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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로 보는 세상] 憤敗

중앙일보 2010.06.28 00:02 종합 33면 지면보기
승부를 가리는 마당에서 남에게 지는 게 패배(敗北)다. 거기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모든 승부에서 지는 것이 전패(全敗)겠고, 아예 겨룸이라고 얘기할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게 완패(完敗)다. 경기 결과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참혹(慘酷)하다면, 그런 패배는 참패(慘敗)다. 요즘에는 스코어를 한 점도 얻지 못한 채 무릎 꿇는 것을 영패(零敗)라고 한다.



26일 16강전에서 겨룬 우루과이와의 경기 결과는 한국에는 ‘아까운 패배’, 석패(惜敗)에 해당할 것이다. 조금 더 부연하자면, 아깝게 져서 마음속으로 못마땅함이 가득 배어 있는 분패(憤敗)일 것이다.



‘분’이라는 글자는 내 마음의 결기가 어떤 결과를 지켜보다가 못마땅함 때문에 일어나기 시작하는 경우를 일컫는다. 그것이 쌓이면 울분(鬱憤)이 되는 것인데, 분노(憤怒) 등의 단어로 전화(轉化)하면서 흔히는 ‘노여움’의 동의어(同義語)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 글자를 ‘노여움’만으로 풀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공자(孔子)가 스스로를 평가한 대목이 있다. ‘발분망식(發憤忘食)’이다. ‘열심히 공부하면서 끼니 때우는 것을 잊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발분(發憤)은 ‘분을 내다’다. 그 분이라는 것이 문제인데, 뭔가 더 이루고자 애를 쓰면서 마음을 다잡는 행위다. 공자의 『논어(論語)』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열어주지 못하고, 애태우지 않으면 말해주지 않는다(不憤不啓, 不悱不發)”는 말이다.



배우려는 자가 뜻한 바를 세워 열심히 나서지 않으면 가르치는 사람으로서는 그를 깨우칠 방도가 없다는 뜻이다. 아울러 스스로 표현하기 위해 이리저리 궁리를 하지(悱) 않으면 말을 해줘도 알아먹지 못한다는 얘기다. 자신을 더 나은 상태로 이끌어 간다는 뜻의 ‘계발(啓發)’이라는 단어는 예서 유래했다.



결국 스스로 몸이 달아 열심히 자신의 수준을 끌어올리려 애쓰는 것이 분이다. 그래서 분발(憤發)이라는 조어(造語)가 가능하며, 의지를 내서 강해지려 힘쓰는 모습을 ‘발분도강(發憤圖强)’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대(對)우루과이전은 그런 점에서 분패다. 최대한 노력했으나 결국 지고 만 것이다. 그러나 그 분함이 더 큰 계발로 이어질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위안을 받을 수 있다.



유광종 중국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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