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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수의 세상읽기] 프레임 게임의 덫

중앙일보 2010.07.06 00:16 종합 33면 지면보기
지난달 27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정상회담을 한 이명박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그간 한·미 간에 쟁점이 돼 왔던 두 가지 현안에 대해 중요한 합의를 끌어냈다. 하나는 2012년 4월로 잡혀 있던 전시작전권 전환 시기를 2015년 말로 미루기로 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 내 사정 때문에 비준이 늦어지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연말께 의회에 제출하겠다고 확약한 것이다. 이 두 가지 현안은 그동안 이명박 대통령이 안보와 경제 면에서 가장 중요한 대미 외교의 과제로 삼아온 것이다. 청와대가 이번 정상회담 결과를 두고 ‘큰 성과’라고 자랑할 만하다.



그런데 똑같은 사안을 두고 야당과 국내의 일부 언론에선 전혀 다른 평가가 나왔다. 전작권 전환 시기의 연장은 ‘군사주권을 포기한 것’이고, 한·미 FTA 비준안 제출 약속은 ‘통상주권과 건강주권을 내준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전작권 이양 시기를 늦추는 것과 한·미 FTA 비준안 제출은 모두 미국에는 이익이고 우리나라에는 손해여야 맞다. 미국이 제발 전작권 전환 시기를 늦추고 FTA 비준을 서둘러 달라고 우리나라에 요구하고, 이를 우리나라가 짐짓 못이기는 척 들어주는 모양새여야 한다. 또 그토록 소중한 군사주권과 통상·건강주권을 내줬으니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으로부터 무언가를 대가로 챙겼어야 셈이 맞다. 그게 아니라면 이 대통령은 공연히 정상회담에 나가 ‘주권’만 내주고 빈손으로 돌아온 꼴이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그러나 정작 미국에선 정반대의 얘기가 나온다. 오바마 대통령이 천안함 폭침 사태 이후 한·미 동맹을 공고히 하기 위해 이 대통령에게 큰 선물을 줬다는 것이다. 전작권의 경우 이양 시기가 늦춰질수록 주한미군의 전략적 운용 여지가 줄어드는데도 불구하고 양보한 것이고, 한·미 FTA도 미국 내에서의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 비준안을 제출하겠다고 약속해 줬다는 것이다. 전작권 이양 시기 연장이든 FTA 비준이든 미국으로선 당장 하지 않아도 별반 아쉬울 게 없지만 동맹국인 한국의 입장을 배려해 오바마 대통령이 결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전작권과 FTA가 도대체 누구에게 이득이고 손해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과연 어느 쪽 주장이 맞는 얘기일까. 진위 판별의 기준은 과연 어느 쪽이 국익에 부합하느냐다. 전시작전권 전환은 전임 노무현 대통령 시절 ‘군사주권 회복’을 내세워 한·미 간에 합의한 것이다. 그러나 천안함 폭침 사건에서 보여지듯 북한의 대남 무력도발을 우리 군의 독자적인 전력만으로 감당하기에는 아직은 무리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군사주권도 좋지만 현실적인 북한의 대남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이 우선이라면 전작권 전환 시기를 미뤄서라도 미군의 자동 개입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전작권 이양 시기 연장이 ‘군사주권의 양보’라면 그것은 대한민국의 더 큰 주권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대한민국의 안전보장이 ‘군사주권 회복’이라는 허울좋은 수사보다 더 절실한 국익이다.



한·미 FTA는 실은 전임 노무현 대통령 시절 협상을 타결하고 비준을 추진했던 사안이다. “반미 좀 하면 어때”라던 노 전 대통령도 미국과의 FTA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국익이 이른바 ‘통상주권’보다 더 크다고 봤던 것이다. 사실 미국이야 한국이 여러 교역상대국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지만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는 여전히 세계 최대의 시장인 미국을 놓칠 수 없는 입장이다. 협상전략상 떠벌릴 일은 아니지만 미국이야 한국과 FTA를 안 한다고 해서 급할 게 없지만, 한국은 미국과의 FTA가 절실한 게 현실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야당과 좌파진영에선 이번 회담을 ‘주권을 포기한 최악의 정상외교’라고 비난한다. 차분히 국익을 따져 판단할 일에 ‘주권 포기’란 감성적이고 선동적인 프레임(틀)을 덧씌워 일반 국민의 적개심을 유도하는 것이다.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국민들에겐 복잡하기 짝이 없는 ‘국익론’보다 감성을 자극하는 ‘주권 포기’란 단순한 구호가 훨씬 선명하게 다가온다. 사실 야당과 좌파세력은 이 같은 ‘프레임 게임’에 능할뿐더러 실제로도 적지 않은 정치적 재미를 봐왔다. ‘건강주권’을 앞세운 쇠고기 촛불집회가 그랬고, ‘원안 사수’를 내세운 세종시 수정안이 그렇다. 일단 이런 선동적인 프레임에 걸려들면 좀체 헤어나기 어렵다. ‘국민의 목숨이 자동차 몇 대 파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절규 앞에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설명은 왠지 구차한 변명처럼 들린다. 끊임없이 제기되는 새로운 의혹을 쫓아다니며 해명하다 보면 본말과 주객이 전도된다.



‘우리 아이에게 눈치 안 보고 밥 좀 먹이자’는 포퓰리즘적 무상급식론 앞에 예산 타령을 앞세운 상식적인 반론은 설 땅이 없다. 이제 세종시 수정안이 좌초한 이후 야당과 좌파 프레임의 표적은 이 대통령의 간판사업인 ‘4대 강 사업’으로 넘어갔다. ‘환경 파괴’와 ‘4대 강 죽이기’란 프레임의 덫에 걸린 ‘4대 강 사업’은 벌써 흔들리기 시작했다. 야당은 이참에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4대 강 사업’도 무산시킬 수 있다는 의욕에 넘친다.



문제는 만사를 이런 식의 프레임 게임으로 몰아가다 보면 정작 국익은 온데간데없고, 국가적 손실만 남는다는 것이다. 프레임 게임의 전술로 당장 상대방에게 정치적 타격을 입힐 수는 있겠지만, 그로 인한 국익의 손실과 국가적 낭비는 국민과 다음 세대들의 짐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글=김종수 논설위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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