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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은행들 과욕이 부른 부동산 PF 몸살

중앙일보 2010.06.28 00:12 경제 4면 지면보기
외환위기 이후 다시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은 우리의 금융업은 그동안 얼마나 발전했을까. 여러 잣대가 있겠지만, 우리 경제가 위기를 견디는 내성의 강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좋은 점수가 나오질 않는다.



경기회복을 옥죄고 있는 건설업을 보자. 과거엔 건설사가 은행에서 직접 돈을 빌려 사업을 했다. 은행은 기업의 차입 능력을 심사하고, 기업은 부채와 함께 취득자산을 장부에 올렸다. 시장은 기업의 실질 부채비율을 쉽게 읽어낼 수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건설업계는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시행사가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은행에서 돈을 빌린다. 사실상 특수목적회사(SPC)나 다름없는 개발업자가 은행엔 미덥지 않아 보이니, 은행은 시공사인 건설사에 채무보증을 요구한다.



그 결과 두 가지 현상이 벌어진다. 은행의 심사부서는 건설사 보증이 있으니 프로젝트의 사업성 심사나 사후 모니터링에 느슨해진다. 보증채무가 장부에 직접 잡히지 않는 건설사는 실질 부담에 비해 낮은 부채비율을 보여주게 된다. 꼼꼼하지 않은 시장은 현혹된다. 쉽게 자산 규모를 늘릴 수 있는 매력에 이끌려 펀드와 저축은행도 은행의 뒤를 따랐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부실해진 부동산 PF의 공사 중단으로 현금이 돌지 않으면서 그 여파는 건설사 부실로 이어진다. 요즘 중견 건설사들까지 속속 무너지고 있는 배경이다.



패스트 트랙이니, 대주단 협약이니 하는 긴급 처방전의 유효기간이 지나면서 금융당국이 구조조정의 칼을 들고 나섰지만 해법은 쉽지 않다. 부외부채와 시장채무화로 인해 건설사의 부채구조가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은행들은 PF를 선진 금융기법처럼 활용해 왔다. 기업이 들고 있는 매출채권을 유동화시켜 시장에 내다팔았다.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 메자닌 금융도 부추겼고, 투자금융이라는 이름으로 수수료 수입에 매진했다. 기업의 금융채무는 시장채무로 뒤바뀌었다.



금융회사 채권 비중을 줄여버리는 시장채무화는 책임 있는 채권단 구성을 전제로 하는 워크아웃의 작동을 어렵게 만든다. SPC별로 쪼개진 보증채무도 채무 조정 시 이해관계를 복잡하게 한다. 은행이 부실 채권비율을 낮추고자 PF대출을 매각하려 해도 건설사 보증가치 산정에 따르는 복잡한 산술이 발목을 잡는다.



기업들의 부채구조는 과도하게 복잡해졌다. 은행들이 순수한 헤지 수준을 넘어 투기성 파생상품까지 팔아 수수료를 올리는 사이 기업의 미확정 채무는 늘어났다. 이렇게 커진 부실 채권의 폭발력 앞에서 그간 닦아온 채무조정 기술은 효력을 잃고 말았다.



금융시장에서 은행의 역할은 중요하다. 저축 재원을 독식하고 각종 규제 차익을 누리는 은행들은 주주가치 극대화 이상의 책무가 있다. 성장의 근간이자 고용창출의 원천인 기업들이 건전한 채무구조를 지니도록 하고, 이를 시장이 투명하게 읽을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래야 할 은행들이 건전한 고객관리와는 괴리된 쏠림 현상에 몰려다니고, 경영관리 능력을 넘어서는 자산 확대에 매몰돼 궤도를 벗어난 것은 아닐까. 금융의 미덕은 결코 화려함이 아니다.



이성규 연합자산관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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