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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표기업 DNA 달라졌다] ② 현대·기아차의 ‘소프트 감성 DNA’

중앙일보 2010.07.06 00:21 경제 2면 지면보기
#1 현대·기아자동차는 순혈주의를 깨기 위해 외부 인재 스카우트에 열심이다. 서울 양재동 본사에서 키워진 인력만으로는 급속히 불어난 해외 공장·영업망을 커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대·기아 출신이 아니면 안 된다’는 타성에 젖은 조직문화를 개선하려는 포석도 깔려 있다. 현대차 미국판매법인(HMA)은 지난달 29일 도요타미국 판매담당 임원 출신인 마이클 오브라이언을 제품담당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본사 해외마케팅 총괄인 마케팅본부장에는 조원홍 전 모니터그룹코리아 대표를 발령냈다. 현대차 본부장급(전무급 이상)에 외부 인사가 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아차도 올 3월 프랑스 화장품회사인 로레알에서 일하던 채양선씨를 마케팅담당 상무로 영입했다. 외부 수혈은 2008년 금융위기 이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다.


외부 수혈로 조직은 부드럽게 가슴에 호소하는 디자인 경영

#2 기아차는 자동차 업체로는 드물게 지난달 ‘공간 아이덴티티(SI:Space Identity)’를 도입했다. SI는 고객과 만나는 접점인 전시장·서비스센터뿐 아니라 임직원들의 사무공간 디자인, 가구 배치, 컬러에 이르기까지 공간과 시설에 브랜드 정체성을 반영한 것이다. 우선 전시장을 싹 바꿨다. 통유리 건물에 기아의 상징인 빨간색을 접목한 ‘레드 큐브(육면체:Cube)’가 테마다. 내부는 흰색·붉은색·밝은 회색으로 단순화해 깔끔하고 밝은 이미지를 줬다. 자동차 경주장을 연상시키는 타원형 공간으로 디자인했다.



올 2월 미국 시카고모터쇼에 출품된 기아차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컨셉트카 ‘레이’. 이 차는 한 번 충전해 전기모터만으로 80㎞를 달릴 수 있고, 하이브리드로는 최장 1200㎞를 주행할 수 있다. [블룸버그]
◆‘하면 된다’에 감성 접목=현대그룹의 창업정신인 ‘하면 된다’를 계승한 현대차의 경영 스타일은 판매 신장을 위주로 한 공격 일변도였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톱5’로 발돋움하면서 소프트한 감성경영을 접목하고 있다. 그간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새로운 DNA를 덧입힌 것이다. 톱5를 넘어 2015년께 도요타·폴크스바겐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톱3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공격경영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에서다. 2012년 해외 350만 대, 국내 300만 대 생산체제를 갖추고 연간 600만 대 이상을 꾸준히 판매하려면 소비자의 감성을 읽고, 이를 토대로 품질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게 선결돼야 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광고의 변화다. 그동안 동급 최대마력, 동급 최다 에어백 등 숫자로 나열하는 방식에서 탈피했다. 자동차를 등장시키지 않고도 현대·기아차를 타면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감성으로 접근했다. 남아공 월드컵 광고에서 현대차는 한 대의 차도 등장시키지 않았다. 월드컵에서 느끼는 환희를 현대차에서도 똑같이 맛볼 수 있다며 소비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금융위기 이후 세계 자동차 업계의 승자는 현대·기아차와 포드가 꼽힌다. 현대·기아차는 환율 효과를 본 데다 경쟁업체인 도요타의 대량 리콜로 반사이익을 얻었다. 지난해 1월 HMA가 도입한 ‘실직자 보상 프로그램’은 세계 자동차 마케팅에 남을 기록이 됐다. 당시 신차를 구입하고 1년 이내에 실직했을 경우 차량을 반납할 수 있게 했다. 덕분에 지난해 미국에서 전년보다 9% 증가한 43만5064대를 팔았다. 상위 10위권 자동차 업체 가운데 지난해 유일하게 판매가 늘어난 업체가 됐다.



올 상반기 해외 판매는 현대차가 144만2105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4% 늘었다. 기아차는 76만2072대로 역대 최고치인 62% 급증했다. 전 세계 자동차 업체 가운데 최고의 판매 증가율이다. 내수를 포함한 현대·기아차의 올 상반기 전체 판매는 275만 대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34% 증가했다. GM·도요타·폴크스바겐·포드에 이어 세계 5위의 판매량이다.



◆해외 생산기지 확장=2012년이면 중국 130만 대 등 해외에만 연산 350만 대의 생산기지를 확보한다. 세계 자동차 역사상 최단기간에 300만 대가 넘는 해외 생산기지를 구축하는 것이다. 글로벌 자동차 업체 가운데 해외에 연산 300만 대 공장을 보유한 업체는 도요타·GM·폴크스바겐그룹 등 3곳뿐이다.



현대·기아차는 국내와 합치면 연산 650만 대로 도요타·GM에 이어 세계 3위권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 요코하마국립대 조두섭(경영학) 교수는 “70년대 후반 미쓰비시자동차로부터 기술을 배웠던 현대차가 기술 독립을 통해 2000년 이후 10년 만에 300만 대가 넘는 해외 생산기지를 구축한 것은 산업사에 남을 성과”라고 평가했다.



기아차가 브랜드 정체성을 반영한 새로운 공간 아이덴티티를 도입했다. 새로 개장한 전북 전주 중부지점은 육면체 통유리 건물에 기아차의 브랜드 컬러인 붉은색으로 단장했다. 내부 인테리어도 자동차 경주장을 연상시키는 타원형으로 디자인했다.
◆톱3의 선결과제=조직에는 아직 예전의 문화가 남아 있는 게 사실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현대·기아차는 외부 인재 수혈에 나서고 있다. 조직문화 개선에는 정몽구 회장의 장남인 정의선(40) 부회장이 중심에 서 있다. 부회장단 가운데 가장 젊은 김용환(53) 기획조정 담당이 뒤를 받치고 있다. 김 부회장은 2006년 기아차 유럽법인장 시절 디자인 경영을 이끈 피터 슈라이어 디자인 담당 부사장의 스카우트를 맡았다.



이처럼 해외에서 선전하고 새로운 DNA를 덧입히고 있지만 아직은 부족한 면이 있다. 자동차 조사기관인 마케팅인사이트의 조사에서 국내 고객만족도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신차가 나올 때마다 가격이 오르는 게 국내 소비자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 그 결과 국내 대형차 시장에서 소비자들이 수입차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에쿠스·제네시스·오피러스 등 대형차와 벤츠·BMW 등 프리미엄 수입차의 가격차가 5% 이내로 좁혀지면서 올 상반기 대형차 시장에서 수입차 점유율이 35%를 넘어섰다. 유진증권 박상원 애널리스트는 “내수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현대·기아차가 해외시장만큼 국내에서도 정성을 들여야 지금의 위치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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