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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171) 마오쩌둥의 공공외교 <中>

중앙일보 2010.06.28 10:01


▲장정 도중인 1935년 5월 다두허(大渡河)전투에서 17명의 홍군 전사들이 군복 한 벌, 일기장 한 권, 연필 한 자루, 젓가락 한 개를 상으로 받았다. 최고의 상이었다. 1949년 10월 신중국 수립을 선포했을 때 17명 중 생존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에드거 스노는 1936년 여름 닝샤에서 이들을 만났다. 김명호 제공

에드거 스노 만난 마오 “공산당원 될 줄 상상 못했다”



1936년 6월 말, 에드거 스노는 시안(西安)에서 조지 하템과 합류했다. 중공 보위국장이 두 사람의 호송을 지휘했다. 관광객을 가장해 옌안(延安)에 도착한 후 장쉐량(張學良)의 부관이 동승한 차를 타고 마지막 검문소를 빠져 나왔다. 옌안은 아직 국민당이 지배하고 있었다. 국민당의 2인자 장쉐량과 공산당의 관계를 눈치챈 스노는 머리가 복잡했다. 『수호전』에 나오는 흑선풍 이규(黑旋風 李逵)처럼 험하게 생긴 사람이 마차를 몰고 와 무조건 타라며 짐을 빼앗았다. 어찌나 무섭던지 시키는 대로 했다.



7월 9일 소련 구역의 첫 번째 초소에 도착하자 말 위에 앉아있던 사람이 악수를 청했다. 얼굴이 수염투성이였다. “현상금 8만원에 지명수배된 저우언라이”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11일 밤 9시 스노와 하템은 저우의 안내로 마오쩌둥을 만났다. 마오는 부엉이처럼 모든 업무를 야간에만 봤다. 매일 밤 저녁을 먹고 나서 스노와 마주 앉아 노닥거리기를 즐겼다. 당시 마오의 부인은 허쯔전이었다. 허기가 질 때쯤이면 흑설탕에 버무린 살구와 기름에 볶은 고추를 내왔다. 어찌나 맛이 없고 매운지 혀와 코가 뭉그러지는 줄 알았다. 마오가 “후난 사람들은 매운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혁명가 기질이 다분하다.



이탈리아 사람들도 매운 것을 좋아한다. 고추를 먹는다”고 하자 스노가 말을 받았다. “무솔리니도 매운 것을 먹지만 전혀 혁명적이지 않다.” 마오는 스노에게 호감을 느꼈다. 아무 때고 찾아와도 좋다는 특권을 줬다.



마오는 별난 사람이었다. 자신에 관한 얘기를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전우들 얘기만 해댔다. “린뱌오는 어떻고, 보꾸는 어떻고, 주더와 펑더화이는 어쩌고 저쩌고….” 계속 이런 식이었다. 스노가 대놓고 물었다. “당신은 폐병 3기의 노인과 다를 게 없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 전 세계에 당신의 상황과 진면목을 알리고 싶다.” 마오는 “아직은 말할 기력이 있다. 우선 전선에 가봐라. 서부전선에 가면 홍군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의 진정한 모습을 보고 와서 얘기하자. 홍군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간다면 후회한다”며 딴청을 피웠다. “조사를 하지 않은 사람은 발언할 권리가 없다”는 천하의 명언을 남긴 사람다웠다.



홍군의 주력부대는 바오안에서 200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스노와 하템은 간쑤(甘肅)·닝샤(寧夏) 일대를 다니며 홍군을 접촉했다. 장정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들을 들었다. 이들은 떼지어 다니는 토비들이 아니었다. “예정보다 더 머물지 않았다면, 마오만 만나고 돌아왔다면, 홍군의 승리가 어디서 왔는지 나는 영원히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홍군은 패할 리 없다. 정치적으로 잘 다듬어진 군대였다.”



스노가 바오안으로 돌아오자 마오는 토굴의 등잔 밑에서 본격적인 공공외교에 들어갔다. 10여 차례에 걸쳐 소련 정부의 정책과 항일전쟁의 형세, 민족통일전선의 형성에 관한 것 외에 그동안 누구에게도 해 본적이 없었던 성장 과정과 결혼에 얽힌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원래의 꿈은 초등학교 교사였다. 공산당원이 되리라고는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인간의 의지보다 강하다. 현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결국 내 발로 공산당 조직에 참가했다.”



스노는 통역하는 사람이 하는 말을 영어로 받아 적어 통역에게 건넸다. 통역은 중국어로 옮겨 마오에게 수정을 요청했다. 마오의 검열이 끝나면 통역은 다시 영어로 옮겨 스노에게 전달했다.



여름이기도 했지만 방 안에는 온갖 벌레들이 들끓었다. 마오는 간간이 옷을 벗어 들고 나가 한바탕 훌훌 털곤 했다. 평생 목욕을 해본 사람 같지 않았지만 정교했다.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중국의 미래에 얼마나 엄청난 영향을 미칠지 잘 알고 있었다. (계속)





김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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