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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학생은 탄약 나르고 장병들은 백병전 치르고 …

중앙일보 2010.06.25 00:58 종합 8면 지면보기
“기러기, 여기는 갈매기! 강 건너 전방에 이동 중인 적 보병 1개 대대, 신속히 사격 바람.”


6·25 첫 국군 승리 ‘춘천대첩’ 재현

소양강 남쪽 진지에서 전황을 살피던 소대장이 적을 발견하고 다급히 포 사격을 요청했다. 곧이어 “쾅, 쾅” 하는 폭음과 함께 아군의 화포가 발사됐다. 포탄은 강 건너 제방 인근 적진에 떨어졌다. 붉은색 기를 든 인민군 10여 명이 쓰러졌다. 화포는 5초 간격으로 잇따라 발사됐다. 그때마다 인민군이 고꾸라졌다.



24일 강원도 소양강변에서 열린 춘천대첩 전투 재현 행사 리허설에서 국군과 학생들이 인민군을 물리친 뒤 태극기를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강원도민일보 제공]
24일 오전 강원도 춘천시 동면 가래울 소양강변. 6·25 전쟁 60주년을 맞아 춘천대첩 전투를 재현하는 행사의 리허설이 진행됐다. 전투 재현은 병력·장비 열세에도 불구하고 군인과 시민이 힘을 합쳐 춘천을 3일 동안 지켜낸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기획됐다. 춘천대첩은 6·25 전쟁 최초의 국군 승리이자 아군이 한강선을 방어하고 미군이 증원될 수 있도록 시간을 벌게 해줬다.



재현된 전투는 1950년 6월 27일 상황으로, 소양강을 사이에 두고 100여 명의 한국군과 230여 명의 인민군이 대치한 것으로 시작됐다. 당시 인민군은 2개 사단 3만8000명에 전차 30대, 화포 180문의 장비를 보유했다. 국군은 6사단 병력 9000명에 전차는 1대도 없었고 12문의 화포가 전부였다. 인민군복을 입은 적군이 강 건너 신북읍 제방 뒤에 숨어 있다 소양강을 향해 돌진했다. 붉은 깃발과 인공기가 나부꼈다. 인민군 일부는 3대의 배를 이용해 소양강을 건너기 시작했고, 6사단 16포병대대의 105㎜ 화포 12문이 포탄을 쏟아냈다. 강가 참호에서 적의 동태를 살피던 6사단 병사의 기관총과 소총도 불을 뿜었다. 포탄이 떨어진 소양강에는 잇따라 물기둥이 30m 높이로 치솟았고, 많은 적들이 수장됐다.



그러나 포성은 얼마 지나지 않아 멈췄다. 포탄이 바닥났기 때문이다. 이때 춘천사범학교와 춘천농공고 학생, 제사공장 여성 근로자가 리어카와 지게 등으로 탄약을 날라왔다. 탄약 5200발은 강북 우두동에 있던 것으로 적의 수중에 들어갈까 우려해 25일 춘천사범학교(현 춘천교대)에 옮겨 놓았던 것이다. 탄약을 공급받은 한국군은 사기가 충천했고 강을 건넌 인민군을 백병전으로 물리쳤다. 결국 적군은 퇴각했고, 국군과 학생·시민은 얼싸 안고 “만세”를 외쳤다. 춘천대첩 재현 리허설은 30분 만에 끝났다.



당시 6사단 7연대 2대대 소속 일등병으로 춘천대첩에 참전한 안원흥(80·춘천시 교동)씨는 “춘천대첩은 군인과 민간이 혼연일체가 돼 사흘 동안 싸워 북한 작전에 차질을 가져온 전투”라며 “너나 할 것이 없이 국가가 왜 지탱할 수 있었는지를 알게 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춘천=이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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