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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예술이군, 작은 영화관

중앙일보 2010.06.25 00:15 Week& 4면 지면보기
일상에서 벗어나 재충전의 여유를 갖는 게 여행이라면 영화를 보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짧은 여행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에펠탑, 자유의 여신상 등 주위 풍경을 압도하는 유명 관광지보다 이국적 향취가 물씬 나는 낯선 뒷골목을 헤매고 싶은 법이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비밀의 공간을 발견한 그 느낌은 여행에서 얻는 소중한 기쁨이다. ‘작은 영화관’은 그런 영화들을 상영하는 곳이다. 한때 예술영화·독립영화로 불렸고, 요즘은 다양성영화라고 불리는 그런 영화를 상영한다. 시장 점유율이 1% 이내의 영화들이다. 장마철. 후끈 달아오르는 바캉스철을 앞두고 한 해의 감성·신체리듬이 최저점으로 내달을 때다. 끈적이는 공기에 사람 만나는 건 부담스럽지만 말벗이 지독히 필요한 시기다. 영화와 소소한 대화를 나누고 싶은 이들을 위해 작은 영화관 8곳을 소개한다.



글=이정봉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작은 필름 조각들이 이어붙어 만드는 ‘활동사진’이 스크린에 비치면 객석은 추억에 잠긴다. 실버영화관.
씨네큐브 광화문 스크린 크기, 음향시설 멀티플렉스 못잖네요



작은 영화관으론 시설 면에서 유일하게 멀티플렉스 영화관과 어깨를 겨룰 만한 곳이다. 대부분의 작은 영화관이 단관인 데 비해 이곳은 2개관이다. 1관은 291석이고 스크린 크기나 음향시설도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뒤지지 않는다. 천장이 높고 널찍한 홀이 마치 미술관 로비 같은데 사람들로 북적이지 않아 마음이 여유로워진다. 상영관 옆에는 일주&선화갤러리에서 운영하는 전시장이 있다. 영화를 기다리는 동안 미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이곳은 대중성과 예술성을 모두 갖춘 영화를 상영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2001년 단관으로 개봉했던 프랑스 영화 ‘타인의 취향’이 일주일 만에 관객 1만여 명을 불러들이면서 단숨에 ‘예술영화의 메카’로 떠올랐다. 그래서 수준 높은 유럽 예술영화를 즐기는 관객이 첫 번째로 꼽는다. 영화진흥위원회가 2008년 7~8월 예술영화관을 찾은 관객 120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가장 많이 이용하고 선호하는 영화관으로 뽑혔다. 지난해 9월 운영 주체가 영화사 백두대간에서 태광그룹 산하 콘트츠 업체 티캐스트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예술영화 전용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서울역사박물관 옆 흥국생명빌딩 지하 2층에 있다. www.icinecube.com, 02-2002-7770.



스폰지하우스 광화문 일본 영화 매니어를 위한 곳 … 맥주도 한잔!



아기자기하고 발랄한, 때로는 섬세하고 감성적인 영화를 원한다면 이곳이다. 일본 영화를 주로 수입·배급했던 영화사 스폰지가 연 극장인데 독특한 분위기의 일본 영화를 들여오면서 입소문을 탔다. 스폰지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메종 드 히미코’ 등을 들여와 대박을 쳤다. 기획전인 ‘일본 인디영화 페스티벌’이 매년 한 차례 정도 비정기적으로 열린다. 한때 압구정·종로·광화문에 각각 지점을 뒀었지만 지금은 광화문 한 곳만 남았다. 하지만 독특한 일본 영화의 향수를 못 잊는 관객의 발길이 이어져 여전히 씨네큐브와 더불어 예술영화관의 양대 산맥으로 꼽힌다.



영화관은 밖에서 보면 ‘진짜 극장 맞나’ 하고 착각하기 십상이다. 커피전문점처럼 밖에서 안이 들여다보이는 구조에 음료를 주문받는 카운터까지 영락없다. 카운터 옆쪽으로 테이블이 놓인 통로에는 양쪽 벽에 매달 전시회를 연다. 지금은 가수 김동률이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매표소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카운터에서 음료를 팔고 표도 판다. 맥주를 마시며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기막힌 장점도 있다. 코리아나호텔 뒤편 씨스퀘어빌딩 1층. www.spongehouse.com, 02-2285-2095.



하이퍼텍 나다 다큐 전문점 … 김연아석, 정지훈석 있어요



어딘가에 세들어 산다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동숭아트센터 1층에 있는 이 영화관은 꼭두박물관·공연장·카페 등과 건물을 공유한다. 이들 공간이 풍기는 독특한 분위기는 영화관의 전체적 인상을 한결 풍부하게 한다. 꼭두박물관 앞에 있는 재미있는 조형물이 입구부터 반긴다. 상영관이 있는 1층의 절반은 카페가 차지하는데 세련된 카페의 인테리어가 조금 딱딱한 영화관의 인상을 부드럽게 한다. 영화를 기다리는 동안 카페 옆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풍경이 여유로워 보인다. 상영관 안쪽도 특색 있다. 한쪽 벽이 통유리로 돼 있는데 영화가 시작되기 전 커튼이 열려 있을 때는 바깥 풍경이 내다보인다. 어두운 객석에서 바라보는 작은 정원이 운치 있다. 좌석 뒤에는 지난해 문화대표로 뽑힌 이들의 이름이 120개의 객석에 가나다순으로 붙어 있다. 나열 23번은 ‘김연아’석, 다열 65번은 ‘정지훈’석 등인데 좌석번호 대신 이름을 말해도 된다는 점이 재미있다.



하이퍼텍나다 상영관으로 가는 길에 붙어 있는 영화포스터. 하이퍼텍나다 상영관으로 가는 길에 붙어 있는 영화포스터.
분위기는 이상적이지만 영화관의 콘텐트는 사실적이다. ‘나다는 다큐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다큐멘터리를 많이 상영한다. 이와 함께 프랑스문화원과 손잡고 프랑스 영화 기획전을 연중 운영한다. ‘다큐 인 나다’라는 다큐멘터리 기획전은 매주 수요일 오후 8시20분, 프랑스 영화 기획전은 매주 화요일 오후 8시20분에 상영한다. 연말에는 그해 이 극장에서 상영했던 모든 영화를 다시 볼 수 있는 기획전이 열린다.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1층. cafe.naver.com/inada, 02-766-3390.



필름포럼 거장 작품 모시고 세미나 열고



이름이 주는 느낌 그대로 예술색 짙은 영화를 주로 상영한다. 오슨 웰스, 앨프리드 히치콕, 장뤼크 고다르 등 영화사적으로 중요한 감독들의 기획전을 주로 열고 가능성 있는 국내외 신인 감독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딱딱하고 예술성이 강한 영화를 주로 상영하지만 가끔 재미있는 기획전도 연다.



월드컵이 열리는 이달에는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축구의 신: 마라도나’, 더글러스 고든 감독의 ‘지단, 21세기의 초상’을 상영한다. 그렇다고 ‘축구’를 소재로 하는 영화를 되는 대로 골라 온 게 아니라 영화 잘 만들기로 이름이 알려진 감독들의 작품을 콕 집어 왔다.



영화관 안에는 북카페가 있는데 영화 관련 서적뿐 아니라 소설·잡지 등이 빼곡하다. 매표소 옆 카운터에서 음료 한 잔 주문하면 입장이 가능하다. 필름포럼은 영화 상영뿐만 아니라 비평을 함께 공부하거나 기법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으로도 유명하다. 영화평론가·학자를 초청해 세미나를 열거나 관련 강좌를 하기도 한다. 영화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이화여대 후문 건너편 뒷골목으로 하늬솔빌딩 지하1층. www.filmforum.co.kr, 02-312-4568.



시네마 상상마당 튀는 단편, 튀는 만화책 보여 드린답니다



예술영화관이지만 진지하고 무겁기보다 밝고 유쾌한 분위기가 돋보이는 영화가 주로 걸린다. 인디밴드의 공연, 젊음의 열기로 가득한 홍익대 앞에 있는 영화관답게 감각이 돋보이는 독립·단편영화를 주로 상영한다. 매년 9월 초 여는 ‘대단한 단편영화제’, 매년 연말에 여는 ‘음악영화제’ 등이 젊은 관객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영화관 구석에는 만화책을 볼 수 있는 곳을 마련해 놓았다. 만화방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미국 마블코믹스 작품을 비롯해 특이한 만화책이 있다는 게 소문이 나면서 영화는 안 보고 만화만 보고 가는 청춘이 많다. 가끔 ‘똥파리’의 양익준 감독이 들른다고 한다. 홍익대 앞 상상마당 빌딩 지하 4층. www.sangsangmadang.com/cinema, 02-3141-7030.



실버영화관 고전을 트는 곳, 어르신은 입장료 2000원



어르신들의 향수를 아련하게 불러일으키는 작품만 골라 상영하는 곳이다. 60대 이상의 관객에게 특화된 영화관이다. 문희·신영균 주연의 ‘철부지 아씨’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등 할리우드 고전이나 옛날 한국 영화를 주로 올린다. 상영작만 그런 게 아니라 이 극장에서 제공하는 대부분의 서비스가 어르신들을 위한 것이다.



실버영화관 영사실 안. 커다란 필름더미 돌면작은 영화관에서는 이런 영화들을 만날 수 있다.
영화표는 8000원이지만 57세 이상에게는 2000원에 판다. 극장 입구에 ‘추억 더하기’라는 이름의 쉼터를 마련해 DJ가 레코드판으로 옛날 노래를 틀어 주고 영화표 영수증을 보여 주면 국화빵도 무료로 나눠 준다. 보통 하루에 세 번 영화를 상영하는데 마지막 상영시간이 오후 3시 정도다. 일찍 잠자리에 드는 어르신들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낙원상가 4층. www.bravosilver.org, 02-3672-4232.



서울아트시네마 유명감독 회고전 한 달 내내 열려요



낙원상가 4층에 실버영화관과 나란히 있다. 하지만 컨셉트는 완전히 다르다. 영화 관련 비영리 민간단체인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운영한다.



협의회는 고전영화를 문화유산으로 여기고 이를 보전하고 대중에게 알리는 일을 한다. 이 영화관에서는 모든 영화가 기획전 형식으로 걸린다. 영화사적으로 걸출한 작품을 남긴 유명한 거장들의 작품을 상영하기 때문에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이나 매니어들이 찾는 게 대부분이다.



엘리아 카잔, 페데리코 펠리니 등 영화를 좋아한다면 어디선가 이름 한 번 들어본 적 있는 감독들의 회고전이 2주~한 달 정도 열린다. 필름을 해외 영화 관련 단체에서 빌려 상영하는데 계약상 회차 제한이 있어 대부분 하루 2회 상영에 그친다. www.cinematheque.seoul.kr, 02-741-9782.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 작은 스크린에 ‘소수자 영화’ 올리죠



영화관으로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작다. 홍익대 앞 한 빌딩 2층에 상영관을 마련해 두고 있는데 스크린은 아주 큰 DVD 감상실 정도의 크기다. 객석도 40~50개. 하지만 이곳에서 상영하는 영화들은 모두 국내 최초·유일의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여성주의 영화를 주로 상영하고 동성연애자·외국인노동자 등 소수의 시각에서 만든 영화나 ‘미디어 아트’처럼 보이는 작품들을 주로 선보인다. 예를 들어 레즈비언 영화의 거장 바버라 해머 회고전, 대사가 전혀 없이 사람의 몸동작만을 화면에 담아 메시지를 전달하는 ‘댄스 필름’ 같은 장르의 영화 등을 상영한다. 색다르고 참신한 영화를 한 번쯤 보고 싶다면 들를 만한 곳이다. 30일까지는 전위예술가이자 존 레넌의 아내인 오노 요코 특별전을 열고 있다. 오노 요코가 지금까지 이곳에서 상영한 영화의 감독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일 정도로 희귀한 영화를 많이 상영한다. www.igong.org, 02-337-2870.





이것만은 알고 가세요



작은 영화관은 그들만의 룰이 있다. 지켜야 할 규칙도 복합상영관보다 까다롭지만 자주 찾는다면 누릴 수 있는 혜택도 많다. 이곳은 영화에 몰입해 보는 관객이 많기 때문에 교감을 방해하는 행동은 금기다. 그래서 앞 좌석을 발로 차지 말고 휴대전화의 전원을 끄라는 등 복합상영관에서 지켜야 할 것 이외에도 몇 가지가 추가된다.



●대부분의 작은 영화관에서는 음식물 반입이 금지된다. 복합상영관에서는 대부분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팝콘·오징어 등을 팔지도 않고 가지고 들어갈 수도 없다. 몇몇 영화관에서는 생수만 가지고 들어갈 수 있다.



●엔딩 크레디트가 모두 올라갈 때까지는 실내등이 켜지지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끝나기 무섭게 좌석이 정리되는 대부분의 영화관과 달리 이곳에서는 엔딩 크레티트가 다 올라가기 전까지는 영화가 끝난 게 아니다. 엔딩 크레디트는 영화 스태프·삽입곡 등이 담긴 정보이기도 하고, 영화의 엔딩 테마가 흘러나오는 영화의 일부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앉아서 모두 보고 나오는 게 영화와 관객, 영화관에 대한 예의라고 보는 것이다.



●영화가 시작된 지 10~15분 정도 지나면 입장이 완전히 금지된다. 대신 문화공간을 갖추고 있는 곳이 많아 늦게 왔다면 느긋이 앉아 책을 보거나 갤러리를 감상하도록 하자.



●작은 영화관에서 개봉하는 영화들은 TV나 거리 간판에 예고편을 광고하는 경우가 드물어 정보를 알기 어려운 편이다. 그래서 홈페이지를 수시로 들러야 한다. 기획전 형식으로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 많기 때문에 조금만 발 빠르게 움직이면 진귀한 영화를 건질 수 있다.



●관객을 위한 혜택도 다양하다. 회원제로 운영하는 곳이 많은데 일정 회비를 내면 영화를 30~50% 싼값에 볼 수 있다. 스폰지하우스나 씨네큐브의 경우 영화 10편을 보면 한 편을 공짜로 볼 수 있는 쿠폰제를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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