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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향우회

중앙일보 2010.07.06 00:14 종합 35면 지면보기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1917~1995) 선생이 독일에 머물던 1990년대 중반의 일이다. 94년 정부는 윤 선생에 대한 입국을 허용하기로 했다. 67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돼 2년간 옥고를 치른 윤 선생은 독일로 건너가 북한 방문 등 친북활동을 한 이유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신세였다.



‘25년만의 역사적 귀환’에 대한 감회를 듣기 위해 그의 베를린 자택에 한국 기자들이 몰려갔다. 회견 도중 한 기자가 뒤늦게 합류했다. 그리고 “고향 앞바다에서 건진 통영 멸치입니다”라며 멸치 한 포대를 내놓았다. 그 순간 ‘고향 통영 멸치’에 감격한 윤 선생의 눈가는 금세 붉어졌고,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윤 선생은 다른 기자들은 다 제쳐놓고 ‘멸치 기자’의 손을 꼭 잡고 통영 얘기만 한동안 나눴다. 고향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과 귀국에 대한 설렘이 너무도 컸기 때문이리라. 윤 선생은 95년 11월 끝내 고향 땅을 밟아보지 못한 채 숨을 거뒀다. 생전에 그는 “내 음악의 모태는 통영의 숲과 바다, 갈매기, 고기 잡는 소리”라고 했다.



고향이란 그런 것이다. 가곡 ‘가고파’에서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바다… 그 물새 그 동무들 고향에 다 있는데…”라고 읊은 것처럼 수구초심(首丘初心)의 본능을 자극한다. 그래서 ‘출세’해 서울에 올라와 타향살이하는 지방 출신들은 재경(在京) 향우회를 꾸려 고향의 소식을 묻고 신산한 삶의 고단함을 함께 다독였다. 가끔 고향 사람과 얼굴을 맞대고 정(情)을 쌓는 것은 아름답다.



공직사회의 향우회는 유난하다. 서울에는 지방 출신 공무원 모임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도(道) 단위를 비롯해 전국 시·군 기초자치단체별로 최소한 하나 이상의 향우회가 있다. ‘고향의 영광’을 위해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인맥 네트워크가 촘촘히 짜여 있다. 외국이라고 없겠는가. 미국 카터 대통령의 조지아 사단, 클린턴의 아칸소 사단, 오바마의 시카고 사단이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했다는 점에서 크게 다를 바 없다.



애향심을 탓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공무원 향우회가 친목을 넘어 “우리가 남이가”라는 연줄 문화에 휘둘리면 위험하다. 이런 모임에는 인사와 선거에 개입해 세(勢) 과시를 하려는 정치색이 덧칠되기 마련이다.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사건이 ‘영포목우회’라는 향우회로 불똥이 튀고 있다. 향우회마저 감시하는 각박한 세상이 올까 걱정된다.



고대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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