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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기자가 만난 시장 고수] 삼성전자·현대차 그늘에 이유없이 싼 주식 너무 많아져

중앙일보 2010.06.30 00:24 경제 9면 지면보기
이채원(46)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부사장은 한국 펀드시장의 최강 ‘수비수’로 꼽힌다. 그는 돈을 벌기보다는 잃지 않는 데 치중하는 플레이를 펼친다. 그래서야 수익이 나겠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그가 책임지는 ‘한국밸류 10년투자펀드’의 설정일(2006년 4월) 이후 누적 수익률은 59.5%를 기록해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 상승률(21.8%)을 37.7%포인트나 앞질렀다.


이채원 한국밸류자산 부사장

이 부사장은 수비형 펀드매니저의 길을 선택한 데 대해 “워낙 소심하고 겁이 많은 성격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용기 있는 개척자다. 그가 가치주에 10년 이상 투자할 사람을 모으는 ‘10년 펀드’를 내놓았을 때 ‘과연 팔리겠느냐’는 반응이 대세였다. 하지만 그의 투자철학에 공감하는 투자자가 꾸준히 늘면서 이제껏 1조5000억원어치가 팔렸다. 적립식 투자자가 대부분으로 계좌수로는 13만 개나 된다.



이채원 한국밸류자산 부사장이 인터뷰를 하는 도중 화이트보드에 필기를 하면서 투자원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 이 부사장은 ‘가치투자의 전도사’란 별명을 갖고 있다. 가치투자란 게 뭔가.



“진흙 속의 진주를 찾는 것에 비유하고 싶다. 내재가치와 비교해 헐값에 거래되는 종목에 투자하는 것이다. 우리는 진열대에 놓인 보석은 절대로 사지 않는다. 그런 맥락에서 현재 삼성전자나 현대차 같은 종목에 한 주도 투자하지 않고 있다. 포스코도 모두 팔았다.”



- 한국 증시에서 삼성전자나 현대차 같은 ‘대장주’ 없이 펀드를 굴린다는 게 무모하게 들린다.



“그런 대장주들이 현재 시장에서 충분히 대접받으며 제값에 거래되고 있기 때문에 사지 않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는 경기에 민감한 종목을 싫어한다. 삼성전자나 포스코는 해당 업종 경기가 최악의 상황에 빠져 싸게 거래될 때 다시 사들일 것이다. 영원히 좋은 기업은 없다.”



- 저평가된 종목에만 투자한다는 얘긴데, 저평가의 기준이 뭔가.



“수익가치 측면에서 주가수익비율(PER) 7배 이하, 안정가치에서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이하는 돼야 한다. 그리고 성장가치를 읽을 수 있는 질적 요인들을 따진다. 제품의 시장지배력과 기술력, 비즈니스 모델, 기업 지배구조 등을 본다. 한마디로 구조적이고 지속적으로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을지를 살피는 것이다. 이런 수익과 안정, 성장의 요소를 모두 갖췄는데도 ‘이유 없이 싸게’ 거래되는 종목을 우리는 노린다. ”



- 저평가된 가치주들이 지금 증시에 많은가.



“그렇다. 이유 없이 싼 종목이 정말 많아졌다. 삼성전자·현대차 등 성장성이 부각된 꿈의 주식들이 대세를 장악하다 보니 그 그늘 아래서 많은 가치주들이 푸대접을 받고 있다. 가치주들이 움직이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경제가 모든 면에서 정상 궤도에 오른 뒤에나 사람들은 싼 주식을 찾는다. 요즘처럼 불확실성이 여전한 상황에선 확실한 테마가 있는 꿈의 주식이 각광 받기 마련이다.”



- 그렇다면 그 시점은 언제로 보나.



“가치주들은 내년 초부터 슬슬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2~3년 동안 큰 수익을 낼 것으로 전망한다. 여유 있는 투자자라면 지금부터 가치주 펀드에 돈을 넣고 기다려보라고 권하고 싶다.”



- 가치투자의 길을 걷게 된 특별한 계기 같은 게 있었나.



“1988년 증권사에 들어와 정말 열심히 연구하면서 주식을 매매했다. 그런데 돈을 벌려고 욕심을 부리면 부릴수록 엇박자가 나고 큰 손실을 보기 일쑤였다. 투자자들에게 적잖은 피해도 끼쳤다. 그러면서 돈을 잃지 않는 게 투자의 기본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돈을 잃어버리면 재기전도 없이 시장에서 쫓겨나고 말지 않는가. 그때부터 가치투자에 심취해 벤저민 그레이엄과 피터 린치 같은 대가들의 투자 지혜를 배워나갔다.”



이 부사장의 좌절과 성공을 단적으로 보여준 종목이 롯데칠성이다. 98년 ‘밸류 이채원 펀드’를 운용하던 그는 롯데칠성을 8만원대에서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IT 붐이 일면서 시장의 관심이 온통 IT주로 집중됐고, 롯데칠성은 5만원대까지 떨어졌다. 펀드 수익률이 부진하자 투자자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이 부사장은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해 펀드 운용에서 손을 뗐고 증권업계를 떠날 마음도 먹었다. 그러나 동원증권의 고유계정 운용을 맡을 기회를 잡아, 다시 고집스럽게 롯데칠성을 사들였다. 주가는 2001년부터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해 2005년에 100만원을 돌파하더니 2007년엔 160만원을 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400%가 넘는 고수익을 올렸다.



- 남유럽에 이어 이번엔 중국 변수로 증시가 크게 출렁이고 있는데.



“중국의 성장 둔화를 걱정하는 소리가 나오지만, 수출 위주 경제가 내수 쪽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의 진통으로 본다. 글로벌 경제의 회복 흐름에 타격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중국 근로자들의 임금 상승에 주목한다. 이는 양날의 칼이다. 임금 상승은 중국의 소비 붐을 예고한다. 그 혜택이 집중될 종목들이 각광받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발 인플레가 걱정이다. 중국의 저임금에 기댄 글로벌 물가 안정세를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인플레 시대에는 제품의 가격 결정력이 큰 기업에 주목해야 한다 .”



- 증시가 박스권의 지루한 장세 흐름에서 언제나 벗어날 것으로 보나.



“3분기까지는 코스피지수가 1600~1800을 계속 오르내릴 것으로 본다. 남유럽 재정위기의 여진과 미국 주택경기 부진에 따른 더블딥(경기의 이중침체) 우려가 해소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시장은 4분기께 박스권을 돌파해 내년부터는 대세 상승 흐름을 보일 것으로 예상한다.”



이 부사장은 투자자들과의 소통을 중시한다. 올해 운용보고서를 160쪽의 컬러 책자로 만들어 모든 고객에게 발송했다. 때로는 반성문을 쓰기도 한다. 작년에는 국내 최초로 투자자들을 직접 초청한 운용보고대회를 열어 1000여 명이 참여한 축제의 한마당을 펼치기도 했다. 그의 포부는 앞으로도 ‘10년 펀드’ 하나에 ‘올인’‘하며 60세까지 펀드매니저로 일하는 것이다. 



글=김광기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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