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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태산이 울며 흔들렸는데 남은 게 뭔가

중앙일보 2010.06.30 00:22 종합 35면 지면보기
지축이 흔들리고 물길이 하늘 높이 치솟으며 철선이 두 동강 난 채 우리의 젊은 아들 46명이 산화한 지 석 달이 지났다. 엄숙한 장례식도 치렀다. 비장한 각오도 있었다. 곧 이어 서해안 앞바다에서 거창한 한·미 합동훈련으로 북의 간담을 서늘케 하고 유엔 외교를 통해 북의 죄상을 세계 만방에 엄중히 경고할 것으로 기대했다. 정부도 약속했다.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남은 게 무언가. 중국이 우리 앞바다에서 웬 해상훈련이냐고 대들자 쑥 들어가버리고, 유엔 외교가 밤낮 그렇듯 지지부진하다. 군 수뇌와 감사원이 티격태격 싸우는 것밖에 보이질 않는다. 태산명동(泰山鳴動) 서일필(鼠一匹)!



왜 이렇게 되었는가. 복기(復碁)해 보자. 군의 초기 대응은 감사원 조사에서 나오듯 중구난방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현장에 나타나면서 중심이 잡히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46명 용사의 이름을 불러가며 애도하고 훈장을 추서했다. 추모 열기가 높아졌고, 젊은이들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깊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세계적 전문가가 속속 모여들어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조사가 이뤄졌다. 여기까지는 잘 나갔다.



그러나 6·2 지방선거 한복판을 지나면서 천안함 사건은 조금씩 변질됐다. 추모와 비장함 모드가 전쟁유발형 모드로 전환했다. 가을쯤 하겠다던 한·미 합동훈련을 앞당겨 발표하고, 대북 선전 확성기를 곧 가동하겠다고 했다. 이에 북측은 즉각 확성기를 향해 발포하겠다고 을러댔다. 전쟁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젊은이들로선 전쟁유발형 정부 조처에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젊은이들의 반란은 정권이 의도했든 아니든, 천안함 사건을 막판에 전쟁유발형 모드로 전환한 데 대한 반작용이었다고 나는 본다.



중앙일보가 최근 ‘군 개혁 10년 프로그램을 짜자’는 참으로 참신한 기획기사를 실었다.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우리 국방의 근원적 문제를 제기하면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어뢰 한 방에 가라앉는 천안함을 보며 우리 국방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되나 하는 참담한 심정을 누구나 느꼈을 것이다. 북의 잠수정이 내려와 2~3km 앞에서 어뢰를 쏴도 이를 감지할 기술이 없다는 이 기막힌 현실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 많은 국방비에 첨단 무기로 철통같다는 우리 국방이 이처럼 허무하게 무너졌다면, 군 수뇌부는 감사원 감사에 시비를 걸 게 아니라 국민 앞에 석고대죄해야 마땅하다. 확성기 왕왕대며 북을 자극하는 전쟁유발형 대책이 아니라 물밑 어뢰를 탐지하는 기본 장비부터 확보하는 게 전쟁억지력을 강화하는 첫걸음이 아니겠는가.



전쟁억지력은 평화통일의 기본 전략이다. 그러나 남과 북의 전력(戰力) 비교에서 우리가 확실히 열세인 게 미사일과 핵무기 분야다. 한·미 미사일협정에 따라 사거리 300km, 탄두 중량 500kg 이상 미사일은 개발조차 못 하고 있다. 한때 1000km와 1500km 크루즈 미사일을 개발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정부는 쉬쉬할 뿐이었다. 이러니 나로호 발사를 위한 로켓 추진체에 2억 달러를 러시아에 지불하고도 사고 원인마저 못 밝히는 수모를 겪고 있다. 천안함 사태 이후 정부가 해야 할 전쟁억지력 강화책은 손발 묶인 이런 무기 개발 제한을 미국과 함께 풀어가는 일이다. 개발했다면 숨길 게 아니라 공개적으로 발표하고 더 정확도를 높여 가야 한다.



1992년 발효된 한반도 비핵화 선언 이후 우리는 ‘핵’이라는 말조차 꺼내기 어렵게 돼 있다. 북이 이 합의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이미 6~7개의 핵무기를 만들었을지 모를 상황에서 우리는 6자회담만 바라보고 있다. 2014년 5월이면 한·미 원자력협정이 만료된다. 사용 후 핵연료를 이용할 권리를 요구할 수 있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그러고 있다. 2016년이면 고리 원자력발전소의 폐핵연료 저장시설은 한계에 달한다. 월성, 울진, 영광의 저장시설이 줄지어 꽉 찬다. 2016년이면 한국원자력연구원은 파이로 프로세싱(건식처리방식)을 통해 매년 10여t의 핵폐기연료시험처리 계획을 갖고 있다. 언제까지 막기만 할 것인가. 미국과의 협의를 통해 핵폐기연료문제를 앞당겨 해결해야 한다.



핵무기를 만들자는 게 아니다. 우리가 원전 수출국으로서, 원전으로 에너지 대부분을 충당해야 할 나라로서 너무나 당연한 자구책이면서 너무나 정당한 우리의 권한이다. 삐라니 확성기니 보잘것없는 것으로 전쟁을 충동질하기보다는 미사일 개발과 핵폐기연료 재처리 권한 확보가 가장 확실한 우리의 전쟁억지력이다. 태산이 울며 흔들렸다면 무엇이라도 남는 게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권영빈 경기문화재단 대표·전 중앙일보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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