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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열전 ③ tvN의 ‘롤러코스터’ 김성덕·이성수

중앙일보 2010.06.30 00:17 종합 27면 지면보기
‘롤러코스터’의 이성수 PD(왼쪽)와 김성덕 CP. 히트코너 ‘남녀탐구생활’의 소재 회의를 하다 보니 “각자 집에서 어떻게 사는지 CCTV 보듯 다 알게 됐다”고 했다. [오종택 기자]
스티브 잡스(애플의 창시자)는 말했다. “혁신은 연구개발비의 액수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자, 예능프로를 해야 하는데 유재석·강호동 섭외는 언감생심이다. 그럼, 비싼 MC 쓰지 말고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가자. 평범한 행동을 디테일하게 담고 내레이션에 코미디를 입히는 거다. 그래서 탄생한 게 ‘남녀탐구생활’(이하 ‘남탐’)이다. 연기자들이 촬영에 늦고 밤샘에 불평한다. 이런, 우리 맘대로 되는 출연자 없나. 밥도 안 먹이고 물에 빠뜨려도 군소리 안 하는. 그래, 마네킹을 활용하고 목소리를 더빙하자. 이렇게 탄생한 게 ‘스컬리와 멀더의 신혼 X파일’이다.


남들이 스쳐보낸 일상, 이 둘은 콕 찍어내 일냈다

케이블·위성채널 tvN의 ‘롤러코스터’(이하 ‘롤코’) 속 코너들의 탄생 비화를 듣다 보면, ‘궁하면 통한다’가 실감난다.



제작비의 한계를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뚫는 이들은 진정 ‘케이블TV의 스티브 잡스’라 할 만하다. 지난해 7월18일 출범한 ‘롤코’를 이끄는 쌍두마차 김성덕(52) CP·이성수(38) PD다.



김 CP가 기획을 총괄하는 작전참모라면 이 PD는 현장을 통솔하는 야전사령관 격이다. 둘 다 정통 예능 PD 출신은 아니다. 김 CP는 MBC 공채 코미디작가 1기 출신으로 ‘일밤’ ‘남자셋 여자셋’ 등을 썼고, 이 PD는 각종 VJ 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 등을 연출했을 뿐 코미디는 처음이다.



“어떻게 보면 정형화된 룰이 없었기 때문에 ‘남탐’이 가능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사실 대본만 봐선 하나도 웃긴 게 없거든요. 남자가 손 안 씻고, 여자가 책상정리에 하루 쓰는 게 그 자체로 웃기진 않죠. 포인트가 무감정·무뚝뚝한 내레이션인데, 이 톤을 잡는 데 석 달 걸렸어요. 초창기엔 5분짜리를 10여 시간 녹음 뜬 적도 있을 정도예요.”(김 CP)



“~해요”체의 내레이션은 서혜정 성우를 스타덤에 올리고, 지금은 공익캠페인에도 활용될 정도로 히트를 쳤다. 그러나 ‘남탐’이 1년 이상 장수하며 ‘일상탐구생활’ 같은 가지치기를 하기까진 MRI(자기공명영상)에 비견되는 세밀한 일상 포착을 빼놓을 수 없다.



“예컨대 대본엔 ‘남자가 집에 오자마자 바지를 벗어 던진다’고 돼 있는 걸 어떻게 표현하느냐는 거죠. 정형돈이 걸어 들어오면서 바지가 술술 내려가 방에 질질 끌리는 것, 그 자연스러움에서 웃음이 나거든요. 이런 건 스태프 전원이 경험을 복기하며 만들어가요. ‘남탐’은 연출·작가뿐 아니라 카메라·조명 담당도 다 아이디어 창구입니다.”(이 PD)



지난 1년간 ‘남탐’을 포함, 10여 개의 코너가 생겼다가 사라졌다. “방송은 살아있는 생물체라서 코너끼리 싸움을 붙이고 생존력 있는 것만 남긴다”는 원칙(김 CP) 때문이다. 초창기엔 코너마다 연출 PD의 이름을 표기하는 ‘PD실명제’로 경쟁을 유도했을 정도다.



“지상파와 규모로 대적할 순 없잖아요. 지금 하는 ‘헐’이나 마네킹 시트콤(‘스컬리와 멀더의 신혼 X파일’) 같은 것도 발칙하고 좀 ‘또라이’ 같죠. 그런 게 호응을 얻으면 정가은이나 이해인(‘헐’의 여주인공) 같은 스타가 뜨는 거고. 케이블은 결국 스타를 키워내며 같이 크는 시스템으로 가야죠.”(김 CP·이 PD)



그들은 새 얼굴 찾기에 직접 나서기도 했다. ‘롤코’ 1주년을 기념해 ‘슈퍼스타R’이라는 이름으로 ‘제2의 정가은 선발 오디션’을 연 것이다. 1·2차 예선을 거쳐 선발된 최종 3명을 놓고 현재 tvN 홈페이지에서 시청자들의 온라인 투표가 이뤄지고 있다. 이들과 함께 ‘남탐’을 찍어 다음달 17일 1주년 방송에 내보낼 계획이다.



“2시간으로 늘려 1시간은 버라이어티, 1시간은 시트콤으로 가는 개편도 구상 중”이라는 김 CP의 낙천적인 얼굴에 스티브 잡스의 어록이 다시금 겹친다. “항상 갈구하라, 바보짓을 두려워 말라.”



글=강혜란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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