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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고문의 망령

중앙일보 2010.06.25 20:00 종합 39면 지면보기
‘고문을 당해보면/인간이 인간이 아님을 알게 된다/고문하는 자도/고문당하는 자도/깊은 밤 지하 2층 그 방에서’(고은의 시 ‘고문’ 전문)



고대에 고문이 횡행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노예도 여성도 외국인도 하층민도 ‘인간’이 아니었으니 고문쯤 한들 뭐가 대수였으랴. 로마의 티베리우스 황제는 죄수들에게 엄청난 양의 포도주를 마시게 하고는 손발을 악기의 현으로 묶는 고문을 직접 개발하기도 했다. 소변을 보고 싶어 몸부림칠 때마다 살 속으로 현이 파고들도록 한 것이다.



스파르타의 폭군 나비스는 ‘인간’인 시민들을 대상으로도 고문을 일삼았다. 거액을 내놓으라는 그의 말을 듣지 않으면 “내 아내 아게파는 당신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며 화려하게 차려입은 여성 인형 속에 온통 철침이 숨어있는 고문 기구를 들이댔다.



모든 사람이 천부인권을 보장받는 현대에도 고문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경우가 있다. 이른바 ‘시한폭탄 이론’이다. 시한폭탄이 터지기 전에 찾아내려면 폭탄을 설치한 범인을 고문해서라도 자백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다.



1956년 11월 알제리의 수도 알제의 지방장관 폴 타이트겐이 이런 상황에 부닥쳤다. 타이트겐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숱한 고문을 이겨낸 영웅이었다. 그런 그에게 경찰 책임자가 고문 허가를 내 달라고 요청했다. 알제리의 독립운동가가 폭탄을 숨겨놓은 장소를 자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천 명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었다.



그러나 타이트겐은 경찰의 요청을 거절했다. “한 번 고문하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다”는 이유였다.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뮈는 “고문은 30개의 폭탄을 발견함으로써 사람들의 생명을 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문은 또 다른 50명의 테러리스트들을 만들어 더 많은 무고한 죽음을 야기할 것”이라고 했다.(브라이언 이니스, 『고문의 역사』)



지난 23일 서울 양천경찰서 경찰관들이 피의자들에게 가혹행위를 한 혐의로 구속됐다.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같은 현대사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피의자에게 자백을 받으려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프랑스의 문호 볼테르가 이미 이렇게 쏘아붙이지 않았던가.



“법이 유죄라고 판결하지 않았으면 아직 그들의 죄는 불확실한 것인데, 당신은 그들이 유죄로 확정되었을 때 받게 될 고통보다 훨씬 더 끔찍한 형벌을 가하고 있다.”



구희령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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