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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선 ‘생얼’로 편하게 식사, 한국선 단장하고 식당 찾아

중앙선데이 2010.06.19 23:16 171호 22면 지면보기
세 친구가 일요일 낮 효자동의 한 브런치 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신현주·김지나·권명희씨. 신인섭 기자
일요일(13일) 낮 12시 효자동 골목의 한 브런치 식당. 커다란 유리창문으로 안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다섯 개의 나무 테이블 가운데 가장 길쭉한 자리에 동갑내기 친구 신현주(28·대상 품질경영실 매니저)·권명희(28·기업은행 계장)·김지나(28·리딩투자증권 연구원)씨가 마주 앉았다. 세 사람은 오랜 친구로 일주일에 한 번은 얼굴을 볼 정도로 가까운 사이다. 각자 한 달에 두세 번은 브런치를 하지만 이날의 조합으로 브런치를 하는 것은 처음이다.

일요일 낮 20대 싱글녀들의 브런치 수다

식당 한쪽 칠판에 적힌 이날의 브런치 메뉴는 참치와 차이브·레몬 올리브소스 파스타와 허브 닭 가슴살을 곁들인 샤프란 리조토 두 가지로 가격은 각각 2만원, 2만3000원이었다. 세 사람은 상의 끝에 파스타 2개와 리조토 한 개를 주문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브런치 값은 사람 수대로 똑같이 나누어 낸다고 했다.주문을 마친 일행은 전날 있었던 한국 대 그리스의 월드컵 축구 경기 이야기를 시작으로 이번 달 초 회사에서 보너스 받은 이야기, 주 중에 회식했던 이야기, 얼마 전 갔던 브런치 식당 이야기 등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이어 세 사람과 한 시간 반 동안 브런치를 주제로 다양한 얘기를 나눠봤다.

-외국에서 대학을 다닌 신현주씨와 김지나씨에게 브런치는 자연스러운 문화일 것 같다.
신현주(이하 신)=미국에서 공부할 땐 일요일에 일어나서 ‘생얼(맨 얼굴)’에 편하게 입고 나가서 브런치를 먹었다. 그런데 한국에선 브런치도 화장하고 옷 차려 입고 가더라. 외국의 브런치와는 좀 다른 개념인 것 같다.

김지나(이하 김)=맞다. 나도 외국에 있을 땐 일요일에는 집에서 먹든 밖에 나가 사먹든 브런치를 먹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한국에선 조금은 특별한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마치 브런치라고 하는 하나의 새로운 음식이 생긴 것 같다. 가격도 훨씬 비싸다.

권명희(이하 권)=그래서 브런치 먹는다고 하면 왠지 된장녀가 된 것 같은 부담이 생길 때도 있다. 나는 맛있는 집 찾아다니는 걸 좋아해서 대학 때부터 브런치를 먹었다. 요즘은 부쩍 브런치 식당이 많이 생긴 것 같다.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가 많은 영향을 줬다고 들었다.
김=그 드라마는 브런치뿐만 아니라 한국 여자들한테 다방면에서 굉장한 영향을 줬다. 그 드라마 주인공들이 사는 모습은 선망의 대상이다.

신=미모의 미혼 여성들이 주말 낮에 예쁜 식당에 모여 브런치를 먹으며 수다를 떠는 모습이 한국 여자들한테는 나도 저렇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같다.

권=그렇다. 가끔 친구들하고 브런치를 먹다보면 우리가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게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할 때가 있다.(웃음)

-우리나라 브런치 문화만의 특징이 있다면.
신=우리나라 브런치 메뉴는 이탈리아식 아니면 미국식이다. 외국은 딤섬 같은 중국 스타일도 있고 메뉴가 다양한데 우리는 모두 똑같다. 특히 뷔페식으로 나오는 곳이 많은데 브런치로는 너무 과해서 난 별로다.

권=우리나라 사람들은 밥을 먹는다 하면 일단 든든하게 먹어야 먹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김=맞다. 비싸니까 가볍게 간단히만 먹으면 뭔가 손해 보는 느낌도 들 때가 있다.(웃음)

-식당이나 음식을 고르는 기준이 있나.
김=음식 맛보단 분위기 있고 예쁜 곳이 좋다. 사실 음식 맛은 거기서 거기인 것 같다. 좋은 곳에서 먹으면 맛도 좋게 느껴진다.

신=나는 무조건 맛이 있어야 한다. 맛이 없으면 가기 싫다.

권=맛있고 분위기도 좋아야 하지만 무엇보다 집에서 얼마나 가까운지가 제일 중요하다. 부담 없이 편하게 먹는 게 브런치다. 브런치를 먹으러 한 시간 넘는 거리를 가 본 적은 거의 없다.

신=맞다. 나도 그렇다. 나는 사람이 너무 많이 모이는 곳도 별로다. 브런치 느낌이 안 난다. 편안하고 안락한 기분이 드는 곳이 좋다.

김=최고의 브런치는 라면이 아닐까?

권·신=(웃으며) 맞다! 맞다!

김=만들기 쉽고 편하게 먹을 수 있는 걸로는 라면만 한 게 없다.

-브런치의 매력은 무엇인가.
신=무엇보다 부담이 없는 것이 좋다. 브런치는 어려운 사람들과 먹는 것이 아니다. 정말 친한 친구나 가족과 함께, 가장 편한 시간에 먹는다.

김=학생일 때는 그냥 맛있는 식당이나 예쁜 카페에 가보자 하는 맘으로 갔다. 그런데 회사를 다니다 보니 친구들하고 일요일 저녁을 먹는 것이 부담스럽더라. 다음날 회사도 가야 하는데 술까지 먹게 되면 늦어지고…. 그래서 브런치를 먹는 이 시간이 딱 좋다. 브런치의 매력은 부담 없는 시간대인 것 같다.

권=나는 두 친구와 달리 유학생활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브런치를 먹다 보면 마치 외국에 여행 가서 밥을 먹는 듯 로맨틱한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분위기 좋은 곳에서 먹는 브런치가 외국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신=좀 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빵이나 파스타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저녁에 먹으면 살찔까봐 굉장히 부담스럽다. 그런데 브런치로 낮에 먹으면 부담 없이 많이 먹을 수 있어서 좋다.(웃음)

-가격이 부담스럽지 않나.
김=우리는 부모세대와 달리 즐기며 살자는 인생관을 가지고 나를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는 세대인 것 같다. 이 가격대에 브런치를 먹는 것도 결국 외모를 가꾸고 예쁜 옷을 사는 것처럼 자기취향의 식사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거다.

신=브런치는 밥 한 끼 개념으로 볼 것이 아닌 것 같다. 분위기 좋은 곳에서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 치르는 값이 아닐까.

권=거품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게 걷히면 좀 더 대중적인 문화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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