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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이나 더 일하라고?” 발끈한 프랑스 노동계

중앙일보 2010.06.28 01:00 종합 16면 지면보기
프랑스 파리 15구에 살고 있는 국영철도회사(SNCF) 부장 제롬 그로피에(56)는 4년 뒤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의 해변도시로 이주할 계획을 가져 왔다. 3년 뒤 퇴직하는 간호사인 부인과 함께 생활비 싸고 환경 좋은 곳에서 오붓하게 살 희망에 부풀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부부가 받는 퇴직연금이 2500유로(375만원) 이상 될 것으로 예상해 왔다. 그로피에는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한 달에 2000유로 이상의 임대료를 받을 수 있고, 그 돈이면 포르투갈의 지방 도시에서 큰 집을 빌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년 60세 → 62세로 … 사르코지 연금개혁 200만 명 반대 시위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에서 24일(현지시간) 노동자들이 60세에서 62세로 정년을 늦추려는 프랑스 정부의 방침에 반발해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다. [마르세유 AP=연합뉴스]
이런 그로피에 부부의 노후 계획에 생각하지 못한 장애물이 나타났다. 프랑스 정부가 정년을 60세에서 62세로 연장키로 하고 법개정 작업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향후 8년 동안 단계적으로 조정해 2018년에는 정년을 현재보다 2년 늘린다는 계획이다. 법안은 올 가을 의회의 표결에 부쳐진다. 법안이 통과되면 그로피에 부부의 정년도 1년 정도 연기될 가능성이 크다. 그로피에는 “60세에 퇴직한다는 것은 국가와 내가 오래전에 맺은 계약”이라며 “이제 와서 일방적으로 바꾸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분개했다. 프랑스에는 그처럼 정년 연장에 반대하는 근로자가 많다. 노동계도 파업을 무기 삼아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다.



◆사르코지 “연금 폭탄 제거”=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사진)은 2007년 집권 뒤 여러 차례 연금제도 개혁을 주장했다. 지난해부터는 정년 연장 방안도 제시했다. 이 문제는 3월 지방의회 선거의 핵심 이슈였다. 집권당이 지방선거에서 패배하자 대통령의 측근 장관들도 정년 연장 계획을 철회하자고 건의했다. 하지만 사르코지 대통령은 강행 의사를 밝혔고, 최근 에릭 뵈트르 노동부 장관이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프랑스 정부가 정년 연장을 시도하는 건 심각한 재정적 압박 때문이다. 올해 말로 누적 연금 적자는 300억 유로(45조원)를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노령화’로 60세 이상 노인 인구가 전체의 20%를 이미 넘어선 데다 이 나라의 평균 연금 수령액이 평균 임금의 약 50%로 이웃의 독일(37%)이나 영국(30%)보다 많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65세)보다 5년이나 퇴직이 빠르기도 하다. 1982년 프랑수아 미테랑 당시 대통령은 ‘행복한 노년을 보장한다’는 취지로 정년을 5년 앞당겼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지금 연금 폭탄 제거에 나서지 않으면 수십 년 뒤에는 정부가 재정 파탄에 이를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노년층 인구 비율이 계속 증가해 정년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는 “정년 단축은 최악의 정책이었다”며 미테랑 전 대통령을 비판했다.



프랑스의 퇴직연금은 현 근로자가 내는 분담금에 의존한다. 1960년에는 근로자 네 명이 퇴직자 한 명을 부양하는 수준이었으나 급속한 고령화로 이제는 두 명이 한 명을 맡는 수준으로 변했다.



◆노동계 “연장 못한다”=이런 정년 연장 계획에 노동계는 격렬히 반발하고 있다. 24일 파리 등 프랑스 도시에서 200만 명이 시위를 벌였다.



철도·항공·교원 노조 등이 파업해 교통 차질이 빚어지고 상당수 학교가 휴교했다. 신문 인쇄노조도 참여해 25일자 일간지가 발행되지 않았다. 모두 정년 연장 반대를 위한 것이었다. 노동계는 정년 관련 법안이 국회에 상정되는 9월에 총파업을 벌일 계획이다. 2003년 프랑스 정부가 수령액 삭감을 골자로 한 연금 개혁을 시도했을 때에도 수개월간의 파업으로 대부분의 개혁 조치를 포기한 적이 있다. 프랑스에서는 40년 일한 퇴직자는 17년 동안 최종 급여의 90%까지 퇴직연금으로 받는다. 그 후엔 액수가 점차 줄어든다. 남성 퇴직자의 평균 연금액은 약 1500유로(225만원)다.



그랑제콜 등의 특수대와 사립대를 제외한 대부분의 대학이 수업료를 받지 않는 데다 학생들이 각종 지원금 혜택을 받아 부모의 교육비 부담이 많지 않다. 중산층 이상의 상당수는 개인연금까지 들고 있다. 은퇴 뒤 도시의 집을 세주고 교외로 나가면 생활이 오히려 풍족해진다. 퇴직자 중 100만 명 이상이 물가가 싼 해외에서 프랑스 연금을 받으며 산다. 프랑스 근로자들이 퇴직을 반기는 이유다.



파리=이상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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