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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축구의 ‘기본’을 생각한다

중앙일보 2010.06.30 00:28 종합 33면 지면보기
전 세계인이 숨을 죽이고 흥분해마지 않던 지구촌 축제가 많은 이변과 기적을 연출하며 서서히 종반전으로 치닫고 있다. 우리는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에 이어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처음으로 원정대회 16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내친김에 8강 아니 4강까지 가자는 바람도 있었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인지, 아니면 운이 따라 주지 않았기 때문인지 이뤄지지 못했다. 아무도 알 수 없는 승부의 세계, 그것이 바로 축구다.



성적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이 아니다. FIFA 순위라면 무엇 때문에 월드컵에 흥분하겠는가. 공은 둥글고,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축구이기에 우리는 열광한다. 그러나 아무리 불가측성이 많더라도 축구 선진국이 되려면 우선 ‘기본’부터 다져야 한다. 우리 선수들이 기본이 안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유소년 시절부터 몸에 밴 축구와 그렇지 않은 축구는 다르다는 것이다. 구미 선진국은 천연잔디구장이라 체력 소모도 훨씬 많고, 공을 차는 방법이 맨땅에 익숙한 우리와 다르다. ‘맨땅투성이인 아프리카는 뭐냐’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은 어렸을 때부터 천부적 유연성으로 축구에 길들여진 나라들이다.



우리나라는 우선 축구의 저변이 넓지 않다. 제한된 사람만 즐기고, 천연잔디구장과 같은 여건이 안 돼 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선수들이 세계 거의 모든 국가가 겨루는 월드컵에 일곱 번 연속 32개 국가에 들어 출전했다는 것만으로도 자랑스럽다. 이번에 16강에는 진출했지만 8강, 4강, 그 이상의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투자를 더 해야 한다. 축구 인구의 저변이 확대돼 더 많은 국민이 축구를 즐길 수 있어야 하고 운동장을 비롯한 인프라의 개선도 필요하다. 특히 유소년 시절부터 선수를 육성하는 시스템이 확립돼야 좋은 선수가 나올 수 있다. 이번 우리 대표팀 선수 중 스물한 살의 기성용·김보경·이승렬처럼 유소년부터 훈련된 선수들이 더욱더 많아져야 한다.



사람들은 왜 축구에 열광하는가.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하듯 예측이 불가능하고 협력 플레이를 중시하며 폭발적인 스피드가 요구되는 경기이기 때문이다. 패스 방향이 한번만 달랐어도 경기가 달리 전개됐을 수도 있는 불가측성에 사람들은 묘미를 느낀다. 혼자 몰고 다니는 것보다 2대 1 패스 같은 협력플레이를 통해 사람들은 더 재미와 감동을 느낀다. 축구는 골대를 향해 자기보다 나은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패스하는 경기다. 패스는 남이 가장 잘 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서비스다.



이제 우리 축구도 점점 글로벌화돼 가고 있다. 외국에 진출한 선수도 많고 한국팀을 지도하는 외국계 감독도 많다. 여자축구도 꽤 발전해 남자축구보다 먼저 월드컵 우승을 차지할 가능성마저 있다. 세계인구의 3분의 1이 시청하는 월드컵은 우리가 도외시할 수 없는 국가 간의 경연장이다. 월드컵을 통해 우리나라의 인지도를 높이고 우리 상품의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다. 이제 평소에도 월드컵 때만큼 축구에 관심을 가져보자. K-리그에도 표를 사서 가보자. 월드컵은 계속된다.



박인구 동원그룹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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