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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달간 나라 뒤집어놓고 ‘세종시 원안 유턴’ … 모두가 ‘루저’ 였다

중앙일보 2010.06.30 02:17 종합 4면 지면보기
한국 현대사에서 6·29는 성취한 날이었다. 1987년 그날 ‘6·29선언’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다. 민주화의 분수령을 이룬 이날의 승자는 국민과 여야 모두였다. 그러나 2010년 6·29는 다르다.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세종시 수정안은 부결됐다. 길게 보면 2002년, 짧게 보면 지난해 9월부터 시작된 논란이 종결된 셈이나 그것이 남긴 상처는 컸다. 원안이냐, 수정안이냐를 놓고 정치권을 포함해 한국 사회 전체가 갈등의 소용돌이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단국대 가상준(정치외교학) 교수 등 전문가들은 “87년과 달리 여야 모두 ‘패배자(loser)’”라며 “정치권이 이번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또다시 같은 실패를 되풀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시 수정안 부결이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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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포퓰리즘과 기회주의=세종시는 2002년 노무현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수도이전 공약에서 비롯됐다. 이듬해 취임한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 때 이 주제로 재미 좀 봤다”고 했다. 같은 해 관련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반대하지 않았다. 최병렬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충청표를 노리는 노 대통령의 수에 당해선 안 된다”며 의원들을 설득했다.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과 표를 넘겨줄 수 없다는 ‘기회주의’의 씨앗은 그렇게 뿌려졌다. 이명박 대통령도 이 굴레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세종시 반대론자인 그는 2008년 대선일이 다가오자 “원안대로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 그가 지난해엔 “선거일이 가까워지니 자꾸 말이 바뀌더라.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고 후회스럽기도 하다”고 했었다. 명지대 김형준(정치외교학) 교수는 “지역·표와 연결된 정책이 포퓰리즘에 빠지면 향후 대통령이 의지를 가져도 못 고친다는 게 이번 교훈”이라고 진단했다.



②‘진영(陣營)’ 속에 갇힌 사고=세종시 원안이든 수정안이든 모두 일정 가치를 대표하고 있다. 도시를 키우는 게 경제인지 행정인지가 대표적인 예다. 충청권은 원안을 지지하지만 다른 지역에선 수정안에 대한 찬성 의견이 높다. 어느 일방을 선택하면 또다시 논란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정치권은 그러나 원안과 수정안으로 갈려 싸울 뿐이었다. 선택이 아닌 선과 악의 문제로 받아들였다. 진영 간 대치전선도 뚜렷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수정안 발표 전에 “원안이 배제된 안은 반대한다”고 선을 그었다. 친박계에서 절충하자는 주장이 나오자 “개인 생각”이라고 잘랐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 등 야당도 원안 사수만 외쳤다. 이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들도 “절충안은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절충안 마련에 실패한 건 나만 옳다는 진영 사고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③‘비전’의 부재=세종시가 완공되는 건 2030년이다. 차차기 대통령도 은퇴한 뒤다. 그래서 미래세대를 염두에 둔 결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치권은 각자의 입장이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대화와 타협을 하려 하지 않았다. 미래세대를 위한 진정한 비전(vision)을 가다듬을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다. 박성민 정치컨설턴트는 “새만금도 농경지용으로 시작했다가 번복해야 했다”며 “미래를 염두에 두지 않은 세종시도 같은 길을 걷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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