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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속카메라 32대…심판 '도망갈 곳이 없다'

중앙일보 2010.06.28 11:37
영화 메트릭스1(1999년)에서 주인공이 날아오는 총알을 피하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다. 이 장면은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것이었다. 10여년이 지난 요즘 카메라 촬영기술은 구태어 그런 그래픽 기법을 활용하지 않더라도 날아가는 총알의 움직임을 생생하게 보여줄만큼 발달했다. 바로 초고속 카메라 촬영기법의 등장이다.



스포츠 중계는 이 분야의 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배경 중의 하나가 되고 있다. 지구촌 축제인 월드컵이 대표적인 경우다. 시청자들에게 경기를 보는 재미를 더해주기 위해 시간이 갈수록 새로운 영상기술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스포츠 중계방송은 1937년 영국의 BBC가 아스날팀의 경기를 세계 최초로 중계하면서 시작된 것이었다. 그후 인공위성이 등장하면서 1970년 멕시코 월드컵부터는 세계가 동시에 축구를 즐기게 됐고,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HD 고화질 방송이 등장해 시청자들은 보다 선명한 화질로 월드컵을 즐길수 있게 됐다.



2010남아공 월드컵 영상의 백미는 초고속 카메라를 통한 수퍼 슬로우 화면이다. 헤딩을 하는 선수들의 머리에서 튀는 땀방울과 축구화 징에 파이는 잔디, 미세한 얼굴 근육 까지도 놓치지 않는 초고속 카메라와 HD영상의 결합은 보는 이들의 찬탄을 자아낸다. 이번 월드컵에 사용된 카메라의 이름은 '초고속 울트라 모션 카메라'다. 1초에 2700장을 찍을 수 있는 이 카메라는 이론적으로는 날아가는 총알도 찍을 수 있다.



중계카메라 수도 늘었다. FIFA에 따르면 이번 월드컵에서는 한 경기에 32대의 카메라와 200명의 중계인력이 동원됐다. 2006 독일월드컵의 25대 보다 7대가 늘어났다. 우리나라 K리그의 경우 10대의 카메라가 사용된다. 물론 이 수도 중요한 경기일때다. 이번 월드컵에 동원되는 카메라 중에서 무인카메라 스파이더캠의 경우 영화에서 사용하는 것이다. 직경 1.6mm의 와이어로 경기장 사방에 달려있는 조명탑에 카메라를 메달고 컴퓨터를 이용해 원격조정 한다. 또 항공촬영을 통해 선수와 공의 움직임을 한눈에 보여준다.



그렇다면 월드컵 중계화면은 누가 제작할까. 우리나라의 월드컵 방송사는 SBS지만 실제 제작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FIFA가 다양한 각도에서 국제기준으로 제작한 화면을 취사선택해서 내보낼 뿐이다. 중계방송 제작은 FIFA와 계약을 맺은 프랑스의 스포츠중계 전문 외주 제작사인 'HBS(Host Broadcast Services)사가 한다. 이 회사는 지난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부터 월드컵 중계방송을 전담해왔다. 이 회사 스탭들은 조명과 앵글 등 최적의 월드컵 중계방송 제작을 위해 첨단 장비와 인력을 확보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경기장 설계에도 조언한다. 이들은 월드컵 30일을 위해 4년을 준비한다.



카메라 수가 늘다보니 가장 곤혹스러운 사람은 심판이다. 경기장 곳곳에 포진해 있는 32개의 '숨은 눈' 은 선수들의 파울을 빠짐없이 잡아낸다. 어떤 교묘한 파울도 32개의 눈을 피해갈 수 없다. 판정이 가장 어렵다는 '오프사이드'는 고공촬영으로 화면에서 선을 그어 명쾌하게 보여준다. 남아공 월드컵에서 유난히 오심논란이 일고 있는 것도 '카메라 덕택(?)'이다.



실제로 한국대 아르헨티나전 주심을 봤던 프랭크 데 블릭카레는 "세번째 골은 오프사이드 였다"며 자신의 실수를 사과하기도 했다. 또 우르과이 전에서 심판은 보지 못했지만 기성룡의 핸드볼 장면도 우리 시청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페널티 박스 안이었기 때문에 핸드볼 파울로 '페널티 킥'을 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월드컵 최고의 빅매치 중의 하나인 27일 독일과 잉글랜드의 경기에서도 명백한 오심이 나왔다. 잉글랜드는 1-2로 뒤진 전반 38분쯤 프랭크 램퍼드가 상대 골문을 향해 강슛을 날렸다. 공은 크로스바의 아랫부분에 맞고 골문 안쪽으로 떨어졌다가 튀어 올랐다. 독일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는 재빨리 튄 공을 잡아챈 뒤 골이 아닌 듯 태연하게 그라운드로 공을 날렸다. TV의 느린 화면을 보면 볼은 골대 약 50cm 안으로 들어간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호르헤 라리온다(우루과이) 주심은 골로 인정하지 않고 경기를 그대로 진행했다. 중요한 고비에서 나온 심판의 오심으로 잉글랜드는 경기에 패했다.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박종호 교수는 "스포츠 경기 등에서 쓰이는 방송장비의 경우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개발했거나 군사용으로 만든 것이 많다"며 "영상 기술의 발달은 심판보다 오히려 시청자의 눈을 더 정확하게 한다"고 말한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심판이라도 다양한 각도에서 찍히는 영상과 초고속 카메라가 보여주는 슈퍼슬로우 화면을 이길수는 없다는 것이다.



아직 FIFA는 심판의 권위를 위해 비디오 판독제도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나오는 오심은 경기의 흐름을 일순간에 뒤집을 수 있다. 영상기술의 발전과 함께 축구에도 비디오 판정제도를 도입해야한다는 주장이 갈수록 설득력을 얻고 있다.



멀티미디어팀=이병구·김정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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