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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준 기자의 ‘빨치산루트’ ③ 지리산

중앙일보 2010.06.25 00:08 Week& 2면 지면보기
●산행정보 지리산은 남한 내륙에 위치한 산 중 최고 높이(1915m)를 자랑한다. 1967년 국립공원 1호로 지정됐다. 바위보다 흙으로 이뤄진, 전형적인 육산이다. 주능선인 성삼재에서 천왕봉까지는 28㎞에 이르며 넓이는 440.485㎢로 북한산국립공원의 5배에 이른다. 전북 남원, 전남 구례, 경남 산청·하동·함양의 3개 도, 5개 시·군에 걸쳐 있다. 1번 등산로인 ‘노고단~천왕봉’부터 29번 ‘당동~당동고개’까지 코스별로 번호를 매겼다. 대피소는 8곳이 있다. 반드시 예약 후 이용해야 한다(http://jiri.knps.or.kr). 그중 천왕봉과 가까운 장터목대피소는 연중 대목이니 서둘러야 한다. 예약을 못했으면 침낭과 매트리스를 준비해 대피소 앞에서 ‘비박’을 해야 한다. 중산리까지는 진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하루 16회 운행하는 버스를 타고 간다. 동서울에서 백무동까지 08:20, 10:30, 13:20, 15:20, 17:30, 19:00, 24:00에 출발하는 버스가 있다. 종주산행을 위해 서울 용산에서 구례까지 밤기차(22:50)를 탄 뒤 버스나 택시로 갈아타 성삼재까지 올라가는 방법이 ‘애용’된다. 지리산관리사무소 전화번호는 055-972-7771~2.


능선 종주하며 마주친 수백 명, 하나같이 밝아 보였다



“푸훗! 그 길로 올라간다고? 네 능력을 봐서 말리지는 않으마. 잘해봐라.” 지리산 천왕봉(1915m)에 오르는 가장 짧은 코스인 중산리 코스를 택했다는 말에 산악회 선배는 혀를 찼다. 성삼재(1102m)까지 바퀴의 힘을 빌려 고도를 한껏 올리고 나서야 다리의 힘을 빌려 노고단(1507m)부터 천왕봉까지 살금살금 고도를 올리는, ‘지리산 종주의 정석’을 거부한 내가 무모하게 보였나 보다. 어쨌든 상식 밖의 인간은 역주행을 감행했다. 사람을 마주보기 위함이다.



#첫날, 중산리 빨치산 아지트를 지나



화개재 전망대에서 만난 안양 스리 시스터즈친자매인 이들은 똑같은등산화를 사 신고 산에왔다.
인민군 패잔병으로 구성된 경남도당 유격대는 후에 ‘불꽃사단’을 편성했다. 중산리에 위치한 칼바위와 법계사, 순두류 일대는 불꽃사단의 아지트로 이용됐다. 군경은 빨치산 아지트로 사용됐던 법계사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찰을 전소시켰다. 등산로 입구에는 빨치산토벌기념관이 자리 잡고 있다.



참 강팔지다. 연신 코방아를 찧는다. 숨은 가쁘고 목은 밭았다. 경남 산청 중산리탐방지원센터(625m)에서 법계사(1450m)까지 오르는 길은 역시 힘들다. 칼바위를 지나면 나와야 할 망바위가 가도 가도 안 나온다. 해거름은 마무리의 시간. 남들이 뭔가를 매듭을 지을 때 일을 벌이고 있으니 산행을 갈무리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된다. “이제사 올라갑니꺼?” “밤 홀라당 보내면서 가능겨?” 수박이 배달되고 빵이 보급된다. 사기충천, 어느새 망바위가 머리 뒤편에 있다. 눈길을 먼 데 주니 해는 미련 없이 넘어가고 있다. 일출봉 너머의 일몰이라, 묘하다. 법계사는 해발 1450m에 위치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절이라고 한다. 궁상각치우로 음계를 맞춘 코골이 소리와 멀리 자리 잡은 아주머니들끼리 대화 하느라 울려 퍼진 목소리는 대피소의 평화를 깼다. 당연히 잠도 깼다.





#둘째 날 아침, 천왕봉에서 다시 본 하늘



5일 후, 한 달 후,두 달 후에 각각 입대하는 목포 삼형제. 대학 진학 후 흩어졌던 이 고등학교 동기동창은 지리산에서 다시 뭉쳤다.
천왕봉에 오르면 경남도당 빨치산의 근거지인 하봉(1781m)이 보인다. 그 북쪽의 새봉 너머 선녀굴은 1962년 하동군 인민위원장 이은조가 군경에 의해 사살된 곳이다. 추성리 벽송사에는 인민군 야전병원이 있었다. 마을과 가까운 곳에 있어 보급투쟁(식량을 얻는 행위)에 일조했다. 빨치산은 그 동쪽 중땀의 암반굴에도 아지트를 마련했다.



1915m. 한반도 남쪽 뭍의 최고(最高) 등성마루 높이다. 한껏 여물은 새벽 별빛을 벗 삼아 다다랐다. 튼실하게 살을 올린 나뭇잎들은 밀도 높은 바람을 잘도 막아줬다. 희붐하게 먼동이 튼다. 천왕봉에 발길이 이어진다. 기다림의 시간. 해가 혀를 내민다. 대부분 장터목대피소에서 올라온 이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해가 알몸을 완전히 드러내자 그 많던 사람들은 썰물처럼 사라진다. 장터목에서 짐 정리를 하고 출발하는데 누군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표정은 미소 가득. 산에서 자신이 온 길을 되짚어 가기가 얼마나 망설여지는데…. “이거 놔두고 가신 것 아닌가요?” 미안하지만 아니다. 그런데 고맙다. 그 마음 씀씀이. 연하봉(1730m)에서 어린 친구들을 만났다. “어디서 왔니.” “해보라학교요~” 문경에 위치한 대안학교다. 이들 24명은 2박3일의 종주를 위해 꽃을 익혀 그 이름 불렀고, 밥 짓기 예행연습을 통해 삼층밥의 절묘함을 체득했으며, 수차례 모둠 토론으로 지리산을 배웠단다. 큰 산에서 큰 배움 얻었기를 바란다.



전남 광양 백운산에서 바라본 지리산 전경. 산줄기 수많은 꼭짓점 중, 오른쪽 우뚝하게 솟은 곳이 천왕봉이다. [김홍준 기자]
#둘째 날 한낮, 이현상이 스러진 빗점골



인민군 총사령부는 주능선 북쪽의 백무동 계곡에 자리 잡고 있었다. 주능선 남쪽의 빗점골은 남부군총사령관 이현상이 스러진 곳이다. 6·25전쟁 휴전 직후인 1953년 9월에 일어난 그의 사망을 놓고 여러 설이 있다. 누가 이현상을 죽였을까. 군대냐, 경찰이냐, 북한의 지령을 받은 빨치산이냐. 공적을 놓고 재판까지 붙었단다. 물론 ‘지령을 받은 빨치산’은 재판에서 제외됐을 터, 법원은 경찰의 손을 들어줬다.



당일치기 산행을 하는 사람들은 백무동을 들머리로 해 천왕봉을 찍고 중산리로 하산한다. 중산리에서 만났던 등산객 대부분이 이 코스를 택했다. 백무동에서 한신계곡 쪽으로 틀면 폭포가 이어진다. 세석평전 지나 칠선봉 근처에서 한 외국인을 만났다. 보름 후에 한국을 떠나는 독일 교환학생이다. 한국을 가슴에 담고 싶어 한국인 친구들에게 물어 물어 가볼 만한 곳을 추천 받았단다. “여기, 정말 좋아요. 독일에 이렇게 넉넉한 산 없어요.”



#셋째 날, 연하천대피소를 나와



식생 연구를 위해 산에 오른 계명대 대학원생들. 기자에게 꽃과 나무 이름을 친절하게 알려줬다.
빨치산은 1951년 봄 ‘지리산 파송작전’을 감행했다. 빨치산은 산재해 있는 유격대를 모아 역량을 강화할 필요성이 있었다. 나이가 들거나 병약한 사람들을 지리산으로 보내 부대를 새로 짰다. 유치산에서 많은 인원을 보냈다. 곡성군당이 이들을 중계했고 구례군당이 이들을 받아들였다. 2000명 가까운 인원이 문수골과 피아골로 모여들었다.



화개재 전망대에서 3자매와 3형제를 만났다. 먼저, 3자매. “우리 산 절대 안 오는 사람들이에요. 근데 지리산은 와보고 싶었어요.” 과연 등산화가 생채기 하나 없는 신상이었다. “그럼, 왜 오신 거예요?” “…그냥요. 지리산이잖아요.” 30대 초·중반의 ‘안양 스리(3) 시스터즈’는 어느 날 밤 집에서 의기투합, 직장에 휴가를 내고 가볍게 왔단다. 패밀리가 뜬 게다. 다음, 3형제. “경롓!” “충성!” 3명의 목포 출신 고등학교 동기동창은 줄줄이 입대를 앞두고 있었다. 기자의 경례 구호에 순순히 따라 하는 이 순진남들. 입대 전 ‘마지막으로’ 뭉쳐 지리산에 왔다. 5일 후에 입대하는 친구는 왼손으로 경례를 했다가 손을 바꿨다. 대한민국의 안보가 살짝 걱정됐지만 이들은 늠름한 사나이로 변할 것이다. 전남·전북·경남의 경계점이 되는 삼도봉(1550m)에 올랐다. 삼도를 아우르는 곳에 걸터앉은 지리산은, 그만큼 빨치산과 군경 모두 양보할 수 없는 거점이 되었다. 6·25전쟁 이전과 이후(최후의 빨치산 정순덕이 지리산에서 생포된 건 1963년) 긴장의 끈이 한시도 누그러지지 않은 산, 지리산.



빨치산토벌전시관 담벼락에 새겨진 작품. 대치 상황을 묘사했다.
산악회 선배를 다시 만났다. “형, 제가 지리산에서 600명 가까이 만났거든요. 근데 그 사람들 공통점이 뭔지 아세요? 모두 웃고 있더라는 거죠.”



“…!”



굴곡 많던 지리산은, 이제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산이 되어 있었다.  



글=김홍준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






뒤적뒤적 산행수첩 │ 등산에티켓 ②



1차 20만원, 2차 40만원, 3차 60만원 …



국립공원서 흡연하면 낼 과태료죠




2010년 2월 20일/북한산 산성통제소~중성문~북한산대피소~용암문~위문~도선사/영상 5~6도



‘산에서 맡기 힘든, 풀 타는 냄새가 났다… 한 남자가 담배를 물며 유유히 지나가고 있었다…’



귀 선배라 불리는 사나이가 있다. 설렁탕을 먹으면서 흘린 것 말고는 땀을 내지 않으려는 형님이다. 5m 떨어진 동료가 좀 보자면 자리에서 일어나는 수고 대신 바퀴 달린 의자에 엉덩이를 붙인 채 미끄러져 간다. 300m 앞 식당에도 택시를 타고 간다. 그러니까 그 ‘귀’는, 귀하다의 귀가 아니라 ‘귀찮다’의 그 ‘귀’다. 열성을 보이는 면도 있다. 그건 흡연이다. 세상만사 귀찮은데 담뱃불은 어찌 붙이는지 궁금하다. 대부분은 남이 붙여 줬을 것 같다. 그 귀 선배, 40년 만에 산에 갔다. 귀찮음이 몸에 박이기 전인 유치원생 시절에 가고 처음이었다. 그것도 가족과 함께. 구국의 결단에 맞먹는 마음을 먹고 갔지만 막상 걷다 보니 귀찮아졌다. 설렁탕 집에서나 흘리던 땀을 이곳에서 흘리자니 영 적응이 안 됐다. 산 입구에서 불과 100m. 그냥 퍼질러 앉았다. 담배를 물었다. 불은 아내가 붙여 줬다. 한 모금 빨자니 두 명이 나타났다.



“잠깐 통제소로 같이 가시죠. 국립공원 안에서 흡연하시면 과태료 20만원(2차 적발 땐 40만원, 3차 적발 땐 60만원)입니다.”



공원 직원들은 ‘범법자’의 인적 사항을 확인하기 위해 그를 사무실에 데려가야 한다(현재는 현장서 확인을 주로 한다). 그 모습을 본 아들과 딸은 눈이 한껏 확장됐다. 아빠가 붙잡혀 가네…. 그 모습을 본 아내는 눈이 뒤집혔다. 아빠가 몹쓸 꼴 됐네…. 아내는 게거품을 물었다.



“여봐욧! 이… 이게 뭡니까! 애들 앞에서!”



귀 선배는 설렁탕 집에서 땀 흘리며 이 이야기를 들려줬다. 담배 한 개비 물면서 말이다. 물론 내가 담뱃불을 붙여 줬다. 그러면서 한마디 찔러 줬다.



“무심코 피운 담배, 처 애간장 다 태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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