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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이익이냐, 인근 주유소 보호냐

중앙일보 2010.06.25 00:17 경제 1면 지면보기
이마트 경북 구미점의 셀프주유소를 찾은 소비자들이 차에 기름을 넣고 있다. 대형마트들은 전국 9곳의 점포에서 주유소를 운영 중이다. [신세계 이마트 제공]
경북 구미시 인의동에 사는 주부 김은경(30)씨 부부는 주말마다 6㎞쯤 떨어진 광평동 이마트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다.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근처 주유소보다 휘발유 값이 L당 70~80원가량 싸기 때문이다. 김씨는 “주말 오후엔 차량이 밀려 기름을 넣으려면 10분 넘게 기다려야 한다”며 “그래서 밤 10시 이후 손님이 적은 시간대를 주로 이용한다”고 말했다.


대형마트 주유소 영업시간 단축 권고 논란

그런데 앞으론 밤 10~12시, 오전 6~11시에는 이마트 주유소를 이용할 수 없을 전망이다. 중소기업청은 사업조정심의회를 열고, 경북 구미·전북 군산 이마트 주유소 2곳을 상대로 한국주유소협회가 지난해 8월 제기한 사업조정 신청에 대해 이같이 영업시간을 단축하라는 권고 결정을 내렸다고 24일 밝혔다.



정부 관계자와 민간위원으로 구성된 사업조정 심의위원들은 이마트 주유소 2곳이 인근 자영 주유소에 영업상 피해를 주고 있다고 판단해 영업시간을 앞으로 3년간 구미 이마트 주유소는 7시간, 군산 이마트 주유소는 6시간 줄이도록 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들 주유소는 그동안 오전 6시부터 자정까지 하루 18시간씩 영업을 해왔다. 대형 마트 주유소와 일반 주유소 간 분쟁에서 강제조정 결정이 내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당초 주유소협회가 제기한 대형 마트 주유소의 셀프주유기 25% 감축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중기청은 다음 주중 이 권고안을 토대로 사업조정 권고를 이마트 주유소 측에 통보하기로 했다. 두 주유소가 권고사항을 지키지 않으면 중기청은 이행명령을 내릴 방침인데, 이를 어길 경우 1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말이 권고이지, 사실은 강제력이 있는 것이다.



◆다른 대형 마트 주유소도 영향=현재 대형 마트 주유소를 상대로 접수된 사업조정 신청은 경기도 용인 수지 롯데마트 주유소 등 모두 4건이다. 따라서 이번 결정은 나머지 조정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중기청 관계자는 “당사자 간 자율조정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는 방안을 사안별로 모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2008년 이마트가 경기도 용인 구성점에 처음 주유소를 연 이래 현재 전국 9곳에 대형 마트 주유소가 있다. 이마트가 5곳을, 롯데마트와 농협하나로클럽이 각각 2곳을 운영하고 있는데, 업체마다 3~7개씩 추가로 주유소를 신설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번 권고 결정에 대해 대형 마트들은 반발하고 있다. 이마트 관계자는 “주유소는 고객에게 저렴한 값에 기름을 공급하자는 취지에서 만든 것”이라며 “정부가 기름값을 낮추기 위한 방편으로 대형 마트에 주유소 설립을 권장했다가 이제 와서 이런 결정을 내리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주유소 사업은 이미 SK·GS 등 대기업이 진출해 있는 분야인 만큼 중소기업 보호를 위한 사업조정신청 제도의 취지에도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롯데마트 측도 “정부가 서민 물가 안정을 위한 대책으로 내놓은 유통업체의 주유소 운영안과 일부 지자체 고시나 중기청의 규제안이 서로 달라 혼선을 빚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주유소 업계도 불만이 많다. 주유소협회 관계자는 “대형 마트 주유소가 이른 아침과 심야시간대 영업시간을 줄여봐야 자영 주유소엔 실질적인 혜택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구미만 해도 대형 마트 반경 5~10㎞ 안에 있던 자영 주유소는 매출이 40% 넘게 줄었다. 시내에만 문을 닫은 주유소가 3~4곳에 이른다”고 말했다.



◆“소비자만 불편”=한국석유공사의 유가정보서비스인 오피넷(www.opinet.co.kr)에 따르면 24일 오후 5시 기준 구미 시내 휘발유 평균가격은 L당 1722원이었다. 이마트 구미점의 휘발유 값(L당 1649원)은 73원 저렴하다. 군산에서도 이마트 휘발유는 L당 73원이 싸다. 가격이 싼 주유소의 영업시간을 단축하면 소비자만 손해를 보는 게 아니냐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대형 마트 주유소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본격화됐다. 2008년 3월 물가가 급등하자 대형 마트 주유소 설치를 비롯한 물가안정 대책을 내놓았던 것. 기존 주유소와 가격 경쟁을 벌이면 기름값이 떨어질 것이란 게 정부의 계산이었다. 지식경제부 유연백 석유산업과장은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라도 대형 마트 주유소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A정유사 관계자는 “중소 자영업자의 생존권 보호 차원이라니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경쟁을 해치면서까지 영업시간을 규제하는 것은 문제”라며 “이럴 바에는 차라리 처음부터 허가를 내주지 말든지, 허가를 했다면 자유 경쟁하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소비자 편익도 해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재·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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