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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스와치’ 삶의 시곗바늘 멈추다

중앙일보 2010.06.30 00:02 종합 31면 지면보기
하이예크 회장이 2008년 4월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국제무역박람회에서 ‘마리 앙투아네트’로 불리는 시계를 들어 보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스터 스와치’가 영원한 시간 속으로 들어갔다. 갑작스런 심장마비였고, 양 팔목에 찬 시계만이 그의 최후를 지켰다. 스와치그룹은 28일(현지시간) 니콜라스 하이예크 회장이 회장실에서 일하던 중 별세했다고 밝혔다. 82세.


스와치그룹 창업한 니콜라스 하이예크 별세

그는 시계를 고장 날 때까지 한 가지만 계속 차는, 시간 보는 도구에서 기분 따라 바꿔 차는 패션 소품으로 바꿔놓았다. 스와치 그룹은 스와치·오메가·캘빈클라인 등 19개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그는 “24시간 내내, 그것도 맨살 위에 지니고 다니는 물건이 시계 외에 뭐가 있느냐”고 자주 물었다. 그리곤 스스로 답했다. “스와치는 미와 관능, 감동을 소비자에게 주려고 노력한다. 사람들은 피카소 작품을 사듯 스와치를 산다.” 그래서 그가 내린 기업인의 정의는 ‘예술가’이다.



이런 그의 생각이 스위스 시계 산업을 살렸다. 1980년대 초 스위스는 값싼 아시아산 시계의 공세로 파산 직전이었다. 이때 경영 컨설턴트였던 하이예크가 나섰다. 그는 한 개 10억원하는 고가 시계도 만들어야 하지만, 플라스틱 줄이 달린 싼 시계도 만들자고 해법을 제시했다. “고장 난 시계를 고치느니 새로 하나 사자고 생각하게 만들고, 옷 차림에 맞춰 바꿔 차는 시계를 만들자”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84년엔 아예 시계회사 SMH을 인수해 직접 경영에 나섰다. 이름은 스와치로 바꿨다. ‘스위스(Swiss)’와 ‘시계(Watch)’의 합성어다. ‘스위스 시계’라고 회사 이름을 지었지만 그는 스위스에서 태어나지는 않았다.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태어나 7살 때 스위스로 이주한 이민 1.5세다. 프랑스 리옹대를 나왔고, 63년 컨설팅 회사 ‘하이예크 엔지니어링’을 설립했다.



연간 9억 개의 시계를 파는 스위스 4대 부자지만, 그는 “도시에서 몰고 다닐 자동차는 성인 두 명과 맥주 한 박스 실을 공간만 있으면 된다”고 말할 정도로 검소했다.



딱 하나 검소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시계였다. 보통 그는 양쪽 팔목에 각각 네 개씩, 모두 8개의 시계를 차고 다녔다. “누구나 처음 만나면 왜 많은 시계를 차고 다니느냐고 묻는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시계 얘기로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그가 마침내 시계 바늘을 영겁의 시간에 맞췄다”는 문장으로 그를 보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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