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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월간 전작권 전환 연기 극비 협상 ‘막전막후’

중앙일보 2010.06.28 01:49 종합 4면 지면보기
G20 정상회의 참석차 캐나다를 방문 중인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토론토 인 터컨티넨털 호텔에서 단독 정상회담을 한 뒤 악수하고 있다. 두 정상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기의 연기와 천안함 사건에 대한 긴밀한 공조를 합의했다. [토론토=조문규 기자]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간의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연기’ 합의는 올 2월부터 5개월 가까운 극비 협상의 산물이었다. 지난달 중순 전화통화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이 대통령에게 ‘미국 내에서도 민감한 이슈이니 먼저 알려지면 곤란하다’고 당부했을 만큼 협상은 철통 보안 속에 진행됐다. 한국의 요청을 미국이 받아들인 건 양국 정상 간 신뢰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게 정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전작권 전환 연기론은 지난해 5월 북한의 2차 핵실험으로 촉발됐고, 천안함 사건을 거치며 보수층의 지지를 얻었고, 27일 전격적인 양 정상의 합의로 결실을 봤다.


2010년 2월 오바마 움직여라 … 김태효 워싱턴에 특파 사전 작업
2010년 6월 게이츠 설득하라 … MB·김태영도 싱가포르 접촉

#1 2009년 11월 MB의 고민



지난해 11월 지인들과의 만남에서 전작권 문제가 화제에 오르자 이 대통령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안보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인데 아주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보수 쪽 사람들이 주로 연기를 주장하는데, 내 생각엔 형식적으로는 예정대로 한국이 찾아오는 방식으로 하면서 실질적으론 미국이 행사하는 그런 방식이 없을까 고민 중이다. 전작권을 국민들의 자존심과 결부시키는 시각이 있어 (다루기가) 까다롭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대통령의 생각은 전작권을 2012년에 환수하되, 여러 보완장치로 안보 공백을 막는 쪽이었다고 한다. 지난해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4월), 2차 핵실험(5월) 등으로 보수층의 전작권 전환 재검토 목소리가 커졌지만, 이 대통령에겐 민감한 문제였다.



무엇보다 국가 간 약속을 뒤집는 게 부담이었다. 2009년 6월 워싱턴 정상회담에서 확인된 미국 측의 속내는 부정적이었다. 당시 채택된 공동비전에서 전작권 문제는 ‘동맹 재조정을 위한 양측의 계획을 진행함에 있어 대한민국이 주된 역할을 담당하고, 미국은 군사적으로 이를 지원한다’라고만 표현됐다.



김성환 외교안보수석은 27일 브리핑에서 “당시 미래비전에 전작권 전환 날짜가 포함되지 않은 것은 전환 연기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당시 미국 정부의 기류는 ‘전작권 전환을 예정대로 진행시킨다’는 방향이었다.



전작권 전환을 국가 자존심과 묶어놓은 ‘노무현 전 대통령식 자주 프레임’을 깨는 것도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보수-진보 진영 간 논란거리를 제공하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다.



#2‘전작권 특사’ 김태효



하지만 집권 3년차를 맞은 2010년 이 대통령의 생각은 전환 연기를 관철하는 쪽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전작권 전환이 적정한 것인지 평가하고 보완하겠다’는 인수위 때 약속을 실현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우리의 방위능력을 아무리 따져봐도 2012년에 전작권을 전환받기는 물리적으로 어렵다”는 현실적인 필요성에다 ‘2012년은 한국과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 중국의 지도부가 바뀌는 격변기다. 한반도 정세가 불안해질 수 있어 적절치 않다’는 외교안보라인의 보고서가 이 대통령의 결심을 재촉했다고 한다. 올 2월 초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의 방미는 그런 점에서 협상의 신호탄이었고, 우리 정부의 공략 대상은 백악관이었다.



워싱턴을 방문한 김 비서관은 제프리 베이더 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 등 백악관 관계자들과 대면했다. 김 비서관은 ▶핵실험 등 한반도 안보환경의 변화 ▶경제위기 상황으로 인한 전작권 전환 준비의 어려움 등을 들며 미국 측에 ‘전환 연기’를 위한 운을 뗐다. 그 무렵 서울에선 ‘김 비서관이 남북 정상회담을 미국과 조율하기 위해 워싱턴에 갔을 것’이란 관측이 나돌았다. 하지만 사실 그는 미국에 파견된 ‘전작권 특사’였다.



귀국 뒤 김 비서관의 보고 내용은 ‘미국이 부담스러워하긴 해도 반응이 나쁘지 않다’는 쪽이었다고 한다. 물꼬가 트인 셈이다. 그러던 중 3월 26일 천안함 사건이 터졌다. 우리 정부에 전작권 전환 연기가 ‘선택’이 아닌 ‘필수’ 과목처럼 돼버렸다. 보수층의 요구가 다시 들끓었다. 4월 중순 워싱턴 핵안보 정상회의에 참석한 이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의 옆자리에서 전작권 얘기를 조심스럽게 화제에 올렸다. 청와대 관계자는 “구체적인 대화가 오가진 않았지만, 전환 연기에 오바마 대통령의 생각이 부정적이지 않다는 점을 확인한 소득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귀국 후 군 원로들과의 간담회에서 이 대통령은 “전환 시기를 늦추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며 전작권 전환에 대한 의지를 처음으로 드러냈다.



#3 ‘게이츠 장관을 설득하라’



천안함 사건으로 ‘11월 서울 정상회담에서 발표해도 된다’는 정부 내 신중론은 쑥 들어갔다. 관건은 전환 연기에 미온적이던 미 국방부를 설득하는 일이었다.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2007년 ‘전작권 2012년 전환’을 합의한 당사자다. 당연히 기존 합의를 유지하고 싶어했다. 우리 정부가 백악관을 공략 타깃으로 삼은 건 “양국 정상 간 신뢰를 바탕으로, 백악관을 먼저 움직여 미 국방부를 설득하자”는 전략에서다. 특히 6월 4~5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국제안보협의체 ‘샹그릴라 대화’는 그 분수령이었다. 이 회의에 초청받은 이 대통령과 김태영 국방부 장관,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이 모두 게이츠 장관과 따로 만나 설득전을 폈다. 정부 소식통은 “게이츠 장관도 ‘피할 수 없겠구나. 그냥 지나가기 어렵겠다’는 판단을 이때쯤 내린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해서 ‘6월 말 캐나다 G20 정상회의에서의 합의 발표’ 방침은 급물살을 탔다. 전환 시기에 대한 조율도 속도를 냈다. 정부 관계자는 “흥정하듯 1~2년 늦추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 우리 정부는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을 전제로) 임기가 끝나는 2016년 초나 2015년 말을 제시했고, 결국 2015년 말로 합의됐다”고 말했다. ‘2015년 12월 1일’이란 시기를 명시할지 말지는 회담 전날인 26일에야 결론이 났다고 한다. 5개월에 걸친 비밀 협상의 종지부였다.



토론토=서승욱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한반도 유사시 국군·미군의 작전 통제 권한

데프콘-3 이상 때 한미연합사령관이 행사



☞전시작전통제권은 …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Wartime Operational Control)은 한반도 유사시 한국군과 미군 증원군에 대해 작전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말한다. 한국은 우리 군에 대해 평상시에는 독자적으로 작전통제권을 행사하지만 방어준비태세인 데프콘-3 이상이 발령되면 한미연합사령관에게 전작권이 넘어가도록 돼 있다. 다만 수도권과 후방 방어 임무를 각각 맡는 수도방위사령부와 2군사령부 예하부대는 유사시에도 독자적 작전을 펼친다.



전작권 환수 논의는 1987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 후보가 ‘작전통제권 환수 및 용산기지 이전’을 선거 공약으로 내세우며 시작됐다. 이후 한·미 군사위원회회의(MCM) 등에서의 논의를 통해 94년 12월 1일 평시작전통제권이 한국으로 이양됐다.



노무현 정부 들어 ‘전작권=주권’이라는 인식에 따라 2006년 9월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전작권 전환에 대한 기본 원칙에 뜻을 모았다. 양측은 추가 논의를 거쳐 이듬해 2월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2012년 4월 17일 한국이 전작권을 환수키로 최종 합의했다.



한국은 6·25전쟁 발발 직후인 50년 7월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에게 작전 지휘권(Operational Command)을 넘겼다. 이렇게 이양된 작전지휘권은 54년 11월 17일 발효된 한·미 상호방위조약과 그 후 개정된 한·미 합의의사록에서 작전통제권이라는 용어로 대체됐다.



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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