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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일본 축구와 일본인의 미학

중앙일보 2010.06.30 19:41 종합 34면 지면보기
일본 축구대표팀 오카다 감독은 완벽주의자다. 그런 그가 정신을 잃을 정도로 술에 만취했던 적이 딱 한 번 있다. 8년 전 한·일 월드컵이 진행 중이던 2002년 6월 18일 밤이었다. 그날 오후 일본 대표팀은 16강전에서 터키에 패배, 8강 진출에 실패했다. 그러나 몇 시간 후 한국은 강호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진출했다. 오카다 감독은 당시 TV 축구해설자로 현장에 있었다. 너무나 억울하고 분해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고 한다. 그러곤 호텔 방문 앞 복도에 고꾸라져 잠이 들었다. 오카다 감독은 뭐가 그렇게 분했던 걸까.



당시 일본은 예선을 1위로 통과했다. 그러자 감독과 선수들 모두 느슨해졌다. 그러곤 8강 문턱에서 무너졌다. 하지만 한국은 달랐다. 같은 날 낮 일본이 졌다는 소식을 듣고 선수들이 느슨해지자 히딩크 감독이 분위기를 다잡았다. 그리고 그게 주효했다. 오카다 감독은 한국과의 대조적 상황이 너무 분하고 억울했던 것이다. 오카다 감독은 이번 월드컵 전 “4강 진출이 목표”라고 했다. 모두가 “정신 나갔다”고 비아냥거렸다. 대다수 전문가도 “4강은커녕 예선 3경기 전패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한국이 했으면 우리도 할 수 있다”고 했다. “죽을 각오로 임한다”고 했다. 그의 목표는 8년 전 아픈 추억을 남긴 한국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일본은 어제 16강전에서 파라과이에 승부차기로 패했다. 비록 약속은 지키지 못했지만 역대 일본 감독 중 이처럼 독기를 품고 명확한 목표를 정해 달려든 감독은 없었다. ‘사무라이 리더십’이다.



월드컵 시작 전 스트라이커 혼다 게이스케가 TV에서 “(월드컵에서) 프리킥으로 꼭 골을 넣겠다”고 말하는 걸 봤다. 솔직히 난 비웃었다. “그래, 그게 너희들의 문제야. 프리킥으로 넣으면 어떻고, 헤딩으로 넣으면 어떠냐. 어떻게든 토털 축구로 골 넣어 이기는 게 중요한 거지. ‘종합력’의 박지성을 보라고.”



몇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트리플 악셀’이란 고난도 기술에 집착한 아사다 마오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목표가 겨울올림픽 금메달인지, 트리플 악셀의 성공인지 헷갈릴 정도로 아사다 마오는 트리플 악셀에 집착했다. 확실히 여느 나라 선수들과는 다르다. 난 이를 특유의 ‘일본식 미학(美學)’으로 해석한다. 결과만큼 경과, 그리고 모양새에 집착하는 일본인들의 의식 말이다.



그런 점에서 난 어제 가미카제 특공대원마냥 온몸을 내던지며 공을 가로막는 일본 선수들과 오카다 감독의 일체감을 보면서 일본식 미학의 진화 가능성을 엿보았다. 비록 패하긴 했지만 일본식 미학이 사무라이 리더십과 제대로 결합되면 큰 화학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어찌 보면 일본 사회는 오랜 기간 이 두 가지가 제대로 융합하지 못해 침체의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 둘은 서로에게 마이너스였다. 리더는 구성원 개개인의 저력을 경쟁력으로 승화시키지 못했고, 구성원들은 리더를 탓하며 제각기 ‘마이 웨이’만 외쳤다. 16강전에서 일본인들이 지고도 환호하는 이유는 그걸 극복하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 아닐까.



김현기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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