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손용석의 Wine&] 만년설과 용암이 베푼 축복, 미국 워싱턴주 와인

중앙일보 2010.06.25 00:17 경제 15면 지면보기
“이러다 미국이 왕따 되는 거 아닌가요? 한국이 다른 나라와 줄줄이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고 있는데 미국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blog.joins.com/soncine

얼마 전 미국 워싱턴주 현지에서 만난 고든 브러더스의 제프 고든 사장의 하소연이다. 고든 브러더스는 미국 워싱턴주의 컬럼비아밸리에서 와인을 생산하는 회사다. 고든 사장은 “FTA를 통해 우리 와인의 가격이 내려간다면 한국 시장에서 칠레 와인과도 경쟁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워싱턴주는 한국인들에게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DC와 헷갈릴 정도로 인지도가 낮지만 와인 애호가들에겐 친숙한 곳이다. 캘리포니아와 함께 미국 와인 산업의 쌍두마차로, 가격에 비해 뛰어난 와인의 산지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워싱턴주 현지에서 만난 와인 생산자들은 와인 가격을 낮출 수 있는 한·미 FTA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워싱턴주 최대 와인 양조장인 컬럼비아 크레스트에서 만난 와인 메이커 후안 무뇨조카는 “우리의 철학은 좋은 와인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는 것인데 한국에선 너무 비싸게 팔리고 있더라”고 말했다.



컬럼비아 크레스트는 미국 5대 와인 생산자 중 하나인 생미셸이 운영하는 양조장이다. 이 양조장에서 만들어지는 와인은 워싱턴주 전체 와인 생산량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포도밭을 제외한 양조장 면적만 40에이커로 축구장 17개 넓이에 달할 정도다. 와인을 대량 생산하지만 품질에 대한 명성도 높다. 대표 와인인 ‘컬럼비아 크레스트 그랜드 이스테이트’(사진)의 경우 미국 와인 스펙테이터를 비롯한 각종 와인 평가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현지 가격은 9달러50센트에 불과하다. 후안 무뇨조카는 “와인 대부분을 7만 개 오크통을 통해 일일이 숙성시키고 있다”며 “설립된 지 26년이 됐지만 양조 방식이나 철학이 바뀐 적은 한 번도 없다”고 강조했다.



워싱턴주가 와인 산지로 각광받는 것은 남다른 기후가 빚은 다양한 토양 덕택이다. 만년설로 뒤덮인 캐스케이드 산맥부터 남미를 연상시키는 광활한 초원, 거대한 컬럼비아 강을 낀 용암지대에 이르기까지 와인 재배의 폭이 넓다. 워싱턴주에선 샤르도네·리슬링·메를로·카베르네 소비뇽 등 주요 품종은 물론 아르헨티나에서 유명한 말벡, 이탈리아의 대표 품종 산지오베제도 재배된다. 고든 사장은 “전 세계 기후대를 사바나·몬순·해양성 등 7가지로 구분할 때 워싱턴주에선 이 중 6가지를 만날 수 있다”며 “다양한 기후를 통해 수많은 포도 품종을 시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급 와인의 필수조건인 큰 일교차도 특징이다. 여름철 한낮엔 35도를 오르내리지만 저녁이 되면 15도로 기온이 뚝 떨어진다. 메마르고 추운 겨울을 통해 각종 포도병균도 살아남지 못한다. 주한 미국대사관 농업무역관의 오상용 상무관은 “워싱턴주의 경우 아직은 역사가 짧지만 와인 생산에 적합한 기후와 토양, 그리고 와인 생산자들의 실험정신을 통해 갈수록 좋은 와인들이 생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손용석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