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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자기야, 이게 도자기야

중앙일보 2010.06.28 00:11 경제 21면 지면보기
‘도자기(세라믹)는 그릇이 아니다.’ 15~19일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디자인 마이애미/바젤’이 던진 메시지다.


스위스 바젤서 만난 세라믹 디자인의 오늘

유독 자기 제품이 많이 나왔던 이번 디자인 페어에서 도자기는 그릇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가구로, 오브제로, 램프로 다양하게 변신했다. 도자기가 금속공예의 장식품으로 응용되기도 했고, 그릇으로 나온 도자기 중엔 기능뿐 아니라 만져지는 촉감까지 살리는 신선한 시도도 있었다. “요즘 디자인에선 나무니 금속이니 도자기니 하는 전형적인 장르가 없어졌다. 모든 소재가 서로 융합되면서 이전과는 다른 디자인, 다른 쓰임새로 발전하고 있다.” ‘디자인 마이애미/바젤’의 디렉터 알렉샌드라 커닝햄의 말이다.



20세기엔 금속·플라스틱 등의 소재가 나무 소재의 영역이었던 가구디자인으로 정착했다면, 이젠 도자기가 그 자리로 박차고 들어가려는 것으로 보였다. 전 세계 최고급 디자인 작품만 모여든다는 ‘디자인 마이애미/바젤’에선 이미 다양하고 새로운 도자기의 실험이 진행되고 있었다.



바젤=양선희 기자

사진=갤러리 서미, R20th 갤러리(미국 뉴욕), 갤러리 안네소피듀발(프랑스 파리), 갤러리 피에르 마리 지라드(벨기에 브뤼셀).



도자기는 가구다



이헌정의 도자기 의자.
지난해 ‘디자인 마이애미/바젤’에선 할리우드 스타 브래드 피트가 한국 도예작가 이헌정의 콘크리트 테이블을 사서 화제가 됐다. 세라믹 가구는 이렇게 한국의 작가가 독창적으로 개척해낸 분야다. 이번에도 작가 이헌정은 도자기로 구워낸 다양한 정원용 의자들과 램프 작품을 ‘갤러리 서미’를 통해 내놓았다. 분청사기의 질감에다 다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색감으로 소재 자체는 친근했다. 그리고 단지 형태를 그릇이 아닌 의자로 바꾼 것뿐이다. 한데 이런 시도는 외국인 관람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갤러리 서미 관계자는 “외국인들이 처음엔 이게 돌이냐고 묻는다. 그래서 도자기라고 하면 모두 깜짝 놀란다”며 “프랑스의 한 컬렉터가 의자를 샀다”고 말했다. 이번 디자인 페어에 참가한 다른 나라 갤러리스트들도 이헌정의 작품을 ‘가장 창의적인 작품’ 중 하나로 꼽았다. 가장 한국적인 소재와 색감에 현대적 디자인을 입힌 것만으로도 이미 세계는 놀라고 있었다.



도자기는 램프다



우리의 매화도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모양의 램프다. 나뭇가지는 동으로, 꽃은 사기로 만들었다. 데이비드 와이즈먼(미국) 작품


2기데트 카르보넬(프랑스)의 빈티지 램프.
미국 뉴욕의 R20th 센추리 갤러리는 우리의 매화도에 그려진 ‘나뭇가지 위에 핀 꽃’과 같은 모양을 램프로, 오브제로 만든 작품을 들고 나왔다. 미국의 20대 젊은 작가 데이비드 와이즈먼의 작품이다. 와이즈먼은 원래 금속공예가라고 했다. 그는 동으로 만든 가지 위에 흰색 사기로 꽃잎을 만들어 붙이고 그 가운데 전구를 박아 포슬린 브랜치(사기 나뭇가지)를 만들었다. 와이즈먼의 작품은 이번 디자인 페어에서 ‘힘을 뺀 자기 작품’으로 가장 눈길을 끌었다. ‘포슬린 브랜치’는 램프뿐 아니라 식탁장식용 오브제로 나오기도 했다. 또 동으로 새장을 만들고 그 안에 도자기 새를 넣어두는 식으로 동과 자기를 자유자재로 섞어서 작품을 만들었다. R20th 센추리 갤러리 대표 에반 스나이더만은 “동의 단단하고 차가운 느낌에 따뜻한 감성을 불어넣는 도자기 장식은 의외로 놀라운 시너지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파리의 갤러리 안네 소피 듀발은 도자기로 만든 스탠드를 들고 나왔다. 프랑스 도예가 기데트 카르보넬의 1950년 빈티지 작품이다. 서구의 디자이너들은 도자기를 그릇이 아닌 다양한 생활용품에 응용해왔다는 것이다.



촉감도 도자기의 한 부분이다



알랭 베르니(벨기에)의 사발.
벨기에 브뤼셀의 갤러리 피에르 마리 지라드는 이번 디자인 페어 갤러리 중 가장 다양한 도자기 오브제와 그릇을 내놓았다. 보기엔 평범하고 만져봐야 진가를 알 수 있는 독특한 도자기의 세계를 보여줬다. 모양은 호리병이나 화병이지만 그릇의 주입구를 막아놓아 전혀 그릇 기능을 하지 못하는, 장식용 오브제부터 평범한 화병, 캔디볼 등의 작품을 들고 나왔다. 실제로 장식용 도자기의 경우 입구가 뚫려 있으면 각종 이물질이 들어가서 오히려 관리하기 어렵다는 점을 간파한 역발상의 작품이다. 또 작가 알랭 베르니의 평범한 그릇들은 손으로 만져보면 평범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작품들은 매끄럽지 않고 울퉁불퉁하다.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울퉁불퉁하다. 만지고 있다 보면 손에서 내려놓기 싫은 친근함이 느껴진다. 이 갤러리 대표 피에르 마리 지라드는 “그릇이란 손에 들고 사용하는 것”이라며 “작가는 그릇을 빚어놓고 수없이 손가락으로 눌러가며 사람에게 친근한 손가락의 맛을 냈다. 그릇이야말로 촉감을 만족시켜야 하는 장르”라고 말했다.



TIP ‘디자인 마이애미/바젤’은



세계 3대 예술 견본시로 꼽히는 마이애미 바젤 아트페어 기간 중 함께 열리는 디자인 견본시다. 화랑들이 참여해 회화나 조각 등의 순수 예술작품을 팔고사는 아트페어처럼 디자인 갤러리들이 모여 가구나 장식품 등 디자인 작품을 거래한다. 올해 5년째로 현재 지구상에서 열리는 디자인 페어 중 최고급 작품을 거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여름 시즌엔 바젤에서, 겨울 시즌엔 마이애미에서 디자인페어를 연다. 전 세계에서 온 30여 개의 갤러리가 참여하고 있으며, 한국에선 갤러리 서미가 유일하게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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