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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종갓집 솜씨 ‘천기누설’

중앙일보 2010.07.06 00:25 경제 21면 지면보기
충북 보은군 장안면엔 99칸짜리 보성 선씨 영흥공파 종갓집인 ‘선병국 고가’가 있다. 지난달 19일 이 저택엔 도시에서 온 여인네들이 몰려들었다. 모두 보성 선씨 집안에 대대로 이어져온 음식 비결을 듣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내려온 것이다. 이 집은 4년 전 350년째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덧간장 1L를 500만원에 팔았다고 해서 유명해졌다.



수백 년 내려온 비밀의 음식, 세상 밖으로



종갓집 음식은 맏며느리들이 시집살이 동안 흘렸던 눈물과 정성의 결합체이다. 수십 년 동안 한 집안의 음식을 책임졌던 종부의 손에서 인고의 세월이 느껴진다.
이날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맏며느리 김정옥(58)씨는 약 2시간 동안 간장 장아찌와 된장 장아찌를 담그는 집안의 비법을 공개했다.



“간장은 조선간장 3컵에 왜간장 1컵의 비율로 섞어야 해요.”



“야채육수는 끓여서 뜨거울 때 부어야 합니다. 원래 무는 가을 무를 사용해야 단단하지, 봄 무는 여물어 맛이 없어요.”



김씨는 비법을 전수하고, 참석자들은 받아 적느라 바빴다. 남편의 권유로 참석했다는 권미숙(50)씨는 “장아찌에 대해 그동안 몰랐던 것을 너무 많이 알게 됐다. 재밌고 색다른 경험이었다”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종갓집 음식이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있다.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 동안 한 집안에 숨겨져 있던 비밀이 세상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 김씨는 “원래 종갓집 음식은 그 집안만의 비밀이기에 잘 공개하지 않는다”며 “그러나 2~3년 전부터 한식 세계화 등의 영향으로 각 집안의 특이한 음식들이 조금씩 소개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130가지 장아찌, 200가지 김치 전해오는 집안도



보성선씨 영흥공파 맏며느리 김정옥(오른쪽)씨가 장아찌 담그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종갓집 음식은 며느리에게서 며느리에게로 시집살이를 통해 전해져 내려왔다. 경북 안동의 광산 김씨 예안파 집안에서 전해져 내려온 『수운잡방(需雲雜方)』, 경북 영양의 재령 이씨 석계종파 집안의 『음식디미방』처럼 문헌으로 전해진 곳은 극소수다.



23세 때 나주 나씨 반계공파 집안에 시집왔다는 강순의(63)씨는 “새참 등 하루 5번, 끼니마다 30여 명의 식사를 준비해야 했다. 부엌에서 자연스럽게 시어머니(문사재)로부터 음식 만드는 법을 물려받았다”고 말했다. 층층시하에서 일어나 잘 때까지 마루에 한 번 앉아보지 못하고 하루종일 음식만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은 웃으며 말하지만 당시엔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한다. 이렇게 35년간 시어머니로부터 배운 비법은 수백 가지가 넘는다. 장아찌만도 130여 가지, 김치 담그는 비법은 200가지 이상이란다.



김정옥씨도 마찬가지다. “우리 집안에서는 간장을 달이지 않고 3년 동안 간수를 뺀 천일염과 옻나무와 숯을 이용해 잡균을 막아 맛을 냅니다. 모두 시할머니(유평선)와 시어머니(어산)로부터 물려받았죠.”



재령 이씨 석계종파 며느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음식디미방』에는 국수·어육류·채소류·주류 등 146가지 조리 비법이 상세히 적혀 있지만 그림이 없기에 어떤 모양인지 알 수 없다. 13대 종부인 조귀분(62)씨는 “시어머니(김증숙)가 일찍 돌아가셨기에 궁중음식 전문가인 황혜성 선생님하고 책을 보면서 수십 번씩 만들었다. 석이버섯떡·섭산삼·연근적 등이 그렇게 해서 세상에 나오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즐거운 마음으로, 제철 재료로 손님 대접”



종갓집 맏며느리들은 한결같이 “한 집안의 음식에는 그 집 며느리들의 정성이 들어가 있다. 또 내가 즐거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음식 맛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지금은 왕래가 뜸하지만 예전에는 시도 때도 없이 손님들이 찾아왔어요. 힘들기도 했지만 기꺼운 마음으로 밥상을 차렸죠.” 경북 예천의 안동 권씨 복양공파 종부인 조동임(62)씨의 설명이다.



종갓집 음식이 좋은 재료를 사용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조동임씨는 “가장 중요한 것은 싱싱한 제철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다. 텃밭에 있는 재료를 가져와서 배고픈 손님이 기다리지 않게 빨리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글=이석희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종갓집 음식을 배울 수 있는 곳



서울의 강남구청
(www.longlearn.go.kr)이 정기적으로 종갓집 음식 강좌를 한다. 2월부터 종갓집 며느리들을 초청해 매주 한 번씩 강의를 하고 있다.



수강료 1만5000~2만원(재료비 별도). 02-2104-1683.



보성 선씨 집안(www.adanggol.com)에서는 부정기적으로 레시피를 공개한다. 9월에는 대추꿀경단을, 10월에는 김치 등을 소개할 예정이다. 무료. 043-543-7177.



나주 나씨 반계공파의 강순의씨(www.kangskimchi.com)도 경기도 광주 자택에서 200가지가 넘는 김치 만드는 법을 일반인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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