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뉴스 클립] 뉴스 인 뉴스 <116> 미국의 정보기관

중앙일보 2010.06.28 00:08 경제 18면 지면보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6월 5일(현지시간) 제임스 클래퍼(69) 국방부 정보담당 차관을 국가정보국장(Director of National Intelligence, DNI)에 지명했다. DNI는 미국의 16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자리다. 일명 ‘정보 차르(Tsar, 황제)’라고 불린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은밀한 조직’ 16곳을 통솔하는 일이 쉬울 리 없다. 전임 데니스 블레어 국장은 기관들 간의 업무 조율에 실패했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정보 차르조차 함부로 못하는 ‘막강 권력’ 미 정보기관들은 과연 어떤 곳인지 살짝 들여다 봤다.


20만 요원이 움직인다, 1년에 750억 달러 쓰는 미국의 ‘눈과 귀’ 16개

김한별 기자



마약에서 핵무기까지 분야 나눠 정보 수집



미국 정보기관의 대명사는 첩보 드라마·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중앙정보국(CIA)이다. 하지만 미국에 CIA 외에도 정보기관이 15곳이나 더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국무·재무·에너지부 산하에 각 1곳, 국토안보·법무부 산하에 각 2곳, 그리고 국방부 산하에 8곳이 있다. <그래픽 참조>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CIA가 미국의 해외 정보 일반을 책임진다면, 다른 기관들은 소속 부처별로 담당 업무가 특화돼 있다. 법무부 마약청(DEA)은 마약, 에너지부 정보방첩실(IN)은 핵무기, 재무부 테러·금융정보실(TFI)은 불량국가·테러단체의 재무상태와 관련된 정보를 각각 전문적으로 수집한다.



국방부 산하 정보기관도 크게 3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국가안보국(NSA)·국가정찰실(NRO)·국립지구공간정보국(NGA) 같이 이름 앞에 ‘국가’가 붙는 기구들은 국방부 소속이긴 하지만, 국가 전체의 정보기관 역할을 한다. NSA는 ‘에셜론’이란 세계 최대 감청 시스템을 운용하는 ‘미국의 귀’, NRO는 정보위성·정찰기 운용을 총괄하는 ‘미국의 눈’이다. 반면 국방정보국(DIA)은 국방부, 육·해·공군 및 해병대 소속 기관들은 각 군을 위한 ‘맞춤 정보’를 제공한다. ‘국방 정보통’인 클래퍼 DNI 지명자는 국방부 정보담당 차관을 맡기 전 DIA(1991~95년)·NGA(2001~06년) 국장을 지냈다.



9·11 충격 뒤 16개 기관 총괄하는 DNI 탄생



16개 정보 기관은 정보공동체(Intelligence Community, IC)라고 불린다. 1947년 CIA 창설과 함께 정립된 개념이다. 그 존재 근거와 임무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시절인 1981년 대통령령을 통해 명문화됐다. CIA국장이 IC를 통솔하는 중앙정보국장(DCI)을 겸했다.



IC 전체의 정확한 조직과 예산 규모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있다. 블레어가 지난해 국가정보전략 보고서를 공개하며 “20만 명의 요원과 750억 달러(약 89조원)의 돈을 움직이는 청사진”이라고 말한 걸 토대로 어림짐작을 할 뿐이다. 참고로 한국의 해·공군을 합친 병력이 13만3000명(2008 국방백서 기준), 전체 국방예산이 약 29조6000억원(2010년 기준)이다.



IC를 통솔하는 DNI 자리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외부 세력에 의해 본토를 공격 당한 2001년 9·11테러를 계기로 만들어졌다. 미 의회는 IC 소속 기관들이 엄청난 규모의 인원·예산을 사용하고도 9·11 테러를 막지 못한 건 서로 협력하지 않고 ‘각개 약진’한 탓이라고 비판했다. 물론 당시에도 명목상 DCI가 있긴 했다. 하지만 CIA 국장이 겸직했기 때문에 다른 명령 계통의 기관을 통솔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에 따라 미 의회 9·11위원회는 2004년 7월 “CIA를 비롯한 각 정보기관의 예산·인사를 총괄하는 각료급 직위를 행정부 내에 두라”고 권고했다. 기존 정보기관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확실한 실권을 가진, 독립 직위를 만들라는 것이었다. 민주·공화 양당이 이 권고를 받아들여 만들어진 게 DNI 체제다. 의회는 IC의 ‘맏형’인 CIA 국장을 포함해 모든 IC 구성원들이 DNI의 지휘·감독을 받도록 했다. 이 같은 권한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주요 정보기관장 임면 시 DNI의 동의·의견을 받도록 법에 못 박았다. IC 전체의 통합 예산을 배분할 수 있는 권한도 줬다. ‘정보 차르’는 그렇게 탄생했다.



CIA 등과 자존심 싸움, 삐걱댄 DNI 체제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은 외교관 출신인 존 네그로폰테를 초대 DNI로 임명했다. 그는 정보기관에서 일한 경력이 없으면서도 베트남·이라크 등에서 근무할 때 ‘공작에 능한 외교관’이란 평을 들었다. 부시는 그에게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주는 방법으로 강력한 DNI 체제를 구축했다. CIA가 반발하자 포터 고스 국장을 전격 경질하고 후임에 네그로폰테의 오른팔인 마이클 헤이든을 임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가고 정권이 바뀌면서 DNI 체제는 삐걱대기 시작했다. 여전히 ‘조직 간의 벽’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됐다. IC 16개 기관 가운데 CIA를 제외한 15개가 정부 부처 소속이다. DNI가 인사권을 보장받았다지만, 직접 좌지우지할 수 있는 곳은 그중 7곳뿐이다. 장관이 예하 정보기관장을 임명할 때 DNI의 동의를 받도록 돼 있는 곳들이다. 반면 6곳은 상의만 하면 된다. 독립 정보기관으로 편재상 유일하게 DNI의 직접 지휘를 받도록 돼있는 CIA 국장 인사는 대통령 몫이다. FBI(연방수사국)·DEA도 마찬가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DNI는 ‘옥상옥’ 혹은 ‘얼굴마담’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



특히 국방부 산하 정보기관들은 사실상 ‘치외 법권’ 지대다. 다른 IC 구성원들과 달리 국방부 기관들에 대해서는 DNI에게 직접적인 업무지시권이 없다. 예산도 마찬가지다. 다른 기관 예산은 직접 배분하지만, 국방정보 예산은 총액만 정한다. 기관별 예산 배정권은 사실상 국방부 장관이 행사하고 있다.



지휘·감독 기관으로서 ‘머리’만 있고 ‘손발’이 없는 것도 문제다. DNI 직할 조직은 국가정보위원회(NIC) 등 분석·참모부서뿐이다. 직접 정보를 수집·생산하는 실행(operation) 조직이 없다. 그러다 보니 최고의 휴민트(HUMINT, 인적 정보) 기관인 CIA와의 ‘파워 게임’에서 계속 밀렸다. 블레어는 이 때문에 지난해 각국 대사관에 국가정보국 요원들을 직접 파견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도 했지만, 끝내 CIA의 벽을 넘지 못했다. 두 기관이 자존심 싸움을 벌이자 오바마는 “(해외 첩보 분야에 있어서) CIA의 독점적 우위를 인정한다”고 CIA의 손을 들어줬다. 블레어의 야심 찬 계획은 물거품이 됐고, IC 내에서 DNI 위상은 더욱 추락했다.



갈 길 험난한 새 ‘정보 차르’ 제임스 클래퍼



새 DNI로 지명된 제임스 클래퍼가 제 몫을 하기 위해선 이 같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걸림돌이 많다. 무엇보다 그의 ‘출신 성분’이 문제다. 클리퍼는 전임 블레어에 이어 군 장성 출신이다. 아무래도 ‘친국방부’적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그는 국방부 정보기관에서 잔뼈가 굵었다. NGA 국장 시절이던 2004년엔 도널드 럼즈펠드 당시 국방장관에게 국방 정보기관에 대한 DNI 감독권을 축소해달라고 로비를 하기도 했다. DNI를 중심으로 IC를 새롭게 개혁해야 한다고 믿는 이들로서는 ‘부적격 인사’일 수밖에 없다.



백악관과의 관계 개선도 숙제다. 오바마의 절대적 신임을 받고 있는 백악관의 ‘정보통’ 존 브레넌 대테러담당보좌관은 25년간 CIA에서 일했다. 2004년 IC 개혁 조치 이래 갈수록 영향력이 줄고 있는 ‘친정’ CIA에 대해 동정적이다. 그는 지난해 크리스마스 여객기 테러 미수 사건 후 각 정보 기관들의 대응 방식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보고서를 만들어 오바마에게 보고했다. 각 기관들 사이의 업무 조율에 실패한 DNI의 무능도 지적했다. 결국 블레어는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브레넌이 사실상 DNI의 역할을 하고 있다”며 “클래퍼가 DNI로 일을 제대로 하려면 브레넌과 강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도했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