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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채문식 전 국회의장 별세

중앙일보 2010.06.28 00:09 종합 32면 지면보기
채문식(사진) 전 국회의장이 26일 별세했다. 85세.


우익 학생운동가에서 국회의장까지

1925년 경북 문경 출생으로 중앙고등보통학교(중앙고의 전신)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채 전 의장의 인생은 한국 현대사의 굴절이 그대로 투영됐다. 고인은 해방 직후 우익 학생운동을 주도했고, 24세 땐 고향 문경에서 아버지뻘 면장들을 거느린 군수가 됐다.



법 조문이나 관례에 구애받지 않는 파격 행정으로 ‘명 군수’ 소리를 들었고, 내무부 재정과장까지 지냈다. 그 뒤 언론계와 학계에 종사하다 71년 야당인 신민당 의원으로 정치권에 발을 디뎠다. 신민당에서 3선도 하고 대변인도 지냈지만 그는 주류가 아니었다. 박정희 정권과 각을 세우기보다는 박 전 대통령의 업적을 이해하는 쪽이었기 때문이다.



8~10대 야당 의원을 했던 고인은 11~13대 때는 여당 의원으로 활약했다. 11대 총선에서 민정당 의원이 됐으며, 81년 국회부의장을 거쳐 83년 4선 의원으로 국회의장에 올랐다. 불과 4선으로 국회의장을 한 건 2006년 임채정 의장 때까지 23년간 깨지지 않았던 기록이다. 그는 6공 말기인 92년 차기 대선을 앞두고 박태준·이종찬 의원 등과 함께 민자당 김영삼(YS) 최고위원에 맞서다 13대 의원을 끝으로 정계에서 물러났다. 그 뒤 고려중앙학원 이사장, 헌정회 회장을 지내며 정계원로로서 조용히 말년을 보냈다.



고향·대학 후배로 11~12대 의원을 함께 한 한나라당 홍사덕 의원은 고인에 대해 “원만한 성격으로 여야가 의견이 갈릴 때면 적절한 유머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능력을 갖춘 분“이라고 회고했다.



홍 의원은 ”초선 시절 방위비 삭감을 주장해 고초를 겪을 뻔 했는데 채 의장이 ‘야당 초선이 그럴 수 있다’며 두둔해 탈없이 넘어갔다. 당시 여당에 계셨지만 야당을 잘 이해해줬다“고 말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 영결식은 29일 오전 국회장으로 거행된다. 장지는 대전국립묘지. 유족은 경철(KAIST 교수)·경원·경호(우영유압 대표)·경탁(사업 )씨 등 3남 1녀. 02-2072-2091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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