕·식초를 적당히 섞은 물에 담가 놓으면 속에 배어 있는 짠맛이 많이 가신다”고 노하우를 알려줬다.



●재료 무 반쪽 4개, 된장 1㎏, 소금 100g, 고추씨 100g(소금과 고추씨의 양은 된장의 10분의 1).



●만드는 법 1 무는 미리 반으로 잘라서 꾸들꾸들해질 때까지 말려 놓는다. 2 된장과 소금·고추씨 등을 잘 섞는다. 3 무에 ②를 골고루 발라 용기에 넣고 잘 쌓는다.



재령 이씨 석계종가 잡과편

밤·곶감·대추·잣, 꿀 바른 찹쌀떡에 묻혀, 달콤




경북 영양군에 있는 석계종가는 조선시대 음식 관련 고서적인 『음식디미방』이 전해 내려오는 집안이다. 13대 종부 조귀분(62)씨가 내놓은 음식은 ‘잡과편’이다. 떡처럼 생긴 것인데, 어른들께 후식으로 내놓는 음식이란다. “할머니(『음식디미방』을 쓴 장계향씨를 지칭)가 워낙 만드는 법을 꼼꼼히 기록해 놓았기에 그것을 토대로 만들고 있지만 정확히 조선시대에 먹던 그 음식인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어요.” 그렇지만 조씨는 그동안 궁중음식 보유자 황혜성씨(2006년 작고)씨, 허성미 교수(안동과학대 식품조리학과) 등과 손잡고 『음식디미방』의 기록을 바탕으로 최대한 원형에 근접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조귀분씨는 “잡과편에 들어가는 재료는 전부 몸에 좋은 것들이다. 고물을 묻히기 위해 꿀을 발랐기에 달착지근한 맛이 나는 것도 특징이다”며 “지금은 현대인들의 기호에 맞게 500원짜리 동전 크기로 작게 만들고 있지만 원래는 지금보다 훨씬 컸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재료(20개 분량) 찹쌀가루 2컵, 삶은 밤 10개, 곶감 3개, 대추 10개, 잣 3큰술, 꿀 3큰술, 소금 1/2작은 술.



●만드는 법 1 밤은 삶아 껍질을 벗긴다. 2 곶감과 대추는 씨를 빼고 방망이로 밀고 잘게 채 썬다. 잣과 밤도 잘게 썬다. 3 찹쌀가루에 소금을 넣고 되직하게 익반죽해 지름 2㎝ 크기로 빚어 뜨거운 물에 삶아 찬물에 헹군다. 4 찹쌀떡에 꿀을 바르고 ②의 고물을 묻힌다.



안동 권씨 복야공파 가지불고기

죽죽 길게 자른 가지 구운 뒤 양념장 발라, 짭짤




이 집안은 『음식디미방』을 지은 장계향 할머니의 외가다. 『음식디미방』부록에 ‘맛질방문’이 나오는데 맛질이 바로 복야공파가 대대로 자리 잡고 살던 경북 예천군 용문면이다. 종부인 조동임(62)씨가 사는 춘우재 고택도 지금으로부터 420여 년 전에 지었다. 조동임씨가 공개한 음식은 가지불고기. 재료는 고기 없이 오직 가지뿐이다. “전처럼 굽기 때문에 불고기라는 이름을 붙였을 뿐입니다.”



가지를 이용한 레시피를 내놓은 것은 지금이 제철이기 때문이란다. 조동임씨는 “대개 종손 집의 음식들은 철에 따라, 날씨에 따라 음식이 달라지는데 가지는 6월 중순부터 많이 나기에 지금이 먹기 가장 좋을 때”라고 설명했다. 조씨는 “아마 대부분 가지는 쪄 먹거나 삶아서 무쳐 먹는데 우리 집안에서는 가지를 구워 양념해서 내놓는다. 짭짤한 게 여름에 반찬으로 그만이고 보라색을 띠고 있어 먹음직스럽게 보인다”고 소개했다.



●재료(2인분) 가지(길이 약 20㎝) 4개, 조선간장 50㏄, 양조간장 100㏄, 식용유 100㏄c, 고춧가루·마늘·참기름·양파·파 적당량.



●만드는 법 1 가지를 4등분으로 길게 가른다. 이때 끝은 자르지 않는다. 2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가지를 얹어 굽는다. 타지 않도록 앞뒤로 뒤집어준다. 3 조선간장·양조간장·고춧가루 등을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 4 구운 가지 위에 양념장을 뿌린다.



나주 나씨 반계공파 시금치 김치

제철 시금치에 젓·마늘·고춧가루 버무려, 아삭




결혼한 지 40년이 됐지만 지금까지 4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다는 반계공파 종부 강순의(63)씨가 비법을 공개한 것은 의외로 김치였다. 그런데 재료가 특이하다. 시금치란다. “6~8월 사이 배추 김치는 김장 김치만큼 아삭하지 않고 맛도 없어요. 시금치는 지금이 제철로 비타민 A와 엽산·철분이 많이 함유돼 있어 영양도 만점이죠.” 강순의씨는 “시어머니(문사재)는 밭에 있는 다양한 채소를 이용해 그때 그때 김치를 담가 먹었다. 내가 배운 것만도 200가지에 이른다”고 털어놓았다. 배추 절인 것을 손으로 만져만 봐도 간을 맞출 수 있게 돼 ‘김치 명인’ 소리를 듣게 된 것도 다 시어머니 덕분이란다.



강씨는 “시금치 김치는 조금 만들어서 2~3일 내로 먹고 또 담가야 한다. 익으면 본래의 아삭아삭한 식감이 없어지고 맛도 없다”며 “짠 것보다는 심심하게 간을 하는 것이 먹기에도 좋다”고 소개했다.



●재료 시금치 1단, 액젓 2큰술, 진젓 2큰술, 새우가루·마늘·고춧가루·고추씨 적당량.



●만드는 법 1 씻은 시금치를 뜯어 그릇에 담는다. 2 액젓과 진젓을 붓는다. 3 가족들의 기호에 맞게 마늘·고춧가루·고추씨 등 양념을 넣고 버무린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